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부한다고 남편의 직업이 바뀌지는 않아요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Earnestland, 2014)

in #kr-pen6 years ago (edited)

공부한다고 남편의 직업이 바뀌지는 않아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Earnestland, 2014)


뭐든지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 얘기는 한국에서, 대학을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돌아간다. 성실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가치는, '10분 더 공부하면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와 같은 이상한 자극 글귀로 돌아왔다. 별로였음에도, 자극은 충분히 됐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존중받기 위해, 취직하기 위해, 그리고 배우자의 얼굴이 조금 더 잘생겼길 바라며 공부했다. 대학에 와서는 끊임없이 스펙을 위해 뛰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2014년 개봉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 점을 열렬히 꼬집는다. '성실하면 행복해진다.'라는 사회의 공식을 깨뜨리니 불편한 장면들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밖에 없다. 주인공 수남은 스펙 사회에서 행복하기 위해 각종 자격증을 배우지만 컴퓨터 시대가 되어 쓸모없어진다. 이후 결혼한 수남은, 남편의 행복을 위해 대출로 집을 구매한다. 학창시절에도 이미 성실하게 살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모든 일에 열심히 임한다. 그러나 현실은 비관적이다. 그렇기에 수남은 여기까지 다다른다. '행복을 방해하는 이들을 제거하자.'

불편한 영화를 꺼려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 나도 그중 하나다. 예쁜 영상미와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좋다. 하지만 대개 불편한 영화들은 현실을 미화하지 않는다. 군부독재 시절 일어난 화성 연쇄살인 사건, 「살인의 추억」이나 해남 여교사 성폭행을 다룬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과 같은. 오히려 마주하기 싫었던 현실을 봄으로써 올바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걸 해야 할 지 생각하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불편한 현실 속의 사람들을 돕고자 다짐하기도 한다.

공부하니 남편의 직업이 바뀔 수 있다. 다른 지역의 대학교로 진학하면 지인의 스펙트럼이 달라지니 다른 사람을 만날 수밖에. 하지만 공부한다고 훌륭한 연인을 만나는 건 아니다.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훌륭하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비단 연인뿐만 아니라, 성공도 그렇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시대가 아니다. 대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토익이나 토플은 기본, 영어가 아닌 외국어를 배우고, 워드프로세서 자격증과 프리미어를 익힌다. 하지만 부족하다고 얘기한다. 코딩을 배워야 한다나. 그러다 몇몇 기업이 스펙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을 뽑겠다고 얘기하면, 일반 대학생들은 더욱 답답해진다. 경험이 스펙아닌가? 여유가 있어야 경험을 할 수 있지 않나. 우리는 이제까지 사회의 요구에 맞추어 열심히 달려왔는데, 잘못 달려온 건가? 라는 생각이 하나 둘씩 들기도 한다.

'성실한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아니니, 우리 성실해지지 말자'라고 얘기하는 게 절대 아니다. 내가 하고픈 얘기는, 무기력해지지 말자는 게 아니라 현실을 외면하지 말자는 것.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왜 행복할 수 없을까? 라는 질문을 하고, 성실한 수남이 행복해질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조그마한 발걸음을 딛자는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임했고,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건 우리의 탓이 아니다. 당신은 성실했고,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입니다. 끝없이 우울함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기에, 관람을 추천드립니다. 또한, 이 영화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정현의 연기도 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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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보고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 볼게요~^^

영화를 추천하는 글을 썼을 때, 영화가 담긴 메시지를 삶과 연결하려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영화가 궁금해지는 글을 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니체님이 제 글을 읽고 보고싶다고 말씀하시니 기쁩니다 :)

오히려 마주하기 싫었던 현실을 봄으로써 올바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걸 해야 할 지 생각하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불편한 현실 속의 사람들을 돕고자 다짐하기도 한다.

불편한 영화들의 특징이기도 하죠. 영화가 단지 entertainment(오락)가 아니라, 예술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들도 있지만, 사회에 메세지를 던져주는 영화들도 있으니까요. 저는 <도가니>를 보고서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거 같습니다. 배우 공유씨가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를 영화화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이같은 이유였죠.

가장 핵심은 "노력만 하면 성공한다."라는 잘못된 믿음인 거 같아요. 성실한 사람이 박수받을 수 있는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제가 kr-youth를 큐레이팅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인 거 같아요. :)

늘 하는 생각이지만, 참 글을 잘 쓰세요. 공감가는 내용이기에, 리스팀 할게요.

로스님! 보팅과 댓글도 감사한데, 칭찬과 리스팀까지 해주시니 감사 이상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
불편하지만, 사회적 메시지를 드러내는 영화 중 하나로 <도가니>를 들려고 했었는데. 로스님이 도가니의 얘기를 해주셨네요 :)

숨기고 싶은 현실을 수면으로 드러내려는 영화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인의 영향이 컸지요. "킬링 타임 영화 볼까?"라고 제안하던 제게, "왜 내 시간을 죽여야 해?"라고 답하던 친구.. 그래서 오락 외의 다양한 장르를 보고자 결심했던 것 같아요.

자신이 가려는 길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길인지, 그리고 옳은 길인지 끊임없이 물어보며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로스님의 말처럼 '노력만 하면 성공한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지양하며 :)

#kr-youth를 관심있게 지켜보며, 큐레이팅 하시는 모습 존경스럽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

크. 훌륭한 친구를 두셨네요. 저보다 더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큐레이터 분들 많습니다! ㅎㅎ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받겠습니다.

가르침이라니, 아닙니다 ..ㅎㅎ 말씀 감사합니다! :)

소설쟁이셨군요.. 어쩐지 글솜씨가.. 전 시쟁이입니다.하핫.

시린님! 안녕하세요! 저는 함축적인 문장을 만드는 솜씨가 없어 시를 못 쓰겠더라고요 ㅠㅠ
그래서 시 쓰는 분이 존경스러워요. 댓글 감사합니다 :)

불편한 영화를 보면 사실 기분이 좋진 않죠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해야할 생각이 남아있으니.
그렇지만 그만큼이나 생각의 저변도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써주세요:)

안녕하세요, 알파박님! 들러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편한 영화를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 맞는 말씀입니다 ㅠㅠ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보고 정말 답답하고 속상해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하지만 알파박님의 말처럼 생각의 저변이나 소수자, 사회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10분 더 공부하면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또는 '남편의 직업이 바뀐다...'
성공을 단지 돈과 외모로만 평가하는 사회 풍토가 만든 우리들의 자화상이겠죠! 세상은 변했지만, 우리들의 의식과 교육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
그 영화들이 불현했던건 단지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때문 이었겠죠! 현실을 직시하고 잘못 된것을 바꾸고 변화시킬때 행복또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까 싶네요!
자신이 행복할때 (하고싶은 일을 할때) 성공도 따라오는 법이죠...

@fur2002ks님, 반갑습니다 :) 검색해보니, '남편의 얼굴이 바뀐다'라는 말도 있지만,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 혹은 '남편의 직업이 바뀐다'와 같은 차별을 조장하는 상품이 있었네요. 그래서 제목도 '남편의 직업'으로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문장은 @fur2002ks님이 말씀하셨듯, 여자는 외모, 남자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잘못된 사회 풍토도 담겨 있는 말이죠..

현실을 직시하고 잘못된 것을 바꾸어갈 때 행복이 가까워진다는 말이 공감이 됩니다. 스스로의 행복을 지키면서도, 타인의 행복을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올바른 사회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댓글 감사합니다 :) 좋은 하루 되세요!

세상을 보는 통찰력이 뛰어나시네요.

heonbros님, 칭찬 정말 감사드립니다. :) 팔로우했어요!

현실을 외면하지 말자.
이런저런 자기합리화를 깨버리는 말이네요ㅎㅎ
마냥 환상적이고 행복한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불편한 영화도 봐둘만 하겠네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ㅎㅎ

안녕하세요 @ksc님, 들러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네, 아무래도 환상적이고 행복한 영화가 기분이 좋아지죠! :) 하지만, 불편한 영화에서 배울 점도 많아서 점점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는 중이에요.
좋은 글이라는 칭찬 감사합니다 :) 오늘 하루도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랄게요!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짱짱맨 태그 !! 새로운 글을 올리면서 처음 써봤는데 감사합니다 ♡

음,,, 성실(노력)보다 운이 더 성공을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마흔 넘으니 이런 생각이 드네요. 이 영화 못 본 영환데 챙겨볼게요. ^^

안녕하세요, 나하님 :) 운이 성공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성실에 무기력을 느끼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 댓글 감사합니다! 영화 추천해요.

보지 못한 영화인데 님의 글을 보니 주말에 보고 싶어 지네요
영화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안녕하세요, 오렌지님! 주말에 영화 보시고 감상평 남겨주세요 :)
흥미롭다니..ㅎㅎ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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