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if] 사랑의 묘약 #3

in #kr-music5 years ago (edited)

A short summary in English can be found at the end of this post.
jamieinthedark.jpg

사랑의 묘약 3부작의 마지막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다룬 1부의 첫머리에 언급했던 가에타노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대표적인 희극에 속하는 이 오페라는 1832년에 초연하였으며, 약 6주라는 짧은 시간 안에 급하게 작곡된 작품이지만 도니제티의 대표작으로 사랑받고 있다.

804656.jpg
아디나와 네모리노 역의 다이아나 담라우(Diana Damrau),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Juan Diego Florez)

네모리노(Nemorino)는 가난한 농사꾼이지만, 땅을 가진 부유한 마을 처녀 아디나(Adina)를 사랑하고 있다. 그녀는 그를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캐릭터로, 자신은 남편이 필요 없으며 계속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이런 면에서 아디나는 아마도 오페라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여성 캐릭터일 것이다. 그러나 진심으로 매정한 여자는 없으리라는 편견에서일까, 사실 아디나도 네모리노에게 관심이 있다.

당연히 그녀의 이런 태도는 네모리노에게 큰 상처가 되는데, 고심 끝에 그는 전설 속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마셨다는 사랑의 묘약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런 묘약을 얻어서 아디나의 마음을 돌리려는 것이다.

tristanMini.jpg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사랑의 묘약을 나눠 마시는 모습을 표현한 중세 그림

AMORE-jumbo.jpg

아디나에게 접근하는 또 다른 남자, 벨코레도 있다. 병장의 신분인 그는 매우 거들먹거리는 성격으로, 아디나는 사실 그에게 관심이 없지만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농사꾼과 군인이 사랑을 두고 대결하는 설정은 토머스 하디(Thomas Hardy)의 대표작 Far from the madding crowd(언젠가 따로 다루겠지만, 국내에 알려진 제목과는 달리 복잡한 세상으로부터 떠나 정도의 뜻에 가깝다.)에도 반영되어 있다.

땅에 뿌리내려서 살아가는 농부, 그리고 여기저기 이동하며 주둔하는 군인은 그 이상 대조적일 수가 없다. 네모리노가 보기에 아디나는 군인에게 넘어갈 것처럼 보인다. 물론 몰래 네모리노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아디나가 질투를 유발하려고 의도한 결과이겠지만.

결국 네모리노는 마을을 방문한 한 돌팔이 의사 둘카마라(Dulcamara)를 만나, 사랑의 묘약을 받는 대가로 전재산을 넘기게 된다. 물론 둘카마라는 사랑의 묘약을 갖고 있기는커녕, 이졸데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기꾼이다.

1499293379356_138844_cops_7.jpg

여기에서 특기할 점은 사랑의 묘약을 아디나에게 먹이는 것이 아니라, 네모리노 본인이 그걸 마시고 사랑을 쟁취할 희망을 품는다는 것이다. 둘카마라가 준 가짜 사랑의 묘약을 마신 네모리노는 갑자기 큰 용기가 생기게 되고, 아디나를 마주칠 때 냉랭한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그때까지 없었던 확신을 갖게 된다. 사실 아디나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Una furtiva lagrima(남몰래 흘리는 눈물)는 네모리노가 이 때 부르는 곡이다. 가사의 '눈물'은 네모리노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가 훔쳐본, 아디나가 몰래 흘리는 눈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가사를 단순하게 옮겨 보았다.

호세 카레라스(José Carreras), *남몰래 흘리는 눈물*

Una furtiva lagrima
남몰래 흘린 눈물 한 방울
negli occhi suoi spuntò:
그녀의 눈에서 떨어졌네
Quelle festose giovani
invidiar sembrò.
마치 웃으며 지나가는 모든 젊은이들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Che più cercando io vo?
Che più cercando io vo?
더 알아볼 필요가 있나?
더 이상 알아볼 필요가 있을까?
M'ama! Sì, m'ama, lo vedo. Lo vedo.
그녀는 날 사랑해! 맞아, 날 사랑한다구. 알겠어, 보인단 말이야.
Un solo instante i palpiti
del suo bel cor sentir!
순간, 그녀의 아름다운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I miei sospir, confondere
per poco a' suoi sospir!
마치 내 한숨이 그녀의 것이고, 그녀의 한숨은 내 것인 것마냥!
I palpiti, i palpiti sentir,
confondere i miei coi suoi sospir...
뛰는 심장의 소리, 그것을 난 느꼈어.
내 한숨과 그녀의 한숨이 섞이게 하는...
Cielo! Si può morir!
하늘이여! 이제 죽어도 좋아.
Di più non chiedo, non chiedo.
더 이상 바랄 게 없어.
Ah, cielo! Si può! Si, può morir!
하늘이여, 죽어도 좋아!
Di più non chiedo, non chiedo.
더 이상 요구할 게 없으니.
Si può morire! Si può morir d'amor.
정말로 죽어도 좋아! 사랑으로 인해 죽어도.

비록 사기꾼이 준 가짜이지만, 네모리노로 하여금 대범하게 행동하게 하고 결국 극의 결말에서 아디나의 마음을 알아채게 해준 이 묘약은 분명 효과적이다. 그래서 네모리노에게만큼은 사랑의 묘약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KakaoTalk_20181101_220140552.jpg
1950~60년대 풍으로 연출한 사랑의 묘약

그 공으로 돌팔이 둘카마라도 승승장구하게 되고, 아디나는 벨코레를 거부하고 네모리노와 결혼식을 올리면서 막이 내린다.


wine-glass-2740148_960_720.jpg

둘카마라가 네모리노의 전재산을 받고 판매한 이 약의 정체는 물론 싸구려 와인이다.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은 오페라계에서 베르디(Giuseppe Verdi)의 La Traviata축배의 노래(Libiamo ne' lieti calici: 즐거운 잔을 들어 마시자)에 버금가는 와인 예찬인 셈이다.

17-18-02-MC-D-0038-Canadian-Opera-Company-by-Michael-Cooper.jpg
20세기 초의 모습으로 연출한 사랑의 묘약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초기 관람객들은 허황된 미신을 믿는 농사꾼의 모습에 웃음을 지으면서, 술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묘약이 되는 이야기에 공감하였을 것이다. 12세기에 신화로 기록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19세기에 사랑의 묘약을 찾는 네모리노의 이야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비극에서 희극으로 넘어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지난 회차 보기

motif: 사랑의 묘약 #1
motif: 사랑의 묘약 #2


KakaoTalk_20181110_163719194.jpg


For @sndbox: This article is the sixth of my series on the classics of literature, history and philosophy; it is a project around which I wish to build a community. This particular post is on the opera L'elisir d'amore by Gaetano Donizetti, and is the final part of a mini-series surrounding the notion of the elixir of love. Having begun from Tristan and Isolde and ending with this wine party of an opera, the saga of the love potion has evolved from the tragic to the comic.



Sponsored ( Powered by dclick )

dclick-imagead

Sort:  

#질투 #술 #성공적

대문용 짤 여기 저장해둠...관련자 분 보셍

ancient-1226277_1280.jpg

맛나게도 생겻네...

예쁜데 뭐로 할진 애매함...

배달료 5천원ㅋㅋㅋㅋ

sign-2406909_1280.jpg

이건 옆을 좀 잘라야 할 듯...

술이야 말로 사랑의 묘약....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매일 술 드시는 그 분은...

Hi @jamieinthedark!

Your post was upvoted by @steem-ua, new Steem dApp, using UserAuthority for algorithmic post curation!
Your UA account score is currently 4.211 which ranks you at #2815 across all Steem accounts.
Your rank has improved 3 places in the last three days (old rank 2818).

In our last Algorithmic Curation Round, consisting of 231 contributions, your post is ranked at #147.

Evaluation of your UA score:
  • Some people are already following you, keep going!
  • The readers like your work!
  • Try to improve on your user engagement! The more interesting interaction in the comments of your post, the better!

Feel free to join our @steem-ua Discord server

'네모리노 본인이 그걸 마시고 사랑을 쟁취할 희망을 품는다는 것이다. 둘카마라가 준 가짜 사랑의 묘약을 마신 네모리노는 갑자기 큰 용기가 생기게 되고, 아디나를 마주칠 때 냉랭한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그때까지 없었던 확신을 갖게 된다. 사실 아디나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
이 대목이 왠지 영화 인셉션 같은 느낌이네용. +.+

오 그것도 그렇네요. 아 아까 어느 분이 풋살 밋업 올리신거 봤어요. ㅎㅎㅎ

시간날때 함 와보시죵! 겨울오기 전에 같이 뛰어봐용~

아 전 운동이라곤 근력 운동만 합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뛰는거 극혐!

크.. 아쉽습니다. 그라운드 위에서 숨만 쉬다 가셔도 되는데용.
제임희님 오시면 여성 멤버중에서 탑 드실수 있으실 것 같은데. -.-+

ㅎㅎ정말 숨만 쉬는 걸로 탑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람 맘 수시로 빠뀌는 것이 인생의 묘미!!
갑자기 공과 함께 뛰고 싶은 생각이 들면 언제든 말씀 하세용~
그리고 시간 날때 한번 봐보세용~
www.youtube.com/embed/8F9jXYOH2c0?feature=player_detailpage

ㅋㅋ넵. 근데 링크가 왜 살아있지 않을까요. 엔터를 안 치셔서인가...

Coin Marketplace

STEEM 0.30
TRX 0.12
JST 0.033
BTC 64344.02
ETH 3142.36
USDT 1.00
SBD 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