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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단편] 랏소베어를 안고 자는 남자 <7>

in #kr-pen6 years ago

감상도, 잡담도, 담배한대 피워물고 할 이야기도 아닌것 같아 그냥 댓글로 답니다. 소설 속의 이 관계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또 좀 길어질 것 같고 게다가 조금 심각할것도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17년 간 함께 했던 부부가 있습니다. 남자는 몇번의 자잘한 충돌은 있었지만 어째서 이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고 있고, 자괴감으로 자살까지 시도했습니다.
이것을 문제삼아 여자와 여자의 가족은 남자를 정신병자로 몰고 있고 남자는 자신이 정상임을, 그리고 여자가 자신을 떠나지만 않으면 자신은 그대로임을 밝히기 위해, 사실은 살기 위해 여자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여자가 마음이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짐작은 해 볼 수 있습니다. 남자는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혹은 별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작은 사건의 파편들이 모여 그녀는 더이상 감당하지 못하게 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어떤 한두가지의 큰 사건이 아닌, 한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그릇에 가득 차서 한방울만 더 떨어진다면 그냥 넘쳐버릴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대화의 부재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대화는 있어왔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화가 두 사람에게 기존에 형성되어 있었던 패턴에 의한 언어의 교환에 그쳤다면, 그들은 대화를 한 것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그냥 습관적인 행위에 머물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느 한쪽의 잘못이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정말 만의 하나이며, 대부분은 착각일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 조차도 자기 마음을 다 모르는데,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나도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입니다.

여자는 남자가 완전히 바뀌지 않는 이상, 자신들의 관계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걸 느끼게 되면, 그리고 남자가 지금의 상태에서 바뀌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남자가 보기에는 "갑자기" 떠나는 것처럼 떠나갈 수 있습니다.(이는 남녀간에 반대의 상황일 수도 물론 있습니다. 여자만 그럴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고 떠나면서 자신을 보호해야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이혼녀라는 도장이 아직도 일부에서는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남자 때문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그때부터는 더이상 부부가 아니라 상대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적과도 같은 관계가 됩니다.

여자의 가족들이 옳다고 생각지도 않고,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지만 저는 그 상황이 짐작은 갑니다. 아마 그 가족들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소설을 쓰고 연극이라도 해서 남자를 나쁜 사람 - 혹은 비 정상적인 사람 - 으로 둔갑시키고, 그 남자 때문에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구성하여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족들이 웬만큼 이성적인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대화를 단절하고 남자 쪽에서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정당함을 지키고자 할 것입니다.

관계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한사람이 아닌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며, 만일 한쪽에서 노력할 의지조차 사라졌다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남자의 일방적인 노력이 된다면 남자는 자신의 자존심은 물론이고 최소한의 자존감,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게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또다른 불행을 몰고오는 단초가 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부부관계는 일방적인 잘못으로 틀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상대적이지요. 상담을 통해 이 상황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먼저 좋은 상담사를 만나야 가능하겠지만) 두 사람 모두 적극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상담에 임하고 자신을 변화시키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사실 배우는 것 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을 일상에 적용하고 실제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있습니다. 정말 아주 작은 것을 바꾸는 것에서도 가능합니다.

상담이라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라면 변화시키고자 하는 쪽의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굉장히 유치하고 단순하게 보이는 단서가 큰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바뀌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만나면 해결된다고 생각한다면 절대로 좋은 결과는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일시적으로는 해결된 것처럼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또다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것이며, 그럴때 마다 더욱더 두껍고 단단한 벽이 형성될 뿐입니다.

부디 저 부부가 서로를 바로 알고 올바른 소통을 통해 그것이 재결합이 되었던, 헤어짐이 되었던, 각자가 원하는 길을 찾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었으면 하고 기도해 봅니다.

제가 상담사도 아닌 주제에 소설에 너무 현실적이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댓글 달아 죄송합니다. 주제넘었다면 그냥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그냥... 뭔가 가슴이 먹먹해서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댓글 역시 실화를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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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감사합니다. 공모전은 끝났는데... 남자와 여자의 이전 스토리를 풀어낼 지면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원래 둘은 자타가 공인하던 지독하게 유별난 천생연분 커플이었습니다. 서로가 세상에서 대화가 가장 잘 통하는 상대였죠. 몇 회인지 잊었는데 남자가 들어오려 했던 이유가 부부 상담을 받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그것도 입국 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입국 시도에서부터 그는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그나저나 다음 회를 올릴지 말지 고민입니다.

당연히 올려주셔야죠! 이렇게 넘어가시면 다들 김작가님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될텐데요!!!

혹시나 하고 검사해 봤더니 2500자가 넘는군요 ㅠㅠ 그래서 공모전은 땡입니다
이전의 스토리를 잘 모르다보니 제가 오버를 했군요. 남자가 멘붕에 빠진것도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ㅠㅠ
저는 읽을때 그 상담은 남자의 일방적인 정신과 상담인줄로만 알았어요(이렇게 한번에 읽지 못하고 폰으로 몇번씩 나눠 읽으면서 글을 제대로 읽지 않고 댓글을 다는 일인 인증 ㅠㅠ)

아닙니다. 이야기가 워낙 많아서 저도 헷갈리는걸요.

생존을 위한 단계...
다음 회 올려주세요 ^^

어떻게든 풀어내놓으셨으면 합니다. 물론 다음이 궁금하다는 속물적인 저의 마음도 한 몫하는 생각이겠지만, 풀어내놓았으면 합니다. 생존을 위한 단계... 어떻게든 풀어내주세요....ㅠㅠ

이야기가 잘 팔리면 소설가로선 더없이 좋은 일이죠.

남자는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혹은 별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작은 사건의 파편들이 모여 그녀는 더이상 감당하지 못하게 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어떤 한두가지의 큰 사건이 아닌, 한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그릇에 가득 차서 한방울만 더 떨어진다면 그냥 넘쳐버릴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즐겨보던 웹툰 중에 <유미의 세포들>이란 것이 있는데, 사람들이 계속 유미의 박에 오재미를 던져요. 운동회에서 박 터뜨리기 하는 것처럼요. 엄청난 무게의 오재미도, 큰 오재미도 있는데 계속 그걸 맞고 있다가 엉뚱한, 별것도 아닌 작은 오재미에서 하필 박이 터져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유미는 폭발하죠.

괜찮아, 괜찮아 하고 살던 제가 요즘 안괜찮더라고요. 제 그릇이 이보다 훨씬 큰 줄 알았어요. 그런 척 해왔어요. 한방울, 한방울 떨어진 물이 어느덧 넘실대더니 결국에는 흘러 넘치고 말았습니다. 당장 그릇을 늘리지는 못하겠고, 물 찬 것을 비워내는 중이예요. 안괜찮아, 안괜찮아 하면서요 :)

봄들님 ㅠㅠ
맞아요,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받아내다 보면 어느샌가 물이 넘실넘실...
산다는 것은 그냥 나 안괜찮다고, 나도 힘들고 또 힘들다고 물을 비워내 줘야하는것 같아요. 안그럼 진짜 물이 넘치고 또 흘러서 저희 사무실처럼 물바다... ㅠㅠ 무너져 버리게 되는거 같아요. 봄들님의 "안괜찮아"를 응원 또 응원합니다!! ^^

그 웹툰 어떤건지 참 캐미가 있네요. 포인트를 잘 잡아내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한참 늦은 댓글이지만...
마음에 너무 콕 와닿아서 댓글로 감사와 감동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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