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우리는 왜 자기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The Folly of Fools)'

in #kr-contest7 years ago

d.jpg
진화생물학은 날카롭다. 인간이 스스로 믿는 것을 부정한다. 뚜렷하고 합리적인 주체에 대한 신뢰를 파괴한다. 인간의 추악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드러냄이란 묘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본성이 추악하다면, 개인의 부정적인 면들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기도 한다. 뚜렷하고 합리적인 주체가 아닌 개인은 추악한 본성에 휘둘릴 수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비관론자들이 아니며, 추악한 인간에게는 살 가치가 없다고 체념하진 않았다. 우리는 본성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 이를 믿는 학자 중 하나가 "여러분들은 나와 같은 과정을 반복하지 말라."는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다.

로버트 트리버스는 '우리는 왜 자기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The Folly of Fools)'에서 담담하게 인간을 드러낸다. 동물에게서 엿볼 수 있는 기만의 형태와 그 기만이 어떻게 생존에 도움을 주는가에서 인간에게도 기만이 생존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결론으로 향하고, 그 중에서도 자기기만을 강조한다. 남을 속이는건 자신의 이기적인 생존에 도움을 주기 마련이고, 그리고 남을 속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어야 한다. 자기합리화, 인지부조화 등 익히 알려진 심리적 프로세스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한다. 자기기만을 통해 양심의 가책이라는 비용 없이 남을 속일 수 있다. 남에게 비교적 피해를 끼치지 않는 개인의 삶의 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낙관적인 삶의 태도는 자기기만의 한 형태다. 낙관적인 것도 비관적인 것만큼 한쪽으로 치우친 태도다. 따라서 낙관적인 태도는 현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게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 형태로 왜곡하는 자기기만이다. 그리고 낙관적인 태도는 면역력, 수행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글을 쓰는 우리에게 더욱 친숙할 정보도 있다. 털어놓는 글쓰기에 대한 연구이다. 한쪽은 정신적 외상과 무관한 하루 일과를 쓰도록 하고, 다른 한쪽은 정신적 외상에 대해 매일 글을 쓰도록 했다. 나흘동안의 글쓰기를 마치고 정신적 외상에 대해 서술한 피험자들은 글쓰기 이전보다 개선된 상태였다. 그리고 6주 후에도 그들의 면역계는 좋은 상태이며 기분조차도 일상에 대해 글을 쓴 피험자들보다 좋았다. 반대로 정신적 외상을 숨기고 살아가는 성인들은암, 고혈압, 독감, 두통 등의 질병을 더 많이 앓는다. 여행길에서 낯선 사람에게 비밀을 털어놓게 되는 이유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우울한 분들을 위한 팁도 있다. "행복하지 않다."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의 여운이 남아 "슬프다."고 쓰는 것보다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실직에 대해 글을 쓰면 재고용 기회가 늘어난다. 실직에 대해 글을 쓴 사람 중 53%는 6개월 내로 새 직장을 구했지만, 글을 쓰지 않은 사람은 18%에 불과했다.

항공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다 대한항공의 사례도 지목했다. 1988~1998년 동안 대한항공의 사망 사고 비율은 미국 항공사보다 약 17배 높았으며 델타와 에어프랑스 항공사는 대한항공과의 협력 관계를 중단했다. 미군은 부대원에게 대한항공 이용을 금지했으며, 캐나다는 착륙권을 내주지 않을 것을 고려했다. 문제를 살피기 위해 파견된 자문단은 한국어에 내제된 위계적인 편향이 부조종사의 독립성을 크게 해쳐, 부조종사가 지적한 문제점이 제대로 받아들여졌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도 많았음에도 사소한 실수에도 조종사가 부조종사를 비난하는 문화가 정보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고 보고 영어 사용을 권장했다. 그 이후 대한항공은 크게 개선되었다.

훨씬 큰 규모로 일어나는 자기기만도 있다. 거짓 역사 서사이다. 미국은 인디언들을 몰살시켰고 멕시코를 공격했다. 중앙아메리카, 베트남, 캄보디아, 동티모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대학살을 지원하기도 했다. 작가는 이라크의 주요 수출품이 아보카도와 토마토였다면 미국은 전쟁을 일으켰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일본은 중국과 한국에서 벌인 만행을 왜곡한다. 자국의 역사를 왜곡하여 부정적인 역사를 감추는 행태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버트 트리버스가 이야기하는 자기기만은 끝이 없다. 철저한 실증을 토대로 날카롭게 지목하는 자기기만은 남녀관계, 가족관계, 일상생활에 걸쳐 폭 넓게 자리잡고 있다. 날카롭다는 어휘에서 우리는 차갑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철저한 객관성은 차갑지 않다. 오히려 인류가 자기기만에서 벗어나 더 나은 존재가 되길 원하는 따뜻함도 가진게 이 책이다.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표현에서 나타나는 심상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이름의 머릿글자가 C,D인 학생은 A,B인 학생에 비해 시험결과가 좋지 않다. 수행능력이 나쁘고, 지능이 낮은게 아니라 자신의 머릿글자를 선호하는 성향이 C,D라는 성적에 대한 거부감을 줄인다. 각각의 연구를 모아 자기기만이라는 이론을 형성한 로버트 트리버스, 그의 통찰력을 느끼고 자신의 자기기만을 이해하고 싶다면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를 읽어보라.

Sort:  

자기기만이라는 것이, 비유를 하자면 자신의 잘못과 거짓이 들통나거나 부끄럽게 발각될 처지에 놓이게 되면, 이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위선적인 말과 행동을 하거나 또 다른 거짓말을 지어내거나 혹은 억지적인 과도한 행위를 더 심하게 하려는 것과 비슷한 것 같군요.

예. 꼭 남을 속이기 위함이 아니더라도 다양하게 동원되고 있습니다. 스톡홀름 신드롬도 자기기만의 사례 중 하나겠지요.

대한항공 사례는 자기기만 보다 위계질서에 대한 것 아닌가요? (모르면서 아는 척 해봅니다. ^^;)

그런데도 좋게 보자면, 인간이 자기기만을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거기에 대해 고민한다는 자체가 좋은 현상은 아닐까 싶습니다.

또 다르게 해석을 해보자면 자기기만이 아니라 자신을 능동적으로 이끌어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슬픈 상황에서 "난 괜찮아. 해낼 수 있어!"라고 다짐한다면 자신의 슬픔을 속이는 걸수도 있지만, "지금까지는 슬펐지만 이제부터는 행복한 기분으로 바꾸겠어!"라는 자신의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도 볼 수 있으니까요.

글에서 설명하는 다른 예시에서는 소심한 부조종사와 둔감한 조종사가 나오는데, 소심한 부조종사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하지 못 하고 둔감한 조종사는 소심한 부조종사가 원하는 걸 알아차리지 못 합니다. 둔감한 인물은 자신이 보고 있는 지표에 자신감이 높은 경우가 많고, 그 자신감은 인간관계에서 성공을 가져왔습니다. 그 자신감이 자신의 눈을 가린 것이며 이것이 하나의 자기기만의 사례이지요. 반대로 부조종사는 소심하며 조종사의 지지 없이는 의견을 표출하고 행동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이는 이 사례에서만 나타나는 일이 아닌게 사고 중 80퍼센트 이상은 조종사가 비행기를 몰고 있었을 때 난다고 합니다. 조종사가 부조종사보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부조종사는 조종사의 잘못을 지적하기 어려워서였겠지요. 그리고 그 지적하기 어려운 환경이 자기기만에 의해 형성되구요.

글에서도 이야기했듯 낙관적인 태도는 면역력을 상승시키고 수행능력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낙관적이고 둔감한 조종사의 태도가 항공사고를 불렀음을 잊지 않아야겠지요. 슬픈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과 절망적인 실수 후에 "큰 일 아니야. 나는 괜찮아."하는건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이 두가지는 공존하는 경우가 많으며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기도 할 정도로 큰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태도가 큰 착각을 불러일으켜 전쟁을 일으키고, 역사를 왜곡한다는 사실이 자기기만이라는 주제를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말씀을 듣고보니 정말 어려운 주제네요.

자기기만이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사람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겠네요. 높은 결정권한이 있는 사람이 자기기만을 하게 되면 오판으로 인해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도 하니까요. 그로 인해 비행기 사고나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거고요. 이렇게 생각하니 인간이란 존재가 참 나약한 것 같네요.

동물의 역사에 걸쳐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성질이었을거에요. 다만 인류의 목표가 개인의 생존이 아닌 상생으로 향하고 있으니 이제는 이러한 성질을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이용하도록 노력해야겠지요.

[Link & List] "도서" 16차 원고료입니다.^^ 퐈이야~ 후라이 DAY~

https://steemit.com/kr/@soosoo/link-and-list-17-update-17-11-24-71


tip! 0.134

감사합니다.

무언가를 다그쳤을 때. 제대로 말 못하는 사람들을 너무 타박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유연한 환경을 제공해주었을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너무 타박을 해서 좋은 의견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기회를 날렸던 경험이 있어서 새로이 배우게 됩니다.

반성하는 태도만으로도 많은게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19
TRX 0.15
JST 0.029
BTC 63348.66
ETH 2668.99
USDT 1.00
SBD 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