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25. 봉인 해제

in #kr-diary6 years ago (edited)
  1. 2주 전쯤 다리에 홍반이 생긴 후 친구에게 얘기했는데, 친구가 증상을 듣더니 혹시 라임병은 아니냐고 물었다. 이후 집에 와서 라임병에 대해 검색했는데 홍반 모양이 완전 똑같지는 않으나, 간혹 비슷한 모양인 경우도 보여 확인차 피부과에 내원했다.

    의사는 내 다리를 보더니 이 나라에 라임병이 보고된 적은 없지만, 자신이 아는 이런 종류의 홍반은 라임병밖에 없다며 피검사를 하자고 했고, 치료법은 어차피 항생제를 3주 정도 복용하는 것이라 일단 항생제를 복용하면서 피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항생제를 먹는 건 어딘지 꺼림칙하면서도, 라임병이 조기에 치유되지 않았을 시 발생하는 증상에 심장 질환, 안면 신경 장애, 관절염, 기억 장애 등 만나고 싶지 않은 병명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지난 10일간 항생제를 꾸준히 복용해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검사 결과가 오늘에야 나왔는데, 다행히도 정상이었다. 이제 항생제에서 해방이다.

  2. 우리는 이곳에서 차례를 지낸다. 양을 많이 준비하지는 않기에 전과 산적은 보통 당일에 술과 함께 끝나고, 나물과 탕국, 생선구이, 잡채는 이틀 정도 먹으면 사라진다. 여기에 삶은 닭고기나 갑오징어 또는 문어도 올리는데 올해는 삭힌 홍어도 더했다.

    남편은 제사를 가져온 것에 대해 나에게 미안해하지만, 내 경우 매일 요리하는 대신, 한 번에 5~6끼 음식을 준비하는 셈이라 부담도 불평도 없다. 올해는 술 없이 전을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지만 어차피 소주를 좋아하지는 않으니 괜찮을 것도 같아 굴전만 부치려던 것을 새우전까지 부쳤다.

    그런데 남편이 백세주를 사 왔다. 한국에서는 분명 백세주가 소주보다 비싼데, 이곳에서는 소주가 12,000원, 백세주가 만원 정도에 팔린다고 한다. 술을 열기 전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차례를 지내는데 백세주의 향기가 온 거실에 진동했다. 차례가 끝나고 음식을 식탁에 올렸는데 전도, 두부구이도, 홍어도 왜 다 안주로만 보이는지.

    나와 남편 모두 약을 복용 중이라 술을 맛볼 수 없어 괴로워하다가 번뇌를 없애주겠노라며 남편이 싱크대에 술을 버렸다. 순간 끓여 먹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편이 빨랐다. 사케도 불을 붙여 데워먹고, 겨울엔 와인도 끓여 먹는데, 백세주도 끓여서 향과 맛이라도 볼 것을.

  3. 나는 들깻가루로 무친 고구마순 나물을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가을이 되면 시장에서 고구마순을 사다가, 또는 밭에서 끊어다가 남편과 함께 껍질을 벗기곤 했는데, 귀찮았던 남편은 제발 껍질이 제거된 고구마순을 사 오라고 했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것이 못 미더웠다.

    올해는 마침 건 고구마순이 있어 물에 불려 나물로 만들었는데, 맛있게 잘 먹은 후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났다. 제품 겉면에는 알레르기에 대한 아무런 경고문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들깻가루가 범인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유독 소고기, 돼지고기를 온갖 음식물과 같은 공장에서 취급하기에, 이곳에 온 후 겪은 알레르기 반응의 반은 한인 마트에서 사 온 된장, 쌈장, 콩가루에 의해서였다. 같은 시설이라 적혔는데도 못 보고 지나친 경우도 있고, 아예 적혀있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이번에는 가벼운 구순염, 결막염, 비염이 함께 왔는데 항생제를 먹는 도중에 항히스타민제까지 먹기는 싫어 그냥 버텼다. 시간은 모든 걸 해결하는지, 항생제를 먹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 오니 결막염, 비염도 사라졌고 구순염만 조금 남아있다. 끝까지 안 먹고 버텨야지.

  4. 드디어 마나마인에 쓰던 뉴질랜드 여행기를 끝냈다. 올 1월부터 5월까지 스팀잇에 썼던 여행기를 옮기고 있었는데, 막상 옮기려고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글과 사진이 대부분이라 사진도 수정하고 글도 고쳐 쓰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아마 또 6개월쯤 후에 보면 마음에 안 들겠지만 일단은 이대로 마무리해야지.

    원래는 1주일에 한 편씩 여행기를 올리려 했는데, 왠지 그렇게 진행하다가는 올 1년 내내 뉴질랜드 이야기만 쓸 것 같아 열심히 뉴질랜드 여행기를 끝냈다. 덕분에 계속 뉴질랜드 여행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좋았다. 여행기를 쓰는 건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이고, 타인에게 도움이 될 정보이기도 하지만,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좋은 일인 것 같다.

이전 글 : 올해의 첫 가을 운동
다음 글 : 운동은 다음주로..


Sort:  

항생제 안먹고 버티기, 응원합니다!
그나저나, 그 아까운 술이 싱크대로 ... 가슴이 넘 아픕니다 ㅎㅎ

앗. 이곳은 항생제를 꼭 필요할 때만 처방해줘서 처방 받으면 꼭 먹는게 좋아요. 제가 안먹고 버티고 있는건 알레르기 약인 항 히스타민제인데 알러지 반응이 심해지면 뭔가 미련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왠지 약에는 손이 안가더라고요.

술은 진짜 다시 생각해도 너무 아까워요. ㅠㅠ 다이어트도 시작해서 한동안 술을 안 건드려고 하는데, 다음에 남편도 몸이 좀 괜찮아지고 나면 같이 전 구워서 백세주로 축하하려고요. ㅋㅋㅋ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설레고 두근거리는 건 참 좋은 것 같아...
라임병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야!
아픈 건 넘 싫어ㅠ 써니형 아프지마..

걱정해줘서 고마워! 나도 올해 고양이랑 남편이랑 병원을 많이 들락거려서 올해는 아픈거 이걸로 끝났음 좋겠어. 도담랄라형네 가족도 건강한 가을 겨울 보내!

라임병, 이름만 들어본 적 있는데 꽤 심각한 병이군요. 아니시라니 다행입니다!
남편분은 김유신이 말의 목을 자르는 결단성을 지녔네요ㅎ 술을 쏟아버리다니. 찬장 한 구석에 둘 법도한데 말이죠. ^^
다음 연재 총탄을 갖고 계시니 맘이 든든하시겠어요. 기대할게요ㅎㅎ

오.. 들어보신 적이 있으시다니! 저는 아예 처음 들어봤어요. 미국에선 되게 많이 발생하는 병이라고 하더라고요.
남편이 저렇게 결단성이 있는 줄은 저도 몰랐어요 ㅋㅋㅋㅋㅋㅋ

그곳에서 삭힌 홍어도 먹을 수 있나보네요. 벡세주는 킵했다가 드시지 아깝게...ㅎㅎ

결과가 언제 나올지 몰라서요. ㅋㅋ 삭힌 홍어도 한인 마트에 팔더라고요. 그런데 막걸리 없이, 돼지고기 없이, 푹 쉰 김치 없이 먹으려니깐 전혀 기분이 안났어요 -_-

읽으면서 걱정했는데.. 안심하면서 술 부분에
빵 터졌네요. 한모금 드실줄 알았는데 버렸네요 아깝네요..ㅎㅎ 빨리 낳으세요. 술을드시고 하늘 보는것이 좋다고 하셔서 저 같은사람이 또 있구나 생각
생각 했어요. ㅎ 술 좋아합니다^^

몇년전에 우연히 녹두죽을 먹었는데 약을먹어도 좋아지지 않던곳이 녹두죽 먹고 4 일 만에 좋아졌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좋아요. 그래서 가끔 녹두죽을
며칠씩 먹어요.
한번 추천 드리고 싶네요.
녹두 해독 작용이 몸 을 정상으로 돌리는것 아닐까
생각해요. 즐거운 시간 되세요^^

얼마전에 저희 어머니도 녹두 넣은 삼계탕 한 번 남편한테 해주라고 하셨는데, 녹두가 좋긴 좋은가봐요. 녹두는 여기서도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깐 언제 한 번 해먹어 볼게요. 감사합니다! :)

강아지의 종양이 외상으로 번질 때, 사실상 암이라고 봐야하니까 그게 싫어서 대신 의심했던 여러 질환 중 하나가 라임병이었네요...ㅠㅠ 무섭죠. 회복하셨다니 다행이네요. 항생제도 오래 먹는 건 좀 꺼려지더라구요.

당시 얘기 하실 때 마다 많이 힘들어 하셨던게 느껴져요. ㅠㅠ 저도 라임병이고 싶진 않아서 링웜같은 피부병이 아닐까 고민하면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라임병이 아니냐고 하는 바람에 더 걱정했어요.
항생제 먹기 전에 뽑은 피인데 라임병도 아니라는걸로 봐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고양이들이 멀쩡한거 보니 링웜도 아닌가봐요 :)

고양이들 링웜을 무좀에 비교하잖아요, 보통? 링웜은 무좀과 같은 종류의 균인데 세부 과(?)가 다르다고 하네요. 물론 무좀뿐 아니라, 그런 균이 한 세 종류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무좀 균(또는 흡사한 균) 때문에 생기는 붉은 반점/피부병은 고양이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대요.

아니면 고양이들이 드러나지 않고 보균만 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 경우에도 사람에게만 반점이 생기겠죠? 그런데 뭐니뭐니 해도 피곤하거나 스트레스가 있으면 면역이 약해져서 이런 피부병에 감염되는 것 같습니다.

네 링웜일까 라임병일까 고민하다가 감염내과가 아닌 피부과에 간거였는데, 링웜도 아니라고 하고 라임병도 아니었어서 그냥 원인을 모르는 채로 끝났어요.

저도 고양이들 링웜만큼은 진짜 너무 무서워요. 겪어본 적은 없지만요. 건강에 크게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지만, 보기에 너무 불쌍해서...ㅠㅠ

맞아요. 저도 아직 안겪어봤는데 안겪고 싶어요. 그래서 길고양이들 밥주고 들어오면 옷은 세탁기로, 사람은 욕실로 직행해요.

저도 마나마인에 옮길 때 읽어보면 꼭 고칠데가 있더라구요ㅎㅎ
아랍 여행기는 흔치않아서 궁금해요!

역시 저만 그런게 아녔나보군요 ㅋ
여행기는 아직 순서도 못 정했지만, 조만간 시작해볼께요!!

일단 라임병이 아니라 참 다행입니다.
건강하셔야죠.

타국에서도 차례를 지내시는군요.
몇 끼 분량의 반찬을 뚝딱 하시는 걸 보면 솜씨가 좋으신 듯 합니다.
대체나 전, 두부구이, 홍어... 안주가 맞는 것 같긴 합니다~ ㅎㅎㅎ

여행기를 쓰는 건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이고, 타인에게 도움이 될 정보이기도 하지만,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좋은 일인 것 같다.

저는 글재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완전 공감합니다~^^

제사 준비는 몇 번 하다보니 익숙해지더라고요. :) 처음에는 인터넷도 찾아보고 하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는데 이젠 쉽게 만들어요.

리수니님 저도 11월에 그쪽에 출장 가요. 계신 곳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요르단요. 후후...

헛, 먼 걸음 하시는군요. 요르단은 여행 다녀온 친구들이 꽤 있어서 알겠는데, 이스라엘은 왠지 무섭게 느껴지는건 편견 탓일까요? ;ㅂ ;

아마 북한이 미국-이스라엘과 친하지 않은 탓이겠지요.

오랜만에 드립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감기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17
TRX 0.15
JST 0.028
BTC 56775.06
ETH 2345.64
USDT 1.00
SBD 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