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끄끄|| #7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in #kr-book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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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이라도 많든 적든 간에 나름대로의 중심 테마 같은 것이 있다. 시코쿠에 갔을 때는 매일 죽으라 하고 우동만 먹었으며, 니이카타에서는 대낮부터 알싸하고 감칠맛 나는 정종을 실컷 마셨다. 되도록 많은 양(羊)을 보고 싶어 훗카이도를 여행했고, 미국 횡단 여행을 할 때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팬케이크를 먹었다(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팬케이크를 질리도록 실컷 먹어 보고 싶었다). 토스카나와 나파밸리에서는 인생관에 변화가 생길 만큼 엄청난 양의 맛있는 와인을 뱃속으로 밀어 넣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독일과 중국을 여행할 때는 동물원만 돌아보고 다녔다. 이번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여행의 테마는 위스키였다.

(중략)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이고, 우리는 언어 이상도 언어 이하도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온갖 일들을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의 다른 무엇인가로 바꾸어 놓고 이야기하고, 그 한정된 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행복한 순간에 우리의 언어는 진짜로 위스키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적어도 나는) 늘 그러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간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하고._머리말에서

_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하루키가 쓴 여행 에세이다. 일전 하루키의 여행기를 읽고 나서 바로 구입한 책이다. 위스키를 먹기 위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로 간 하루키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위스키를 만드는 증류소도 가고, 오래된 바(BAR)에서 앉아 느긋하게 위스키도 마시며 어떻게 마셔야 위스키를 제대로 먹을 수 있는지도 말해준다. 머리말에서처럼 위스키를 먹으러 갔기 때문에 위스키 이야기밖에 없다.

잠시 술 얘기를 하자면 나는 낮술을 좋아한다. 처음 마신 낮술은 군대 백일 휴가를 나와서다. 집에 가기 전 동기들과 중국집에 들렸고 거기서 고량주를 마셨다. 취기가 오를수록 기분도 좋아졌다. 적당히 마신 술에 적당히 오른 기분, 오랜만에 만끽하는 자유까지. 어느새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이 돼 있었다. 이후 종종 기회가 되면 낮술을 했다. 취기가 오르면 질펀하게 늘어져 시간을 보냈다. 처음 그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은 낮술을 먹지 않는다. 회사에서 기회가 있어도 마시지 않는다. 낮술은 비단 먹고 나면 세상 다 가진 자처럼 여유로워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취기를 이기고 일을 해야 한다.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 짓 때문에 먹질 못하니 김훈이 말한 먹고사는 애달픔이 이런 건가 싶다.

앞서 말했지만 이 책은 위스키로 시작해 위스키로 끝난다. 하루키가 작정하고 위스키에 대한 이야기만 쓴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소개했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같은 여행기를 바랐던 사람이면 읽지 않는 게 좋다. 그래서인지 나는 시종일관 몰입하지 못했다(라오스 같은 여행기를 생각하고 샀기 때문에). 게다가 나는 위스키는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좋아하지도 않아 더 읽기 힘들었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대상으로 썼다면? 뭐, 두말할 것도 없이 최고였을지도.

사진이 많아 여행 에세이보단 사진 에세이에 가깝다. 하루키 책 중 사진이 가장 많은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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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위스키! 요즘 위스키 중에서도 싱글몰트에 심취해있는 저로썬 관심이...ㅎㅎㅎ

아아, 싱글몰트. 이 책에서 수십은 나왔던 말이내요. 보면서도 저는 대체 이게 뭔가 싶었거든요. :)
싱글몰트는 스코틀랜드가 성지라고 하네요. ^-^

전 일본작가 책은 진짜 안 읽거든요. 거리도 가깝고, 어순도 비슷하고, 어휘도 비슷한데.. 왜 이리 안 읽히는지 모르겠어요. 요새 하루키 얘길 많이 들어서 조만간 하나 읽어봐야겠습니다.

저도 불이님과 비슷하게 번역된 책들은 거의 안 읽었거든요. 이상하게 번역서들은 읽으면서 감정이입이 안되서 자꾸 딴생각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한 동안 외국 서적들 거들떠도 안 보다가 요즘에 들어 다시 시도 중이랍니다. :)

하루키책은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책을 한권 읽었었는데요..''
워낙 어릴때 읽었엇고...또...뭔가...공감이 가지 않는 내용들도 조금있었던 것같아요,, 지금 다시 읽어보면 또 느낌이 다르겠지만 초코님이 올려주신 책도 한번 찾아서 봐볼게요 ^^ 위스키로 시작해서 위스키로 끝난다니..뭔가 매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노르웨이의 숲 읽은지가 너무 오래되서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ㅎㅎ근데 지금은 다시 읽을 엄두가 안나네요. 워낙 번역본 읽는 걸 힘들어해서.

가볍게 읽기는 좋은 책입니다. ^-^

역시 하루키는 덕후 기질이 있습니다 ㅎㅎㅎㅎ

엄청난 덕후가 확실합니다. +_+ 그래서 그런 글을 쓸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ㅎㅎ

하루키의 팬인데 요즘은 하루키 책을 못 읽고 있네요. 이 책도 못 본 책인데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사진도 많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는 정말 독특한 사람인가보네요.ㅎㅎ
테마를 정해 놓고 그것만을 위한 여행을 한다니.ㅋㅋ
독특하고 위도 크고 술도 센거 같고.ㅎㅎ

저도 보면 볼 수록 독특한 사람이라고 느껴요. 잘 몰랐는데 고양이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고.
여행을 할 때 맨날 무작정 하고는 했는데 저도 한 번 목적을 정해 놓고 해봐야겠어요. :)

위스키로 시작해서 위스키로 끝난다니 ...좀 아쉬운 마음이 들것 같아요.. 하루키가 위스키를 꽤 좋아했나 봅니다. ^^

보면 술을 다 좋아하는 거 같아요. :)
하루키의 시선을 느끼고 싶어서 읽은 책인데 위스키 이야기만 나와서 없지않아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 없더라구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도 위스키 정말 안좋아하는데 이름은 왜이리 낭만적이고 맛있게 들리는걸까요 > <♥
10년 전쯤 지독하게 외롭던 시절에 하루종일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이 세상에서 이 작가와 가장 친하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ㅎㅎㅎ 오늘은 잠들기 전에 오랜만에 옛친구랑 담소나 나누다가 자야겠어요~

위스키. 확실히 소주나 맥주와는 다른 고풍스러운 느낌이 있네요. :)
한 작가가는 독서를 하는 건 그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거라고 하더군요. 마니님도 독서를 하면서 작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부럽습니다. =_= 전 아직 그런 경지는 아닌가 봅니다. 밤에 책을 보면 자꾸 잠들어서.

옛 친구와 좋은 이야기 나누기 좋은 밤입니다. :) 선선한 바람도 좋고. 그러나 감기는 조심하셔요. ^-^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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