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노트] 맛있는 고기를 찾아서

in #kr-art6 years ago





감독의 노트는 저의 단편영화 '봄날'(2018)의 제작 과정을 담은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2018년 5월 18일, '봄날'을 온라인을 통해 제한적으로 공개 상영할 예정입니다.


1 - 기획 - 『광주 518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 댄스필름 × 소년이 온다
2 - 구상 - 『맛있는 고기를 찾아서』 : 레퍼런스 보유하기
3 - 섭외 - 『저랑 함께 하시죠!』 : 수화통역사와 현대무용가
4 - 촬영 - 『촬영장은 전쟁터』 : 헌팅부터 촬영까지
5 - 홍보 - 『누가 봐줄까?』 : 예고편과 포스터
6 - 상영 - 『봄날 온라인 상영』 (스팀잇에 한해서 5월 18일부터 5일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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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518 댄스필름 '봄날' 스틸 이미지



맛있는 고기를 찾아서 : 레퍼런스



삼겹살을 앞뒤로 구워서 가위로 자르지 않고, 그 위에 다른 삼겹살을 싸먹는 우덱이라는 친구가 있다. 고기로 고기를 쌈싸먹는 놈으로 유명하다. 얼마 전에는 소고기 뷔페를 갔다. 길다란 치맛살 위에다가 육회를 올려놓고 쌈싸먹는 녀석을 경외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때마다 그는 권하지만 나는 거부감이 일어서 거절한다. 때문에 나는 '고기에 고기를 쌈싸먹는' 식감을 영원히 모를 것이다. 우덱을 보면 이 속담이 생각난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많이 쌈싸먹을 줄 안다고.


친구들 사이에서 고기 하면 우덱이고 우덱 하면 고기다. 우덱의 혀는 어떤 고기가 쌈 역할을 하고 어떤 고기고 알맹이 역할을 할 것인지의 정보를, 방대한 레퍼런스를 보유하고 있다. 레퍼런스 보유는 곧장 요리 실력으로 이어진다. 많이 먹어본 놈이 맛있게도 구울 줄 안다. 아니나 다를까. 우덱은 그동안 먹었던 수많은 고기의 맛을 떠올리고 실험에 실험을 거쳐 이달 음식점을 오픈했다. 이를 거꾸로 추적해보자. 음식점을 오픈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뭘까? 당연히 고기 맛을 다양하게 체험하는 것이다.


창작의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댄스 필름이라는, 그간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질 좋은 고기맛을 봐야 했다. 고기 맛을 알아야 요리를 할 테니까. 대충 비슷한 맛이라도 낼 테니까. 혹시 아나, 이쪽 맛과 저쪽 맛을 하나의 요리로 쌈싸다 보면 새로운 맛이 탄생할지! 유튭에 들어가 내가 따라하고픈 댄스필름 레퍼런스를 찾기 시작했다. 곧 침 질질 흘릴 만한 영상을 발견했다.









뮤직비디오로 제작된 댄스 필름 ≪Medicine≫. 처음 본 순간 반했다. 멋 지 다 ! 간 지 쩐 다 ! 음악, 춤, 장소, 카메라워킹이 한데 어우러져 맛있는 쌈을 구성하고 있었다.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또 보고 싶게 만든다. 내가 ≪봄날≫을 만들면서 가장 많이 참고한 영상이다. 아마 수십 명의 전문 스탭이 협업하여 작업했을 것이다. 걱정이 동시에 몰려왔다. 팀을 꾸려 영상 작업을 해 보지 않은 내가, 이런 비슷한 영상을 흉내낼 수 있을까?









와.....우오오오오...이건 또 뭐야!! 이 영상도 엄청 유명한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니!! 댄스필름 장르는 가능성이 정말 무한하구나.. 그러≪Wide Open≫은 원테이크 기법 + CG가 결합해서 그야말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내뿜고 있었다. 1초 1초가 감탄이다. 그러나 포토샵도 잘 못해서 모니터 위에 줄곧 30cm 자를 들이대고 비례를 계산하는 내가, 거대 자본과 CG가득 들어간 이런 영상을 내 레퍼런스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림의 떡일 수밖에..









이 정도는 따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 방에 다 찍어야하는 원테이크 촬영 기법은 차치하더라도, 이렇게 멋진 장소를 찾는 것 또한 연출자의 역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난 어디서 찍지? 게다가 배우를 섭외하고 장소를 헌팅해본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 카메라와 촬영, 색보정에 대한 지식도 전무한 수준이었다. 유튜브를 보는 내내 감탄과 걱정이 뒤섞였다. 막막함이 엄습해올 때마다 우덱과 고깃집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며 외마디 탄식을 뱉곤 했다. ㅇ ㅏ ..... 고기 맛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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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찍어야 하지? 안절부절 못하던 때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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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없게 불량품을 골라서 환불 - 재구매로 속을 썩혔던 Sony A6500


잊고 있었던 것



주변 감독들을 찾아가 자문을 구하고, 검색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메모해나갔다. 또 중간중간 서울영상미디어센터에서 2주 속성 강의(촬영, 색보정)도 들었다. 정보를 총합한 결과 내가 선택한 카메라는 Sony A6500 이었다. 적당한 가격대(100만원대), 간지나는 색보정(S-log), 움직이는 피사체를 잘 따라가줄 자동초점(AF) 기능이 우선적으로 고려된 결과였다.


그러니까 지윤테크 크레인 짐벌을 이용해서 촬영을 하고, S-log 세팅을 통해 후반 작업에서 LUT를 덧입혀 2.35 : 1 비율로 완성하면 되는 것이었다. 오, 잠깐만, 이렇게 말하니까 나 완전 전문가 같잖아! 막 멋지잖아! 막 감독 같잖아! 불과 1년 전에는 그 존재도 몰랐었는데 내 입에서 S-log, LUT 막 이런 말들이 나오다니.. 후훗.. 난 이제 초짜는 아니라구... 그러나 자뻑도 잠시, 다시금 고민에 휩싸였다. 기술적인 문제에 집착한 나머지 카메라 앞에서 춤 춰줄 사람 구하는 일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날 위해 춤 춰줄 사람 누구인가.




(3) 섭외 이야기 -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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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1편 2편 잘 읽었어요^^
감독의 노트 다음편과 상영작도 기대되요^^
글은 술술 썼어도...어려운 일이였겠지요?^^

당시에는 글을 쓸 여유가 없었고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회상을 하면서 키보드 두드릴 생각이 드네요. 새로 시작하는 일은 힘들기 마련인데 저도 엄청 힘들었습니다 ㅎㅎ 읽어주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주일 뒤에 어떤 봄날의 몸짓이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4명의 안무가가 각자 해석한 518의 몸짓을 저는 촬영과 편집만 했을 뿐입니다. 혼자보기 아까운 몸짓이라 기대하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

제작과정을 참신하고 재미있게 잘 쓰셨네요..ㅎ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글쓰기에 개그의 욕망이 있습니다 잼있게 봐주셨다니 뿌듯하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레퍼런스로 보여주신 두번째 영상을 몇번이나 다시 봤는지 몰라요. 누군가의 창작과정을 엿보는 것만큼 사람을 열등감에 빠져들게 하는 것은 없는 것 같네요. 그리고 또 그 힘으로 많은 영감(영감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지만)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5월 18일에 스팀잇에서 개봉하는 건가요? 기다려집니다.

완전 쩔죠? 잘 찾아보시면 메이킹 영상도 있습니다. 어떤 노고가 들어갔는지 엿볼수 있더군요
네 제가 만듬 영상은 스팀잇에서는 특별히 5일동안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wide open 에서 여자 다리가 순간 그물로 변했을 때 깜짝 놀랐어요 ㅠㅠ 그런데 정말 영상이 하나하나 멋지네요 정말. 춤도 멋있고 영상도 멋있고.. thelump 님이 만들 필름은 어떨지 궁금해지고 기대가 됩니다 :)

완전 멋지죠? 저런 댄스필름을 상상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더군요..ㅠㅠ 그래도 어떻게 마무리는 했습니다.

ㅋㅋㅋ뭔가 고민과 노력들이 짧은 사이에 쓕쓕지나가고 있네요:> 5월 18일이 기대되네요!

글로 쓰려니 세달치 고민이 고작 한 문장으로 휙휙 정리되고 막 그러네요 ㅎㅎ

ㅋㅋㅋㅋ글로 쓰면 내가 고민한게 훅 줄어들어서 신기한것 같아요!ㅋㅋ

아~ 춤은 제가 쫌 ㅋㅋㅋㅋ
아! 이 시리즈 넘 재밌어요. 얼른얼른 다음것도 풀어놔요! 기다릴수 없어요 ㅎㅎㅎㅎ 영상중에 개인적으로 세번째가 제일 맘에 듭니다!

여태껏 올린 글은 대부분 전에 만들어놓은 컨텐츠였는데 이번 시리즈는 실시간으로 쓰고 올리다보니 정말 힘드네요 ㅎㅎ

완전 기대됩니다. 제작 노트도 참 재미있게 쓰시네요.

그냥 쓰면 아무도 안읽을것 같아서 양념을 좀 쳤습니다 :)

제 포스팅의 댓글에서 언급하셨던 댄스 필름의 제작기로군요!

네 맞습니다. 첫 시도에서 성과를 내야했던 작업이라 부담이 엄청났었는데 지금은 옛날 일 같습니다. 완성했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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