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am Flaurt...] 나에게로 떠나는 하루

in #kr-pen6 years ago (edited)


모든 것이 될 수 있었지만 나 자신이 될 수 없었다.

‘일기’를 쓰려고 마음먹고 일주일 동안 ‘일기’는 한 자도 쓸 수가 없었다. 나는 어쩌면 해야 하는 일을 하는데 약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부담을 느끼면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큰 상을 받아본 경험도 공모전에 당선된 적도 없다. 일기를 쓰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일기’란 진짜 ‘나’의 이야기를 써야 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롯이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가상의 화자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다.

온전히 나에게로 떠나는 하루를 만들어야겠다. 해야 하는 것보다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 일기를 써야 해서가 아니라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원하는지를, 진정 원하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진짜 나를 만나는 것을 원하는가?



내 머릿속에는 고통을 지우는 지우개가 있다.

나는 학습이 잘 안 되는 사람이다. 본시 암기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해마가 달아나버려서이다. 게다가 머릿속에 지우개도 있다. 특히 고통의 기억을 잘 지워버린다. 그래서 고통은 늘 신선하게 나를 괴롭힌다. 고통에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난감하고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을 즐기기에 면역력 없는 내 영혼이 진심으로 마음에 든다. 매번 머리와 눈동자가 푸르게 변하도록 지독하게 앓아 버리는 이 백치 같은 영혼이 미치도록 좋다. 나의 거친 글은 고통에서 잉태되기 때문이다.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쓰지 않았을 것이다. 가늘고 가는 심지처럼 미미한 글솜씨이지만, 위태롭게 타고 있는 촛불과 같은 열정이지만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글쓰기를 욕심내지 않았을 것이다. 내 머릿속 지우개는 나를 다시 쓰게 한다.


삶이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잃는 것일 수도 있다.

죽음을 향해가며 무의지하게 자신을 방치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사는 것인가 하는 의문으로 나는 고통스러웠다. 해야 할 것만 하다 원하는 것을 못 하고 죽어버릴까 봐 겁이 났다. 해야 하는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 원하는 일을 꿈꾸는 것은 어리석지 않은가? 그렇게 죽어버리면 나의 무엇이 남을까? 이렇게 살다 죽는 것이 두렵다면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지.

이렇게 살다 죽지 않기 위해 더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책상에 앉아 두 시간씩 글을 쓸 것이다. 그것이 이렇게 살다 죽지 않을 유일한 길이다. 몇 달 전 나는 이렇게 결심했었다. 스팀잇을 계기로 나는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세수를 한다. 저혈압에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는 고행이기도 한 변화이다. 그렇다고 해도, 원하는 것을 한다고 해도 삶이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잃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시간과 열정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이 행위를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여기에 온 까닭이 있을 것이다.

올해의 봄은 이전의 봄과는 다르다. 나를 프리지아 향기에 취한 몽유병자처럼 몽롱한 상태로 무의지하게 만들었던 봄들. 의지가 생긴 이유는 스팀잇 때문이다. 보들레르의 ‘영감이란 매일 일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실천하게 만든 것도 스팀잇 때문이다. 여기에 온 이유가 있겠지. 돌아보니 어디에서 살게 되었건 어딜 가게 되었건 전부 이유가 있었던 거 같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뭔가를 하기 위해. 누군가와 헤어지기 위해, 뭔가를 멈추기 위해. 모두 이유가 있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봄의 나를 살게 한다. 그동안 죽어지낸 봄과는 다른 살아있는 봄이다.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그 여행은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나의 글 속의 그 모든 화자는 나 자신이다. 그들 안에는 내가 있고 내 안에는 그들이 있다. 나는 모든 존재가 될 수 있는 존재를 꿈꾸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설령 아무것도 되지 못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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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는 결국 장미가 될 것이다.
나는 결국 내가 될 것이다.







written, photographed by @madamf MadamFlaurt
#essay #rose #memyself



[Madam Flaurt...]


The secret of Madam Flaurt | 마담F @madamf 닉네임의 비밀
마담플로르, 오늘에 빛나라!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미투운동을 지지한다.
나의 꿈, 작가... 등단해야 할까?
마담에프의 가방 속엔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Let me introduce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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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지만, 오로지 안으로, 자신의 내면으로 만 파고드는 글쓰기 ...거침이 없습니다. 허세도 군더거기도 치장도 없네요
장미의 목표가 장미이듯...역시 멋진 글입니다. ^^

스팀잇을 계기로 매일 아침 여섯시에 기상하신다뇨.. 정말 제가 스팀잇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혁명적인 사례입니다!!!

나를 찾는다는 것이 어쩌면 강박으로 다가올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항상 무언가 실체가 있다는 환상에 빠져있기때문에 나를 붙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통스러운것이지요. 그 실체가 없는데 있다고 자꾸 붙잡으려고 하니까요. 기쁨도 지나가고 고통도 지나가고 모든 것이 지나가기때문이고 더더욱 '나'도 지나가버리지요. 한숨 한숨 한순간 한순간의 나는 그 전의 순간속의 나와 다르기때문에 그 나는 나가 아니지요. 그 사실을 알기위해 우리는 살고있나봅니다. 죽을때까지 모든 것은지나간다는 사실과 집착에서 놓아버림을 배우라고요. 그리고는 죽는데 죽을때마저도 그놈의 집착심때문에 놓아버리지 못하고 떠나가게 되는 것같습니다. 강제로요. 내의지와는 상관 없이 말이죠. 이렇게 말하는 내 의지란 것 조차도 사실 없는데 말입니다. 의지는 고정된게 아니니까요.

마담f님의 손끝에서 묻어나오는 향기를 글로는 감출 수가 없지요. 그래서 저는 모든 마담님의 글을 마담님을 생각하며 읽는답니다.

모든것이 되거나 아무것도 되지 않거나 그것은 모두 마담님에게로 귀결되겠지요. 그 자신만의 항기를 지닌 채..^^

스팀잇이 살아가는 방식을 바꾼거네요.
한번 뿐이니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세상에 가득하지만, 찾아보면 그 가운데 분명 즐겁고 행복한 일이 있을 겁니다.

일기 투어 중에 들렸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절절한 이유가 분명한 글쓰기였네요. 결국 마담f는 마담f가 되실 것입니다...

전 취침 시간이 늦어졌는데 저랑 반대시네요...

거침없는 글솜씨 입니다!
저 또한 저만의 철학과 생각을 담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습니다^^

늘 스스로에게 인내하고, 도전하는 모습, 멋지고 부럽습니다. 우리는 이겨내는 것만이 승리이고 멋지다고 배웠지만, 인정하는 모습이야 말로 어쩌면 진리에 가장 빠르게 이르는 길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와닿는 문장이 참 많았습니다. 모든 존재가 될 수 있는 존재. 좋군요.
잘 읽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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