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끄끄|| #11 해질 무렵

in #kr-book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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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에 전태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나와서 그에 관하여 증언했다.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 항의는 대부분 알려진 사실들이었지만, 함께 편집된 옛날 필름 속에 흘러가는 평화시장 주변 거리와 사람들의 행색은 그 시대를 생각나게 했다.
그런데 제작자는 당시의 평화시장에서 전태일을 고용했던 사장을 용케 찾아내어 등장시켰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와이셔츠 바람으로 평범한 아파트의 소파에 앉아 말하고 있었다.
나도 어려웠다고, 그때 재봉틀 몇 대 가지고 시작했다고.
기자가 전태일의 죽음에 대한 당시의 소감을 묻자 그는 잠깐 고개를 숙였다. 노인이 얼굴을 드는데 카메라가 그의 누가에 번진 물기를 잡아냈다.
그들의 형편을 전혀 몰랐다고, 그럴 줄 알았으면 좀더 잘해 줄 걸 그랬다고 그는 말했다.
그것은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우리가 도달한 현재의 시간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그는 아마도 평생을 잊지 않고 있었을 것이며 그것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깊은 회한이었을 것이다.
개인의 회한과 사회의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기지만, 겪을 때에는 그것이 원래 한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지난 세대의 과거는 업보가 되어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루었다. 어려운 시절이 오면서 우리는 진작부터 되돌아보아야 했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다. _작가의 말에서

_황석영, 해질 무렵



올해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 도서전에서 구매한 책이다. 책의 내용은 전혀 모르고 그저 황석영이라는 작가의 이름에 끌려서 구매했다.
그는 모든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 흡사 개구쟁이가 쓴 것 같은 그의 소설은 읽는 내내 날 피식거리게 만든다. 그러나 이 책은 단 한 번도 웃을 수 없었다.

책은 60대 건축가 박민우와 29살의 연극연출가인 정우희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나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두 사람의 삶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한 기성세대. 꿈을 이루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젊은이. 모든 것을 다 갖춘 것 같은 삶과 뭐 하나 갖추지 못한 청춘. 두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박민우의 성공에는 재개발 붐이라는 시대적 운이 따랐다. 본문에서 죽어가는 한 건축가와 박민우는 이렇게 대화한다.

 “온 세상의 고향이 다 사라졌어요.”
 “그거 다 느이들이 없애버렸잖아.”

재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모두들 떠나간 고향 위, 아니 모두를 쫓아낸 고향 위에 건물을 올린다. 이 대가로 박민우는 부와 명성, 성공이라는 부상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누군가에게는 눈물이었다. 타인의 아픔 위에 세워진 성공은 결국 자신의 트라우마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여기 박민우도 그렇다.
기성세대의 트라우마 속에서 만들어진 세상을 물려받은 정우희. 그녀는 꿈이 있지만 그 꿈을 이룰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간다.
밤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낮에는 연극 무대에 오를 시나리오를 손보지만 곰팡이 핀 지하 단칸방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은 참혹하기 만하다. 정우희는 사랑조차 할 수 없는 현실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꿈을 붙잡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다.
많은 것을 포기했지만 성공한 남자와 모든 것을 포기해도 꿈을 이룰 수 없는 여자. 이 두 사람이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지는 직접 본문으로 확인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제목도 그렇듯이 언뜻 보면 나이 든 한 기성세대의 회고록 같은 느낌이 있다. 나 역시 박민우라는 인물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해질 무렵은 기성세대가 아닌 우리 젊은 세대를 말하는 책이다. 정우희는 현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또 다른 시대의 아픔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를 서로 떼어 놓을 순 없다. 결국 같은 시간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갈 뿐이다. 박민우와 정우희처럼, 지금 우리 현실처럼.

맺음말_크기 변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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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테스트 해봅니닷^^
tip!

앗싸!!!! 성공!!!!!! 했습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쵸코님 ^^ 디포짓을 하고 좀 시간이 지나야 하나봐여 ㅋㅋㅋ

축하드립니다!! 칠전팔기! 생각보다 어렵지 않죠? 팁유에 일정 스팀달러를 보내놓고 사용하면 되니까요. :)
아, 팁도 감사합니다.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되셔요! ^0^

책을 읽으면서 한번도 웃지 못했다..는 말이 마음을 아프게 하네요..ㅠㅠ

아마도 책 내용이 우리의 현실과 비슷해서 그랬던 거 같아요. :)

현 젊은 세대의 또 다른 아픔을 나타낸 정우희라는 여자가 겪는 아픔은 또 얼마나 처절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도 불러오네요.

많은 것을 포기했지만 성공한 남자와 모든 것을 포기해도 꿈을 이룰 수 없는 여자.

책을 읽으면서 한 번도 웃지 못했다는 초코님의 말씀과 함께 저 한 문장이 아주 강하게 남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쵸코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황석영 작가가 젊은 사람들에 대해서 쓴 책이 이게 처음이라고 하네요. 현실의 젊은 이들에 대해 생각보다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어요. 그래서 조금 씁씁함이 남는 책이었답니다.

해피님도 다가오는 하루 행복으로 가득차시길 바랄게요. :)

그렇군요... 쵸코님 ^^ 제가 팁유 사용해 볼라고 ㅋㅋㅋㅋ 디포짓 보냈다가 여기에 팁이라고 썼지만 아무 일도 안 일어 나길래 ㅋㅋㅋ 뭘 또 잘못했나 싶어서 다시 뺴 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ㅋㅋㅋ 이거이 기다릴 시간이 필요한 거였나요?

예전에 어떤 분이 팁유 사용법 정리하신 분이 있는데 제가 찾아서 링크 걸어드릴게요. :)

https://steemit.com/tipu/@kimseonghun/leesunmoo

해피님 이거 한 번 읽어보셔요. 제가 설명하는 것 보다 빠를 거예요. 읽어보시고 또 궁금한 거나 이해 안 되는 게 있으면 다시 질문 주시면 제가 아는 한에서 최대한 설명 드릴게요. :)

꺅!!!!! 초코님 감사합니다 ^^ 제가 다시 연습해 보겠습니다. ^^

잘 모르시겠으면 텔레그램으로 문자주세요. 텔레그램 아이도 스팀잇 아이디랑 똑같아요. :)

ㅎㅎㅎ 뜬금없지만 @myhappycircle님 넘 귀여워요>.<

아악 ㅠㅠ 부... 부끄럽습니다.... 남들 다 아는거 혼자 몰라서 ㅠㅠ 낑낑 거렸습니다. ^^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The minimum tip amount is 0.1 SBD - check if you have sufficient deposit :)

책이 현실 같기도 하고 현실이 책 같기도 해서 구분이 안되네요.ㅠㅅㅠ

현실과 소설과 구분 안되는 세상을 살고 있기는 하죠. :)

아이고 가슴한켠을 먹먹하게 만드는 그런 소설이네요...

읽을 때는 모르는데 다 읽고 나면 뭔가 가슴이 답답해지는 소설이었답니다. :)

황석영님의 끌려서 멋진 책 한권 알게 되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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