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medicine]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간격이 좁혀질 수 있을까요? - 나를 절망하게 하는 일들.

당신은 항상 영웅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항상 사람은 될 수 있다.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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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맹독성 리트리버입니다.

자기소개 글에도 적었지만 저는 의학을 전공하고 있고, 나중에 환자와 의료인 사이의 오해를 풀고 우리나라에 진정으로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의료 제도가 정착하는 일에 기여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읽었던 의학 관련 기사 중에,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저를 절망에 빠지게 했던 댓글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먼저 기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30분 지나면 포기하는데… 77분 집념, 멈춘 심장 깨우다

기사의 내용을 짧게 요약해드리면 '세브란스 병원에서 심정지 환자를 77분간 쉼없이, 8000회 흉부압박을 해서 살려냈고, 다행히도 후유증이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잘 회복되었다.' 는 내용이었습니다.

심폐소생술.jpg

일반적으로 흉부압박이 30분을 넘어가면 환자가 회복할 확률이 희박하고, 회복하더라도 후유증을 평생 가지고 살아가거나 식물 인간으로 살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환자분이 젊은나이(36세)였기 때문에 의료진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고 그야말로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죠.

의사가 뭘 잘못해서 국민들에게 욕을 먹는게 당연할 기사도 아니고, 누가봐도 의료진이 잘한 일인데 왜 제가 절망을 했을까요?


안타깝게도 이 글을 쓰려고 다시 기사를 찾아 들어가 댓글을 읽으려 하니, 댓글이 삭제되어있네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가 기억하는 댓글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77분 심폐소생술을 해서 살아났으니, 77분보다 적은 시간 심폐소생술을 해서 죽은 사람 중에는 살릴 수 있었는데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법적으로 모든 심정지환자에 77분 이상 심폐소생술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여야 한다.

같은 분이 쓴 글인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비슷한 댓글은 남아있었습니다.

댓2.jpg

저는 아직 의사가 아니지만, 저는 이 글이 정말로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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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정도 댓글은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구요.

일단 제가 충격을 받았던 댓글에 대해 반박을 해 드려 보겠습니다.

[1] 일단 의료진이 77분이나 심폐소생술을 한 것은 환자의 나이가 젋고, 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이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왜 의료진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의학은 통계의 학문입니다. 과학적으로, 통계적으로 환자가 살아날 확률이 0.01%라도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 라고 하실 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감히 이야기하자면, 의학은 '기적'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기적'을 기대하며 시행해서는 안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기대하며 한 치료가 성공했으니 망정이지, 실패했다면 '과잉진료'가 되겠지요.

'기적'을 바라는 치료와 '과잉진료'는 종이 한장 차이입니다.

[2] 위와 동일한 내용인데, '정의'와 '분배'의 문제입니다.

심폐소생술이 일어나는 현장이 얼마나 분주하고, 얼마나 많은 의료진을 필요로 하는지 아래 동영상을 통해서 짧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와 같은 세브란스 병원의 의료진 분들입니다.)

1분 35초 정도부터 본격적인 심폐소생술이 시행되는데, 실제로 제가 응급실에서 본 바로는 저기 나오는 것보다 두배 정도의 의료진이 달라붙어 환자를 살리려 노력합니다.

우리나라 응급실이 어떤 곳인지 제가 겪은 것만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주간의 응급실 실습 동안 꽤 여러번의 CPR, 즉 응급 심폐소생술 환자를 만났습니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데에는 정말 엄청난 힘이 들기 때문에, 저희 병원에서는 제일 길었던 심폐소생술이 약 30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학생인 저희들까지 동원되어서 심폐소생술을 진행하였습니다.

의료진이 정말 정신없이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있는데, 저기서 얼굴이 찢어져서 봉합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아이 보호자가 의료진을 찾으며 소리를 지릅니다.

선생님들은 너무 바쁘시니, 학생인 저희가 가서 무슨일인지 여쭙습니다.

보호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사람 어차피 죽을 사람 아니야? 우리 애나 빨리 봐주지, 우리 애 봐주는데 오래걸리는 것도 아니잖아?"

정말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순간 '이게 사람인가?' 라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무리 이해를 해보려 해도, 생사의 고비에 있는 사람과 그를 어떻게든 살리려 애쓰고 있는 의료진에게 할수 있는 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가 위에 말한 보호자는 사람같지 않은 사람이었고, 용서할수 없는 말을 했지만 기약없이 심폐소생술을 계속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의료진은 대부분의 경우 회복의 가능성이 희박해 보여도, 가족들이 원한다면 계속해서 심폐소생술을 진행합니다.

[3] 만일 90분간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회복된 환자가 있다면, 이번에는 또 새로운 법을 제정할 것인가요?


저의 시선에서는 의학의 특수성과 개인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댓글이었지만, 그래도 좋아요 수가 비공감 수보다 더 높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소생 확률이 1% 부터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환자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것과 응급실에 있는 수많은 환자를 상대하는 것 중에 무엇이 '정의'일까요?

모든 사람이 매일매일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지만, 의사들의 선택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할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 무겁습니다.

의사는 신이 아니고, '의느님'이라는 말같지도 않은 말로 우상화되어서는 안됩니다.

의사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나약한 인간중에 한명일 뿐입니다.

의사에 대한 불신은 이해하지만,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를 앞에 두고 내리는 판단에 대한 신뢰마저 없어진 우리 사회를 보면 정말이지 힘이 빠집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앞에 두고 자신의 몸을 편하기 위해 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거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치료 방향을 정하는 의사는 '거의'없다고 생각합니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까요? 오늘은 많이 회의가 듭니다.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저를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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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진정한 가치는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에 의해서 정해지는 겁니다.
다른 사람 신경쓸 필요없습니다.

@oldstone님 댓글 감사드립니다.

제의 꿈이 대중을 설득해서, 좀더 올바른 의료제도를 우리나라에 정착시키는 것이라서 저런 댓글에도 눈이 가고, 많이 절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늘 모두를 설득할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힘을 내야겠습니다.

따듯한 응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런 댓글다시는 분들은...시간이 많으신가 왜 저런데 에너지를 쏟으시는지...휴...저도 병원 진료에 한(?)이 많은 사람이지만...사람이 하는 일에...무튼...힘내세요~!!!!!

카일님, 댓글 감사드립니다.

말씀해주신대로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예측 가능한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고, 때로는 어이없는 실수로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는 일이 의료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주의해야겠고, 발생을 최소화 하기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조건적으로 옹호할수는 없지만, '어느정도' 어쩔수없이 발생하는 사건들도있더라구요.

응원 감사드려요!

저도 첨엔 원인을 몰랐는데 원인을 확신하고 의사한테 얘길했더니 그럴리 없다. 결국 그 의사가 추천해준 다른 의사한테 가서 제 말이 맞았단 걸 확인했습니다. 시간차지요.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지금 지인 어머니도 허리디스크 수술하러가셨다가 갑자기 염증ㅡ재수술ㅡ폐혈증ㅡ쇼크ㅡ의식불명ㅡ현재 뇌경색 진단받고 누워계십니다. 2달간 벌어진 일이네요.

케바케고, 운인지, 환자와 의료진의 인연인지...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당사자에게는 너무나 큰일이죠. 그 가족들에게도요.

무튼 그런만큼 기사처럼 또 힘든 것이 되게 된 사례도 있고...ㅎㅎ;;; 전 종교가 없지만, 이건 다 누구의 뜻일까요?

카일님, 정말 유감입니다.

직접, 그리고 주변에서 정말 큰 일을 겪으셨군요.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지인분 어머니의 경우 어떤 상황인지 제가 알수는 없지만 의료진의 과실이 있었는지, 아니면 고령의 환자분께서 병상생활을 하시면서 감염에 취약한 상황이었는지를 고려해 봐야 할것 같습니다.

병원에 갔다가 병을 얻어 나왔다는 생각이 들면 당연히 화가 날것 같습니다. 의도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예방한다 하더라도 수술 과 관련해서 부작용으로 감염이 생길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한된정보를 가지고, 거기다 정말 부족한 제가 뭐가 원인이다 감히 말할수는 없을것 같아요. 하지만 말씀해주신대로, 인간인 의사가 어찌 할 수없는 다른 힘에 의해 좋은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이루어지는 일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의사의 역할은 최선을 다해 환자를 좋은 쪽으로 끌어오는 것이겠지요..

다시한번 카일님께 유감과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생각을 조금은 가지고
글을 쓸수있도록 해야한다는
생갈을 가지게 됩니다

잘 보고 갑니다

@sindoja님 댓글 감사드립니다.

사실 저 댓글을 쓴 사람도 악의는 없을거라고 믿습니다. 의학이라는 것이 워낙 생활과 동떨어진 것이고, 전문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생사를 앞둔 사람을 눈앞에 두고 내리는 판단 만큼은 믿어주면 좋겠다는 바램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저런 생각을 가지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나 저런 이기적인 말을 하는 사람보다 가만히, 조용히 속으로 그런 사람을 욕하는 사람이 더 많아요~ 너무 속 많이 상해하지 않으셨음 좋겠어요ㅠㅠ

@rain2016님 응원 감사드립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ㅎㅎ

좋은 글 감사해요^^

저도 일을 하면서, 이해는 되지만 용납해서는 안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사람을 위해 일하지만 사람에게 휘둘려서는 안됩니다.

@floridasnail님 댓글 감사드립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을 설득해서, 잘못된 제도나 시스템을 바꾸려는 욕심이 있다 보니까 사람들의 생각에 자꾸
관심을 가지게 되고, 상처도 입는 것 같아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올바른 길로 나아가야지요

저런 댓글 다는 사람들은 뭘 해도 욕할 사람들이죠..
기적과 과잉진료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에 참 많은 생각이 드네요. 의사선생님들이 손길 하나로 살려낼 수는 없는 것인데.. 가족들의 마음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군요ㅜㅜ

@ghana531님 댓글 감사드립니다.

그 응급실의 아저씨같은 경우에는 정말 용서가 안됩니다.

자기 애 얼굴 찢어진건 빨리 봐줘야되고, 생사를 다투는 사람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의료진 앞에서 '어차피 죽을 사람이다'라고 감히 말하다니..

응급실의 경우 환자가 없을때는 한가하지만, 중증인 환자들이 몰리게 되면 너무나도 바쁘고, '의사도 인간이에 불과하다'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일들이 많이 발생하더라구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uniqlo님 응원 감사드립니다 ^^

의학을 전공하시면서 많은 절망과 냉소를 겪고 계시는지...그리고 환자들에게 얼마나 큰 헌신을 가지고 계신지 다시 한번 알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girina79님. 몸둘바를 모르겠군요 ㅜㅜ

착한 사람만 뽑아서 의사로 만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착한 사람을 구분할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저는 착하지 않은 사람도 환자를 위한 일만 할수 있도록 제도와 시스템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옳은 방향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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