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5.28 꿈과 음악 사이 어딘가]'어머니의 기억'

in #kr-pen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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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기억'

어머니는 23살에 결혼을 하셨다.

그 시대에는 결혼 적령기라고 하더라도 무척 어린 나이다.

23살에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았으니 애가 애를 키우는 꼴.

얼마 전 집에 오셔서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얘야,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애가 이쁜지 모르겠지?'

'난 이제야 애기가 참 이쁘단다.'

와이프는 속으로 '아닌데? 지금도 무지 이쁜데.' 의아해 했다고 한다.

아기를 기르는 과정에서 한 가지만 예를 들어도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일이 있다.

'천기저귀'

아기는 보통 하루에 10~15번의 기저귀를 사용한다.

기저귀를 갈고 돌아서면 리트머스 종이처럼 파랗게 변한 기저귀.

'그걸 '천기저귀'로? 그걸 일일이 빨아서 썻다니!'

갑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위인전에서 읽었던 것도 같다.

하물며 요즘은 액상분유도 있어서 그냥 부어서 먹이면 된다.

모유수유가 얼마나 고된 육체노동인지 아는 사람은 탄성을 지를 것이다.

이제야 아기가 이쁜 걸 알겠다는 어머니.

얼마나 힘드셨을지 가늠조차 잘 안된다.

아기 키우는 일만이 힘든 일은 아니었을테니.

우리또래 어머님 세대 어머니들의 삶이 대체로 그렇다.

'여자 누구누구'가 아닌 '누구 엄마'로 불리며 자신의 삶은 미뤄뒀던 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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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행복'

거제도 시골에서 자난 어머니는 노래부르는 걸 좋아하셨다고 한다.

비록 부끄러움이 많아 중학생 때 단상에 나가 대표로 노래를 부르라고 했더니

단상 밑 창고로 숨어버려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지만,

어머니의 음악 사랑은 그 뒤로도 쭉 이어졌다.

나도 곧잘 '이미자' 선생님의 노래와 가사를 즐겨 불렀으니까.

요즘 어머니는 피아노와 기타, 하모니카를 배우신다.

내가 어머니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내려놓게 된 건 그 즈음.

음악 얘기를 할 때 어머니는 영락없는 소녀였다.

동생과 내가 독립하게 되면서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긴 어머니는

그제서야 미뤄뒀던 일들을 하나, 둘씩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제서야 미뤄뒀던 아기 이쁘게 보기를 시작하신 것처럼.

30년의 세월이라니 참 오래도 미뤄두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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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와는 다른'

'너도 너 닮은 애 낳아서 한번 길러봐.'

말 안듣는 자식들에 대한 부모님들의 일침.

얼마전에 아이가 태어났지만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물론 아직 속썩일 나이는 아니지만)

대신 달라진 건 손주를 보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매일 보여드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함께 살면 좋을텐데.' 하는 마음과 함께.

효도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자식을 부모의 보상심리를 채우려는 목적으로 키워서는 안된다며

내 인생에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시지 마시라며 말 그대로 막 살았었다.

수염을 산적처럼 기르고 모자를 눌러쓴 채 기타를 메고 집을 나설 때,

남들은 다 졸업 전에 취업하거나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는 20대 후반,

무엇 하나 돈 벌 궁리 없는 아들의 모습에 얼마나 속이 타셨을지.

그래도 그 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지금도 크게 생각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부모의 삶이 있고 자식의 삶이 있다는 것.

내 이런저런 생각이 철이 들었다거나, 효도라는 말로 불리기에는 뭔가 어색한 면이 있다.

부모님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런 부모님을 바라보는게 좋아서니까.

요즘은 근심섞인 어머니 얼굴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여성 호르몬의 도움으로 50이 넘기 시작하면서 아버님께서는 가정에 충실하셨고

큰 아들이 장가를 가 아이를 낳아 손주도 볼 수 있게 되었고

주중에는 기타와 피아노를 배우며 같이 노래부를 친구들도 만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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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자'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친한 여자 후배에게 결혼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을 때 하는 말이 있다.

"여자는 결혼 안하면 자기 커리어 쌓으면서 진짜 멋있게 살 수 있어."

"이왕 결혼을 할꺼라면 진짜진짜 좋은 남자랑 해."

적어도 정말 그 여자를 많이 사랑하는 좋은 남자라면,

어머니처럼 30년을 미뤄두게 하진 않을테니까.

여러가지 좋아진 면들이 많다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결혼으로 여자가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즐비하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뭔가 이기적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너무 폭력적이다.

희생은 강요당해야 하는 일이 아니니 희생조차 행복이라 부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그 때가 가장 좋은 시기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시기가 일찍 오기도 늦게 오기도, 또는 오지 않기도 할 뿐.

중요한 건 누구 하나의 행복도 희생당하지 않고 모두가 행복해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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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정말 너무 공감하는 글입니다..
존님 역시 뭔가 계속 비슷하다는~~ㅋㅋㅋㅋㅋ

그런가요?ㅎㅎ 공감대가 많은 건 좋은 일이죠.^^

등짝 스매싱부터... ㅋㅋㅋㅋ 너무 ㅋㅋㅋ 현실적!

우아~엄청 일찍 결혼하셨네요^^부러워요..ㅎㅎㅎ

네 어머니께서 결혼을 일찍하셨죠.ㅎㅎ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어서오세요 오치님 감사합니다.^^

어머니 그리고 와이프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글이네요 잘 읽고가용

모셔야될 사람들이죠.ㅎㅎ 잘 하고 계시니 보기 좋습니다.^^

저도 요즘 일찍 결혼하셔서 저를 키우셨던
엄마에 대한 생각이 나더라구요 ㅠㅠ
제인님 글 읽고 또다시 뭉클 해지네요 ~ㅎㅎ

오 위대한 그 이름. 어머니!ㅎㅎ

짱짱맨 호출로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아빠가 되면 아기를 보면 어떤 글이 써질까 하는 생각을 존존님 글볼때마다 합니다 ㅎㅎ

아무래도 처음 겪는 경험이다보니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네요.ㅎㅎ

정말 동의합니다. 결혼이 필수는 아닌 것 같아요-
합이 잘 맞는 사람과의 결합은 분명 의미가 있고 삶에 큰 힘이 되는 일이지만
'결혼' 자체에 얽매여 나의 삶을 포기하는 건 너무 슬픈 일이죠 ㅠㅠ

저희 엄만 절 26살에 낳으셨는데... 어느덧 제 나이가 그 나이를 훌쩍 넘기다 보니 엄마가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전 아직도 엄마가 될 준비가 하나도 안되있는 것 같은데 말이죠 ㅠㅠ
앗 그런데 전 여태껏 자이언존님 대학생이신줄 알았는데 왜일까요 하핳

그건 제가 좀 young~하기 때문...(퍽~) 어리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하나 빠짐없이 모두가 다 행복해야죠. 잠 한숨 못자고 아이와 함께 밤을 새는 아내를 보면 모성애라는게 실제로 존재하구나 느껴요. 대단하고 존경스럽고. 아이 낳기 전까지는 그저 평범한 여자였는데 말이죠. xinnong님도 모르시게 이미 준비가 되셨을지도.ㅎㅎ

결혼으로 남여 모두 행복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말이죠ㅎㅎ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겠죠. 완전 불가능한건 아니니까요.ㅎㅎ

결혼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한다고 하네요....

어차피 후회할거 하고 후회합시다....

안하는 것도 하나의 옵션으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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