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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Mi Cubano#23] 책임감을 짊어진다는 건

in #kr-series6 years ago (edited)

한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자는 출발한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동행자를 불편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에세이 곳곳에 다음부턴 절대 절대 혼자 여행할 거라고 적었더랬죠. 얼마나 불편했으면 책에 적을 정도였을까 싶었습니다. 전 그 작가의 심정을 이해해보려고 했는지 상당히 오랫동안 그 내용들을 기억하고 있더군요. 어느날 어느 글에서 여행은 반드시 혼자 하라는 글을 봤습니다. 둘이 다니면 싸울 수밖에 없다고. 성격이 다른 두 사람이 다니면 반드시 한 사람은 양보할 수밖에 없고, 그 양보가 내가 한번 네가 한 번 반반이면 좋겠지만 어느 한쪽이 더 많아지면 싸울 수밖에 없다고요. 긴 여행을 해보진 않았지만, 친구와 1박2일 여행을 가도 누군가 반드시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나왔던 걸 기억합니다. 그런데 여행도 아닌 스텔라와 알레의 남은 일정이 많이 걱정되네요.

글을 읽다가

-나 아마 앞으로도 못 가겠다고 여러 번 말할 거야. 나 계속 흔들릴 거야. 그렇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야. 그때마다 나 좀 잡아줄래? 네가 날 사랑한다면 계속 날 잡아 줘. 내가 더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나를 절대 보내지 마.

여기에서 문득 멈췄습니다. 생각난 사람이 있거든요. 제게 자길 끝까지 지켜달라고 했던 사람.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잡아달라고 했던 사람. 저는 그 사람을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제가 너무 지쳐버렸거든요. 더 있어주다가는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무릎 꿇고 '이젠 널 떠날 거야. 미안해.'라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녀는 저를 잡지 않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았나봐요. 이젠 놓아줄 때가 됐다고 생각했었나봐요.

저는 심뽀가 고약한가봅니다. '그날 난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했다'라고 마무리할 줄 알았는데,,, 스텔라는 정말 좋은 사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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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의 불편한 동행이라..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요. 저도 멕시코에서 너무 좋은 그러나 참 불편했던 사람과 동행을 했습니다. 그 후 함부로 동행을 만들지 않았는데 어쩌다 쿠바에서 혹이 붙어서는..
맞아요. 보통 여행 기간 동안 잘 지냈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상대방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와요. 한 명이 편하면 보통 다른 한 명은 굉장한 양보를 했더라고요. 마음에 맞는 즐거운 동행을 얻는 건 정말 천운이죠.

아이러니한 게 누구보다도 어려운 상황에 있어서 같이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맞지 않던 사람인 동시에 그 과정을 감당하게 할 만큼 사랑했던 사람이죠.이런 말을 하면 주제넘지만, 희생을 배워가는 기분이었어요. 불안해서 가고 싶은 마음도 진심이었고 그런데도 날 잡아주기 바라는 마음도 진심이었어요. 이건 모든 남자가 알레에게 배워야 하죠. 사랑한다면 그냥 잡아요. 행복하지 않을지도 모르죠. 미래도 불투명하고 괴로울 수도 있죠. 그렇지만 사랑한다면 잡아주길 바라게 돼요 자존심 때문이라면 무조건 잡아야 해요.그런데 지쳤다면 그러면 잡을 수도 남을 수도 없어지게 될 때가 있죠... 그럼 흘려보내야겠죠. 나하님처럼.

쓸데없이 책임감이 강한 타입이라 저는 못 떠났어요. 제가 뱉은 말은 지켜야 했거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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