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뭣이 중헌디?

in #kr-dairy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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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르는 사람 있고, 치우는 따로 있다.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많이 듣던 말이다. 그 공식에 딱 달라 붙는 집이 우리 집이지. 엄마는 치우는 사람, 나머지는 어지르는 사람. 술먹고 많이 어지럽히며 글을 썼는데, 오늘은 치우기가 어렵다. 글을 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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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안부 문자를 잘 안 보내는데, 술의 힘을 빌려 엊그제 부터 보내야지 생각했던 문자를 보냈다. 내일 돼서 카톡에 1이 없어지면 만족이다. 잘 살고 있겠지. 그를 너무 많이 팔았다. 글 쓰는데 손 모으는 공백이 너무 많다. 잘 쓰이질 않는다. 잘 전달되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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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차례상이 채워지고, 아버지가 하신 일은 지방 쓰고, 제주로서 절하고 그뿐이었다. 우리집 차례상에는 밥공기가 다섯, 국그릇이 다섯. 나는 나의 윗대만 알지 나머는 누구의 것인지도 모른다. 글씨는 참 잘 쓰시네, 우리 아부지. 네 살 때부터 사서삼경을 떼셨다는데 진짜일까. 그럼 뭐 하나, 책에만 있지 현실에서는 쓸모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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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차례상을 위해 엄마는 사흘 전부터 준비했다. 상 하나 차리기에도 이제 버거운데, 조상님들 앞에 쓴 지방에 글씨 몇 자, 절 몇 번 할 아버지가 상을 하나 더 놓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에, 명절 이른 아침부터 내 얼굴은 일그러졌다. 그 얼굴을 엄마만 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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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이 중헐까, 돌아가신 양반들이 중헐까. 지난 번 벌초 때도 느꼈다, 아버지가 당신 사촌들을에게 하신 말씀을. 누군가는 귀담아 듣고, 누군가는 흘렸다. 누군가는 아버지의 사촌들일 것이고, 누군가는 그 아랫대이겠지. 무엇이 중할까. 나는 우리 아버지 말씀을 흘리지 않고 들은 그중의 당숙들 한분을 좋아한다. 무엇이 중헌지 아시니까. 그것도 나의 입장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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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아버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으니. 아버지의 아버지 이야기를 직접 듣지 못했으니, 아버지의 형제, 사촌인 당숙, 당고모에게 들을 뿐. 적지도 많지도 않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할아버지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직접 뵈고 나와 세월을 함께 한 할머니의 인생보다 더 눈물이 났을까. 겪어보지 않았기에 넘겨짚지도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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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되기 전부터 동생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결혼을 앞둔 스트레스가 저럴까 싶었지만, 내가 보기엔 스스로 짐을 얹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몇 달 전 결혼도 하기 전 시댁의 할아버지 제사를 다녀왔었다. 그때부터 스트레스가 쌓였을까. 아직 우리 집 동생인데, 시집도 가기 전에 명절 때 같이 가자는 말이 무엇일까. 나도 알 수 없고, 동생은 더더욱 모른다. 마지막 명절 가족들과 같이 쇠고 싶은게 잘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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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결혼에 허락하고 자시고 할 입장은 아니지만, 내 매제 될 놈이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걸 듣고, 나는 괜찮다고 여겼다. 우리 집은 그렇지 못했으니까. 상견례 자리에서도 사돈 어르신들은 좋아 보였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란 걸 이제야 느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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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는 넘겨짚어 생기는 것이라는 걸 동생에게 말해줬다. 니가 갈 집에서는 요만큼 생각하는 걸 너는 이만큼 부풀려 겁에 질리는 거라고. 나도 동생에게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니 이렇다 할 이야기를 짓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고. 남 이야기 듣지 말고, 니 생각만 하라고 말해줬다. 나 자신 빼고 남이면 결국 동생도 남이다. 남 이야기는 쉽지. 너나 잘 하세요,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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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추석에는 엄마와 종묘를 다녀왔고, 작년에는 엄마와 동생과 창덕궁을 다녀오려 차를 몰고 갔다. 차 옆구리를 안 긁고 온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사대문 안 골목을 헤집었다. 사람은 사람대로 차 안에서 구경하고, 차는 차대로 골목이나 대로나 막힘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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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조선총독부 건물은 참 많이도 갔다. 그때는 총독부가 아닌 국립 중앙 박물관이었지. 사대문 안 다섯개의 궁궐이 있다는데, 제일 최근에 지어졌을 경복궁만 많이 가봤었다. 맞나? 가만보자...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경희궁? 맞나? 역사에 관심 많다면서 수박 겉 핡기 식이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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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동선은 이미 머리속에 그려놓았다. 한번도 가지 못 한, 정말 가보고 싶은 창덕궁. 창경궁을 보면 보고, 시간되면 덕수궁도 보고 아니면, 광장시장이나 엄마가 광장시장 육회 먹고 싶다 했지만 그 시장 육회 말고, 내가 아는 종로의 백제정육점으로 발길을 돌려야지. 결국 스팀잇 컨텐츠 위주로. ㅎㅎㅎㅎㅎ백제정육점 오랜만에 가보는데 맛 없으면 테이스팀 안 올리고. 생생정보통 따위 글은 올리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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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찍은 달 사진이 참 달 같기도 하고 점 같기도 하고, 점 하나 찍기 어려운 동생이 안쓰럽다. 어제오늘 나는 친구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을 나서고 싶었는데, 점 하나 찍기가 거시기해서 내일 가족들과 마실 다녀온 후 만나기로 했다. 마침표 찍기는 거시기 하니까. 달은 내일도 떠오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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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1은 없어졌던가요

네! 저만 잘 살면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 동생이 마음 털어놓을 곳은 있을 것 같아 다행이예요. 남편이랑 터놓고 해결하면 제일 좋고요.

가까운데 살테니 털어 놓으면 좋으련만 그럴지 모르겠네요 ㅎㅎㅎ시댁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게되서 남편이 잘 해야할텐데 아직까지는 영...저는 남편이 중간에 있는 것 보다 동생이 시부모님들께 다이렉트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동생 결혼전 마지막 명절이네요. 동생을 보는 시선, 명절을 맞아 여러가지 감정의 교차, 와닿는 면이 많습니다. 해장 잘 하시구요ㅎ

아직까지는 실감이 잘 안나요. 신혼여행 갔다가 인사오는 길에서야 실감이 날 듯합니다 ㅎㅎㅎ
주말 잘 보내세요!

5,6,7번 일기는 유독 마음에 들어오네요
명절 잘 보내고 계신지요? ^^

이번 명절은 다른 해에 비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명절 제발 간소화해서 보내고 싶어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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