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bookclub 감상|| 쇼코의 미소, 아픔을 바라보는 시선

in kr-bookclub2 •  2 years ago  (edited)

쇼코의 미소.jpg


서른 살 여름, 종로 반디앤루니스 한국소설 코너에 서 있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나는 안 되는 걸까. 한참을 서서 움직이지 못하던 내 모습을.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삶은 멀리 있었고, 점점 더 멀어지는 중이었다. 이 년간 여러 공모전에 소설을 투고했지만 당선은커녕 심사평에서도 거론되지 못했다. 그해 봄 애써서 썼던 ‘쇼코의 미소’도 한 공모전 예심에서 미끄러졌다.
나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튼튼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매달 갚아야 할 엄연한 빚이 있었으며 언제나 경제적으로 쫓기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가망도 없는 이 일을 계속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작가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포기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펑펑 울었던 적도 있다. 오래 사랑한 사람을 놓아주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울었다.
가끔 글쓰기에 해이해지고 게을러질 때면 그때 그렇게 울었던 나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이생에서 진실로 하고 싶었던 일은 이것뿐이었다. 망상이고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_작가의 말에서

_최은영,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는 최은영 작가의 등단작인 쇼코의 미소 외에도 6개의 단편소설을 묶은 책이다. 작년에 처음 책을 접했을 땐 그다지 관심을 주지 않았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 황경신 작가의 작품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스러움과 묘한 감정의 소설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활동하고 있는 독서 모임에서 자주 소개된 책이지만 읽지는 않았다. 이번 계기로 이 책을 읽게 된 건 큰 행운이라 생각된다.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읽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이전에 어떤 소설을 읽었는지 기억조차 없을 정도니 생각 외로 오래됐으리라. 당시 나는 병적으로 고전문학에 집착하고 있었다.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시대상과 감정, 분위기, 역사적 사실을 조금이나마 작가의 생각을 통해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물론 부질없는 짓이었다.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정서를 억지로 주입시키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스스로를 달래 가며 억지로 읽은 책은 책이 아니었다. 고전문학을 읽음으로써 좀 더 넓은 사고와 문학의 이해가 깊어질 거라 생각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깨닫게 되면서 고전문학 읽기를 그만뒀다.

쇼코의 미소는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와 아픔을 우리 세대가 문학적으로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 시대가 지고 있는 십자가를 이리도 잘 풀어낸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조금만 더 일찍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나는 굳이 고전문학을 읽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책은 크고 작은 시대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상처를 말한다. 여기에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생기는 개인사까지도 직시하려 한다. 상처를 온전히 바라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쏟아지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쇼코의 미소에서 소유는 말한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면서 영화를 통해 인간의 내면의 깊은 곳을 그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오만이 그 사람들을 얼마나 쓸쓸하게 했을지 당시의 나는 몰랐다.” 꿈을 좇는 건 자기 자신을 잃는 일인지도 모른다.

소유는 저자 본인일 것이다. 저자도 소유처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 자체가 허황된 일이라 생각했다. 노력이라는 미명 하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꿈이라는 달콤함에 젖는 것도 잠시 곧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현실과의 타협. 작가의 표현처럼 오랫동안 사랑했던 사람을 보내는 심정으로 잡고 있던 손을 놓았으리라.

소유는 소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 간다. 저자가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소유처럼 자신으로 인해 쓸쓸했을 사람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소유의 선택은 작가의 또 다른 선택이 아니었을까.

맺음말_크기 변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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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한 @chocolate1st님 안녕하세요! 저는 스팸 없는 세상을 꿈꾸는 kr 가이드독이에요. 짱 재밌는 @bree1042님 소개로 왔어요. 칭찬이 자자~ 하시더라구요. ^^ 짱 재밌는글 올려주신것 너무 감사해요. 작은 선물로 0.5 SBD를 보내드립니다 ^^

귀여운 멍뭉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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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이 와닿네요...노력을 해도 해도 안될때 놓아주는게 맞는건지...내가 가는 이길이 맞는건지 그런 생각이 들고 진짜 이만큼 했으니 그만 놓아줘야하는건거 라는 생각에 한 없이 슬퍼지는데.. .. 저 심정이 정말 ㅠㅠ

특히나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본인이 소질이 없음을 알때 정말 슬픈 거 같아요. 이럴 때 정말 포기해야 하는 건지, 그래도 꿈을 갖고 있는 게 맞는 것지.
어떤 선택도 슬프긴 마찬가지겠지만요. ㅠ-ㅜ

꿈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어 현실에 타협할 수 밖에 없네요..ㅇㅅㅇ;;;;;

대부분이 그렇죠. 현실과 이상은 아무래도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ㅠ

어떤 책인가 궁금했는데 이렇게 좋은 글 올려 주셔서 진심 감사합니다. @chocolate1st 님 글을 읽고 나니 더 읽고 싶어지네요. ^^

안녕하세요. 해피님. :)
저도 재밌게 읽어서 신나게 써 내려갔던 거 같아요. ^-^ 기회가 되시면 읽어보시는 거 추천합니다. 후회는 없으실 거 같아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마무리 잘하시고 행복하셔요. ^-^

북클럽 독후감 쓰셨군요. 저도 책은 다 읽었는데 아직 글을 못 썼어요. 곧 써야겠습니다.
이 책이 @chocolate1st 님께도 많은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 써주셨으니 @칭찬해

요즘 좋은 책들을 자주 소개 받게 되서 읽을 게 많아 행복하답니다. :)
불이님의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가이드독에 이런 기능이 있는 몰랐네요. 것도 모르고 순간 가이드독이 왔길래 잠시 뜨악했네요. ㅎㅎ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

북클럽 첫 감상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도 어서 올려야하는데요 허허... 풀봇 리스팀, 그리고 처음 감상글올려주셔서 3SBD 보내드렸습니다.

저도 저 작가의 말에 정말 공감했었고, 평소 한국 작가들의 글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쇼코의 미소라는 책을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점도 참 비슷하고, 책을 읽고 느낀 감상들도 저와 참 비슷하시네요 :) 저도 쇼코의 미소를 좀 더 일찍 접했더라면 동시대의 작가들의 책을 좀 더 많이 읽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접하게 된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닌데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이렇게 다양한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만큼 치열하게 매 순간 삶을 고민했기에 더 다양한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네요. 저도 지금처럼 대충 살지말고 좀 더 치열하게 삶에 집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읽으면서 쇼코의 미소에 실린 단편들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뭔가 고해성사를 하는 듯한 느낌이어서요. 아니나 다를까 작가의 말에서도 말했드니 작가는 등단하기 전에 많은 것을 느꼈던 거 같아요. 그리고 할머니 손에 커서 그와 소설과 비슷한 감정도 잘 알고 있는 거 같고요. :)

그리고 주제 넘지만 빔바님 자신에 대해 너무 가혹한 평가 내리지 마세요. 빔바님은 대충 아니고 열심히 살고 계세요.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고 있으니까요. :)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셔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오늘 하루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이 책이 그렇게 좋다고 들었어요. 쪼꼬렛님의 포스팅을 보니 더욱 보고싶어지네요.

저도 주변에서 좋다는 소리를 몇차례나 들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