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의 일상기록 #4/Music Box #5

in #kr-diary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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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눈이 말똥말똥할 때 따라부르는 노래가 있다. Blues in the Night. '블루스'라는 단어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갖는 복합적인 뉘앙스 다 빼고, 그냥 담백하게 '구슬픈 노래' 정도로 보면 생각나는 노래.

엄마가 '남자를 조심하라'고 경고한 내용을 기억하며 부르는 노래다. '엄마 말을 들을걸' 류의 노래는 그 자체로 하나의 미니 장르를 이루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도리스 데이는 '케 세라 세라'도 잘 불렀는데, 한 히치콕 영화에도 나온다.) 그래서인지 가사는 당연히 약간의 비난성 원망을 품고 있다. 누가 현실에서 이런 얘기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데, 노래로는 하나의 장르니까, 뭐.

일단 요런 곡은 감정과잉이란 생각이 안 들고, 음악 장르의 특성상 속편하게 '민담'의 느낌을 담아내는 듯하다. 블루스는 해소하는 성질이 있다. 상처를 강박적으로 계속 자랑하는 후벼파는 비틀린 나르시시즘이 없어서 그런지, 곡을 통해서 그냥 하나의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다고나. 옛날 기차의 증기 뿜어내는 소리에 비견한 '후이'는 정말 멋지다.

왜 내가 이 노래만큼은 도리스 데이가 부른 버젼을 선호하냐면, 누군가의 딸 느낌이 강한 배우라 그런지 이 노래와 뭔가 어울려서이다.

어릴 때는 도리스 데이가 다른 아름다운 고전 영화 배우들 급이 아닌 것 같은데 왜 록 허드슨이랑 나오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는데, 사실 록 허드슨이 화면에서 특히 멋진 배우라 그랬던 것 같다. 반대로 사진에서 확 살아나는 인물은 제임스 딘이지. 둘이 같이 잡힌 샷이 있는 영화를, 보면 제임스 딘은 그냥 어린아이 느낌이다.

암튼 지금 보면, 도리스 데이는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 딸을 잘 소화하면서도 목소리에 앳됨이 남아 있는 매력이 있다. 마치 요즘의 아이돌처럼 여기저기 가족/로맨스 영화에 다 나오다보니, 가수로선 약간 과소평가된 면이 있는듯.

밤에 부르는 것은 아니지만, 블루스로는 역시 Birth of the Blues를 빼놓을 수 없다. 빅밴드가 꽥꽥 거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목소리는 너무 여유 있다. 역시 나의 시나트라.

도리스 데이보다 목소리가 성숙한, 좋아하는 여성 보컬들도 몇 더 있는데, 특정 노래 위주로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페기 리가 딱 그런 경우다.

I'll be seeing you는 '또 보자고' 정도의 인사말인데, 이 노래에서는 문자 그대로 적용해서 "어딜 봐도 네가 떠오른다"는 맥락에서 사용된다.

비록 이 노래가 수록된 뮤지컬은 폭망했지만, 결국 2차 대전 참전 군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된 노래다. 언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던 사람들이 좋아하던 가사. 나는 페기 리가 조용하게 부른 이 버젼이 좋다.

예전에 노트북이라는 (나는 오글거려서 못 보는 류의) 영화에서 빌리 홀리데이가 부른 버젼으로 나오기도 했는데 물론 그것도 좋다. 거의 언제나 그렇지만 훨씬 느리고 슬프게 뽑아냈다.

페기 리는 목소리 자체가 약간 멜랑콜리한 여자 같다. 좀 더 밝은 노래를 들어봐도 그렇다. 집에서 종종 부르는 노래로 Crazy in the Heart가 있는데, 참 오글거리는거 싫어하면서 이런 노래는 잘도 듣고 부르는듯. 역시 음악은 죄가 없다.

좀 더 좋아하는 여자 보컬은 다이나 쇼어인데, 앙드레 프레빈 반주로 낸 앨범 중에서 이 노래를 특히 좋아한다. 역시 방구석에서 부르기 좋은 노래인데, 거의 순전히 마지막 부분 때문이다.

사실 프레빈이 반주한 이 앨범(Dinah Sings, Previn Plays) 노래는 다 좋긴 한데, 반주가 균일해서인지 분위기가 다 똑같다. 녹음용 앨범이라기보다는 독주회에 간 느낌이다.

프레빈이 따로 낸 재즈 연주 앨범(A Touch of Elegance)도 간혹 듣는데, '경음악' 느낌으로 차분하게 듣기 좋은 곡도 있고,

경쾌하게 좀 더 재즈답게 연주한 곡도 있는데, 사실 클래식 연주자 느낌도 많이 남아 있다. 찝찝한 습한 날씨에 들으면 좋은듯...

그러나 내가 이 앨범에서 제일 좋아하는 트랙은 따로 있다. 여러 보컬로도 종종 들은 곡인데 이 편곡은 특히 마음에 든다. 내가 보기에는 도입부도 라디오 프로그램 같은 것의 테마 음악으로 아주 적합하다.

위에서 잠깐 히치콕 영화를 언급했는데, @socoban님이 아까 '싸이코' 관련 글에서 '이창'을 좋아한다는 얘길 했다. '이창'은 확실히 서스펜스가 가장 잘 살아있는 영화 중 하나이고, 빛의 사용도 뛰어나다. 그걸 리메이크하려는 시도는 어쩌면 처음부터 실패일 수밖에 없었는데, 1세대 수퍼맨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리브가 휠체어에 탄 주연을 맡았다. 말에서 떨어진 사고 이후에, 그러니까 실제로 그 배우가 걷지 못하는 상태였을 때 만든 TV용 영화이자 아마도 마지막 영화. 지금 생각하면 영화 책임자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나 싶으면서도, 리브의 선택에선 생에 대한 의지가 느껴진다.

걷지 못할 정도의 사고를 당한 인물로는 작곡가 콜 포터가 있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재즈 스탠더드란 엄청나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더 유명한 노래도 많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In the still of the night.

비교적 최근 가수의 해석이 마음에 들 때는 별로 없는데, 이상하게 이 버젼은 가끔 듣게 된다.

그라펠리의 버젼도 매우 시원한 맛으로 괜찮으니, 바이올린과도 매우 잘 어울리는 곡이다. 곡에 대한 고민이 많이 엿보이는 편곡이다.

의외로 콜 포터에 대한 전기적 영화에서 케빈 클라인, 애쉴리 주드가 부른 버젼이 정말 이 노래의 느낌을 잘 살리고 좋다. 당연히 가수의 실력은 아니기 때문에, 영화를 보지 않고는 아무래도 감흥이 떨어지긴 한다. 어쩌면 2000년도 이후로 나온 영화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영화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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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포터의 생에 대한 영화는 더 옛날 것도 있는데, 아무래도 시대적 제약 떄문에 그의 동성애 성향에 대해 암시적으로 그릴 수밖에 없었던 데다가 캐리 그랜트가 콜 포터로 나왔기 때문에 현실성이 많이 떨어지긴 한다. 콜 포터 역을 맡기에는 너무 잘생겼으니까! 그랜트도 사진보다는 영상에서 훨씬 빛나는 배우다.

콜 포터는 언어유희에 뛰어났다. 영화 제목 De-lovely도 콜 포터의 노래 제목 It's De-lovely에서 따온 것이기도 한데, 역시 좋아하는 노래다. 흥행한 뮤지컬에 수록된 노래라 영화도 제법 잘 알려져 있는데, 예전에 관련 글도 썼던 영화 Singin' in the Rain에서 조연이었던 도널드 오코너와 미찌 게이너가 De-lovely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여성만이 출 수 있는 우아한 탭댄스란 어떤 것인지 볼 수 있다. 노래는 4분부터.

Singin' in the Rain 영화 글을 쓴게 벌써 지지난달이다. @stylegold님이 오마주 프로젝트를 계속 하신다면 조만간 살려봐야겠다ㅋ 스팀잇에 가입승인 되고도 안 들어오다가 가입인사를 쓴 게 3월 5일이니까, 활동한지 두 달하고도 보름이 다 되어간다.

1일 1식을 잠시 쉬다가 다시 돌아온지 일주일 정도 됐는데, 식사한지 12시간이 넘은 이 시간대가 (깨어 있다면) 딱 배고파질 수 있는 때이다. 물론 이것은 가짜 배고픔이다ㅋ 물 마시면 금방 사라지는. 자고 오전에 일어나면, 배고픈 것보다는 뭔가 더 생각이나 눈빛이 명료해진 상태가 된다. 마치 한 끼 먹고 동굴에서 잠들었다가, 다음 날 일어나서 그날 저녁에 먹을 것을 사냥하러 나가는 원시인처럼.

먹는 얘기가 나와 말인데, 요즘 우리 몬티가 잘 안 먹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양이 사료는 꺼내져 있으면 요즘 같은 날씨에는 조금이라도 눅눅해지게 마련이라, 입맛이 까다로운 녀석들은 자꾸 새로 꺼내달라고 보챈다. 사료 봉투를 툭툭 건드리고, 심하면 찢는다거나. 그런데 내가 자는척 하고 있으면 그냥 두말없이 내놓은 밥을 먹는 모습이 조금 괘씸하다.

그런데 몬티는 요즘 그런 차원을 넘어서, 밥 먹는데 다른 아이들이 옆에서 얼쩡거리는 것에 약간 질린 모습을 종종 보였다. 엄청 먹고 싶어하다가 막상 새로 꺼내주면 그냥 조금 먹는 시늉만 하고 가버린다거나. 그래서 밥을 멀리 따로 주고 옆에서 지켜주니까 잘 먹는다.

몬티는 내게 가장 이쁨 받는 아이이기 때문에, 아빠냥이라곤 해도 모든 아이들이 다 몬티를 아기처럼 그루밍해주고 이뻐해준다. 일종의 아부로 해석해야겠지만, 진짜 다들 몬티를 애기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심지어 입양한 막내 몽땅조차 자주 아빠를 이뻐한다. 처음 막내를 데려왔을 때 이렇게 체격차가 컸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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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이것도 데려왔을 당시보다는 약간 큰 모습이다. 몽땅이 사진들이 많이 들어있는 예전 폰 액정도 나가고 연결 잭도 엉망이라, 사진을 다 건지려면 언젠가 고쳐와야 한다.

몽땅이는 추운 겨울에 박스 속에 넣어진채로 버려져 있던 아이이다. 처음에는 한쪽 눈에 결막염 증상도 약간 있었고, 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미 독감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주로 많이 알려진 허피스는 아니었고, 칼리시였다. 물론 진단 받으러 데리고 그 추운 날에 간 것은 아니고, 찾아본 증상에 의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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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이들에게도 거의 다 독감을 옮겼고, 몬티의 경우 칼리시 독감 증상 중 하나인 다리절기가 나타나기도 했다. 까뮤는 죽을 상을 하고, 하루 정도 소변을 잘 못 보는듯한 행동을 보였다.

몽땅이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만도 했는데, 손바닥마한 것이 워낙 불쌍하고 눈치를 보는 모습에 미워할 수 없었다. 그 날씨에 그렇게 버린 사람이 문제이지...한 보름 정도 전부 닭가슴살 삶아 먹이면서 돌봤고, 결국 독감은 지나갔다.

몽땅은 오자마자 다른 애들 밥그릇으로 가서 마구 먹어댔는데, 먹으면서 소리를 연신 질렀다. 누가 빼앗아갈까봐 그런 건지, 배고프다는 표시였는지...지금도 잘 모르겠다. 야옹 소리는 독감으로 목이 쉬어서 못 내면서, 밥 먹으면서 큰 비명은 잘만 질렀다.

현재의 몽땅은 마치 토끼를 닮은듯한 얼굴에, 몸이 언뜻 보기엔 길쭉길쭉하면서도 엄청난 뱃살과 뼈대를 갖고 있다. 어릴 때의 저 햄스터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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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땅을 데려왔을 때, 그전까지 막내였던 숀이 가장 기뻐했다. 아니, 숀만 기뻐했다는 게 정확하다. 몽땅도 숀을 굉장히 우러러보는 모습이었다. 엄청난 크기 차이에도 몽땅이는 마치 공처럼 굴러다니면서 숀과 같이 놀았는데, 새로운 아기의 침입을 싫어한 다른 어른들(?)이 가끔 화내곤 했다.

그럴 때면 몽땅이는 고슴도치처럼 얼굴을 파묻고 가만히 엎드려 있었는데, 마치 자기만 눈을 가리면 남들도 자신을 못볼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버려진 적이 있어서인지 엄청나게 눈치를 보고, 화장실도 꼭 무슨 청소하다시피 처리하고, 보통 새끼고양이들의 당돌함도 없어서 절대 다른 고양이에게 대드는 법이 없었다. 불쌍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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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보지 못할 우리 몽땅이의 어린 모습이 그립다. 버려졌던 후유증은 없어지지 않는 것인지, 지금도 눈치를 보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고, 이유 없이 불쌍한 척 울 때가 있다. 한번씩 화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면 다락으로 도망간다. 사람들이 놀러오면 아예 내려오지도 않는데, 가끔은 계단에서 얼쩡거리면서 귀여운 척을 하기도.

물론 덩치가 커서인지, 더 이상 불쌍하진 않다.

이만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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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 글이 엄청나게 길군요..

도이스데리의 염소창법이 상당하네.

제형이 야심한 밤에 염소창법으로 따라부르고 있을걸 생각하니 뭔가 재밌어.

그리고 몬티 등이 아주 토실토실하네.

난 창법 그런거 없어ㅋㅋ

몬티는 얼굴도 넙덕하고...곰돌이 체형이랄까. 아직 깨어있네.

ㅋㅋㅋㅋㅋㅋㅋ글로만봐도 귀엽네 넙덕하고 곰돌이체형이라니...보통 6시자 새벽

염소창법ㅋㅋㅋㄲ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벽4시에 염소창법으로 고양이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제이미

임병수가 염소창법의 대가지.

한번 듣고 가죠ㅋ

콜...병수형이 진정 염소. 염소의 사랑을 염소 염통 바이브레이션으로 소화.

몽땅이 애기였을 때 거의 천사네요 천사..

감사합니다. 저 당시에 되게 귀여웠는데...ㅎㅎ

커피 한잔과 함께 올려주신 곡들 감상하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커피맛이 감미롭네요

와, 저도 커피 간만에 마셔야겠어요. 감사합니다. ㅎㅎ

아기고양이 조그만거 보소 아웅 콱 뚜이시 하고싶다.

먹지마 ㅠㅠ

여기서 뚜이시란 쓰다듬다야 ㅠ..

때린다는 줄ㅠ

안때려 ㅠㅠ 나 동물 좋아해

다음주 오마주 기대해요--

일상이라고 쓰고 음악에 영화 이야기를 하셔서, 일상도 고상하시구나 했어요.^^
새끼 고양이는 정말 모성애(?)같은 걸 자극하는 거 같아요.
너무 연약하고 귀엽고.ㅋㅋ

밤에 잠들기 전에 듣던 음악들...따라부르는 버릇은 그다지 고상하진 않습니다. ㅋㅋ

하나 정도는 새끼로 남아줬으면 좋겠어요. 너무 좋은 새끼 고양이 ㅠㅠ

ㅋ 이런~~ 나중에 자세히 읽어볼께요

ㅋㅋㅋ새벽에 못 보고 바로 주무셔서 다행...

정말 잠이 안왔나 보네요^^
포스팅에 두가지 내용을 쓰신것 보니...
미얀하네요. 먼저 자서 ㅋ~~
상상이 됩니다. Blues in the Night. 를 부르는 모습이~~
남자를 조심하세요 ㅋ 왠지 연결되는 이느낌은...
몽땅이는 완전 귀엽네요^^

찬찬하게 들어봐야겠네요. 글도 하도 맛깔 나고해서요.

예쁜 칭찬의 말씀이네요! 감사합니다. :)

내 세포를 깨워주는 음악들. 제이미의 추천음악 넘 좋아요! ㅎㅎㅎ 근데 몇개가 안 열려요 ㅜㅜ

헉스...전 다 괜찮은데 어떤 건 시작이 조금 오래 걸리더라구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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