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아재리그 (3) (완결)

in #kr-pen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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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아재리그 (1)
[단편소설] 아재리그 (2)

    찌직. 뽁! 꿀렁꿀렁. 꿀꺽.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캔맥주 호구든의 뚜껑을 따고 조금 마셨다. PC방에 몰래 가져와서 그런지 더 맛있다. 나머지는 경기가 끝난 이후에 마시려고 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가 ‘술이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베어 오리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나는 호구든의 탄산가스가 다 빠져버리기 전에 돌아올 것이다. 칼부림저그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마!


    5판 3선승제의 아재리그. 일정 이상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경기를 시작하면 생각보다 빠르게 승패가 결정된다. 한 번의 실수가 곧장 승패를 좌우하다 보니 100%에 가까운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경기는 빠르게 진행되어 어느새 2승 2패. 이제 마지막 경기만 남았다.
    “정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경기입니다! 고수들의 세계는 정말 다르군요. 팽팽하게 맞서는 것 같다가도 살짝 빈틈이 보이면 상대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컨트롤과 전략이 눈부십니다. 조금 전의 경기에서는 칼바람 선수의 저글링이 포톤 캐논과 질럿으로 막아놓은 디제스티프 선수의 본진 입구를 순식간에 뚫고 들어가서 프로브의 미네랄 채취를 방해하며 진영을 무너뜨렸죠!
    그 기세를 몰아서 히드라를 앞세워 본진까지 밀고 들어가면서 GG선언을 받아냈는데요. 보통은 약간의 이득에 만족하면서 다음 싸움을 준비하는데, 짧은 순간의 판단으로 과감한 선택을 하는 칼바람 선수의 전략에 감탄하게 됩니다. 하하하.”
    경기는 샌드위치처럼 지고, 이기고를 반복했다. 조금 전에는 내가 이겼으니 마지막 경기는 디제스티프 님이 이길 것 같은 예감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런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하니 자신감도 약해지는 것 같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찬물로 세수를 해본다. 다른 것은 잊어버리고 이번 경기에만 집중하자!

    “자, 이제 아재리그 시즌 7의 진짜 마지막 경기가 시작됩니다. 디라이브 시청자 여러분 준비되셨나요? 그럼 시작합니다!”
    가장 손에 익은 빌드인 ‘12 드론 앞마당’ 전략을 선택했다. 저그가 프로토스를 상대하기에는 가장 안정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차근차근 진행하면서 상대 프로토스에 맞추어서 대응하다가 나의 특기인 뮤짤(뮤탈 뭉치기)로 혼을 빼놓으면서 빈틈을 만들 것이다. 이번에는 장기적인 운용을 위해서 초반에 자원을 많이 획득해야 한다.
    “브레인토스 디제스티프 선수는 빠르게 ‘원 게이트 리버’ 테크트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면 칼부림저그 칼바람 선수가 리버 드랍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경기의 승패가 명확해질 것 같습니다. 이제 리버를 태운 셔틀이 출발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될까요?
    디제스티프 선수가 신중하게 맵의 바깥쪽으로 셔틀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칼바람 선수가 얼른 눈치를 채야 할 텐데 말이죠…. 아, 본진 미네랄 뒤편까지 셔틀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도착했습니다. 이제 미니맵에서도 보일 겁니다. 과연 리버의 스캐럽을 잘 피할 수 있을까요?”

    이제 뮤탈을 조금만 더 모으면 뮤짤로 상대방을 흔들 수 있다. 앞마당을 보호하면서 드론을 쉴새 없이 움직여 준다. 아! 미니맵을 보니 갑자기 본진 미네랄 뒤편으로 빨간 점이 보인다. 설마 빠르게 리버를 뽑았나? 재빠르게 단축키를 눌러서 본진을 화면에 띄웠다. 이럴 수가! 리버가 내뿜은 스캐럽이 정신없이 미네랄을 캐고 있는 드론들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저 녀석들을 살리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자원이 부족해서 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든 살려내야 하는데 이미 손을 쓰기에는 늦은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하지?
    “으아아악! 이게 뭐야?”
    갑자기 양쪽 겨드랑이에 통증이 느껴지더니 티셔츠를 뚫고 두 개의 팔이 튀어나왔다. 혹시 이것이 젤나가의 손? 그것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더니 드론 컨트롤을 시작했다.
    “헉? 정말 말도 안 되는 장면입니다. 리버의 스캐럽을 피하려고 드론이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산개하고 있습니다! 마치 드론을 하나하나 따로 조작하는 것 같은데요. 이게 사람이 할 수 있는 기술인가요? 우와, 이거 정말 명장면이 탄생했습니다!”
    리버의 스캐럽은 허공에서 폭발했다. 내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정말 믿기 힘든 일이었다. APM이 무려 20,870? 보통의 프로게이머도 APM 400을 넘기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라면 인공지능 베타고(BetaGo)가 게임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게임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젤나가의 손이 대신하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진행된다면 우승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뮤탈을 충분히 모은 칼바람 선수가 반격에 나서는 것 같습니다. 특기인 뮤짤을 보여줄 것 같은데요. 원 게이트 리버 테크트리 때문에 자원이 부족한 디제스티프 선수는 부족한 병력과 포톤 캐논으로 어떻게든 버텨내야 합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칼바람 선수는 뮤탈을 뭉치지 않고, 각개격파하고 있습니다! 저렇게 정교하고 빠른 컨트롤을 사람이 할 수 있는 건가요? 뮤탈이 마치 캐리어의 인터셉터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와…. 디제스티프 선수가 결국에는 GG를 선언합니다! 이렇게 최종 우승자는 칼부림저그 칼바람 님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경기에서 갑자기 젤나가의 손이 겨드랑이에서 자라나더니 결국에는 우승까지 해버렸다. 내가 직접 마무리 지은 것이 아니라서 짜릿한 손맛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승했으니 승자의 여유를 즐겨야겠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내 몸에 붙어있었던 젤나가의 손은 어디로 갔지?
    “아재리그 시즌 7의 우승자 칼바람 님의 우승소감을 간단하게 들어보겠습니다. 칼바람 님, 보이스톡으로 우승 소감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우선 아재리그를 개최해주신 강서인 님께 감사드리며 우승의 영광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아내에게 바칩니다. 하하하!”

    아재리그에서 우승을 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젤나가의 손이 보여준 드론과 뮤탈 컨트롤을 보았던 스티미언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컨트롤의 신이라서 가능하다’, ‘핵을 사용한 것 같다’, ‘인공지능 베타고를 데려온 것 같다’ 등의 말이 톡방에서 오고갔다. 다시 화려한 컨트롤을 보여 달라는 요청이 많았지만, 내 능력으로는 절대 보여줄 수 없었기에 게임을 접었다는 말까지 해버렸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공중에서 에메랄드빛 물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젤나가의 손은 잘 사용하셨나요?”
    “깜짝이야!”
    “이제 계약을 이행할 시간입니다.”
    “아아, 맞아. 계약했었지. 이제 뭘 해주면 되는 거지?”
    “테란 종족은 우주 최강의 첨단기술을 통해 마법 능력이 있는 우리 종족을 식별할 수 있어 접근이 어려웠습니다. 당신은 우리 종족을 대신해서 테란 종족의 주요 건물에 잠입하여 정보를 수집하면 됩니다.”

    “음…. 그렇구나. 하루만 하면 된다고 했었지?”
    “인간의 시간으로는 하루가 맞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테란 종족이 거주하는 타소니스 행성에서는 시간개념이 약간 다릅니다. 지구에서의 24시간은 타소니스 행성에서의 10년과 비슷합니다. 물론 체감적으로는 10년처럼 느껴지겠지만, 지구의 시간으로는 24시간 동안 떠나있는 것입니다. 설명은 모두 끝났으니 이동하겠습니다.”
    “아니, 잠깐만! 처음에 그런 말은 안 했잖….”
    상상으로만 떠올려보던 블랙홀의 모습과 비슷한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따질 겨를도 없이 어딘가로 이동해버렸다. 너무 빠른 속도에 정신을 잃었다.

    “어이! 신참, 일어나!”
    눈을 떠보니 모니터 화면에서만 보았던 마린이 있었다. 이곳은 정말 테란 종족이 사는 곳일까?
    “나는 배럭 제486호의 사령관을 맡고 있는 짐 레이너 대령이다. 우주선을 타고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어디 보자…. 흐음. 아주 꿀 빠는 곳에 배정을 받았군? 그것도 10년 장기복무에 지원하다니 참 군인이구먼! 하하하!”
    나는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도 못한 채 다른 마린의 안내를 받아 근무지에 도착했다.
    “칼바람 하사는 이제 이곳에서 혼자 근무하게 됩니다.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고, 추가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커멘드 센터에 요청하면 됩니다. 기본적인 업무는 타소니스 행성에 침입하는 자를 막는 것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매뉴얼 책자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고개를 들어 내가 타소니스 행성에서 10년 동안 근무할 곳을 보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를 안내해준 마린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 저기요! 이 건물의 이름이 뭔가요?”
    “자대배치 받으면서 근무지 이름도 못 들었습니까? 미사일 터렛입니다.”





(완결)




[단편소설] 아재리그 에필로그




  • 소설에 등장하는 고유명사, 인명 등은 실제와 무관합니다.
  • 해당 게임을 모르시는 분은 이해가 힘드실 수 있습니다.
  • 소설 쓰기 연습 중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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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재들은 뮤탈을 쓰지 않... 헙헙..

뮤탈 시무룩...ㅠㅠ

술묵고있으니 내일 정독해야짓 ㅎㅎ

소설을 쓰다 보니 분량이 길어져서 번외편을 따로 올리려다가 그냥 한 번에 올렸습니다. 여유로울 때 천천히 읽어주세요.ㅎㅎ 꼬탄일 파티 중인가요? :D

^^재밌게 잘봤어요~~ 터렛안에 사람이 있었다니ㅋㅋ

감사합니다! 이거 모르시는 분이 꽤 많은걸로 압니다.ㅋㅋ

스타크래프트~!

마지막 미사일터렛을 이해하지 못하면 안되겟네요ㅎ

프로리그를 본 적이 없으면 전체적으로 이해가 힘들죠.ㅠㅠ

하하하 이건 군대 다시 가는 꿈??

비슷한 경우네요.ㅋㅋ

ㅎㅎ제가 이번 소설은 이해가 어렵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스팀시티 이벤트 보팅(20-5)입니다.

해당 게임을 해본 적이 없으시면 (3)편은 이해가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ㅎㅎ
아무래도 독자를 한정지어서 작성하다 보니 매니악한 측면이 강합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마지막에 반전이네요 ㅋㅋ인구수도 안먹은 터렛이라니 ㅋㅋㅋ 중간에 드랍십 -> 셔틀 로 수정가능할까요??

아차! 수정했습니다. 소설 작성하다가 셔틀을 잘못 적었다는 사실을 깨닳았었는데, 스팀잇에 업로드할 때 수정을 못 했었네요. 감사합니다.ㅎㅎ

저기 미사일 터렛에 타고 있는 사람은 어지럽겠네요.ㅎㅎㅎㅎㅎ

10년 동안 저곳에서...ㅎㅎ

게임을 안헤봐서 말은 못 알아들었는데 그래도 박진감이 있네요. 마지막에는 게임속에 갖혔나봐요.

게임을 해보신 분은 마지막 이미지를 보고 빵 터지실 것 같은데 아쉽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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