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in #kor6 years ago (edited)

 

한창 책의 재미에 빠져 있을 때 쯤 

베스트셀러 외에 다른 재미있는 책이 없을까 싶어서 

인터넷 검색으로 서평글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이기호 작가를 알게 되었다.  

한 블로거가 ‘세살버릇 여름까지 간다’ 이 책이 

무척 재미있다고 추천을 해줬는데,  

나는 ‘세 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로 검색하는 바람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대신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를 읽게 되었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이 제목이 참..맘에 들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야기의 내용도 좋았지만 

이기호 작가만의 특유한 표현이 참 좋았다.  

가령 “지랄도 풍년, 산성비를 소방호스로 잘못 맞았나..”  라든가

 “몸과 마음 모두 세탁기에 넣어 놓고 오랫동안 돌리지 않은 

빨래처럼 후줄근해진 상태였다."라는 표현이 그랬다.  


며칠 전 도서관에 가서 책 목록을 쭉 훑어보는데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이 책이 보였다. 

하늘색 표지가 뭔가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읽던 책은 잠시 냅두고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도 이기호 작가만의 특유한 표현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사랑니가 반으로 조각이 나 생긴 통증을 

“마치 볼리비아에 살던 염소 한 마리가
내 사랑니에 올라타 바득바득 뿔을 갈고 있는 느낌이었다.”

라는 말로 표현을 해주고 있는데 

그 통증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도 전해져왔다.   

장모님의 음식솜씨는 

“이런 비유를 하는 것이 조금 버릇없고 염치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뭐랄까 재료와 재료들이 각기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긴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너무도 적절한 비유가 아닌가 싶었다. 

뭔가 알겠는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그리고 작가의 어린 시절 아버지가 목욕탕에서 

머리를 감겨주는 부분에서

 “마치 무슨 해초를 헹구는 일꾼처럼” 

감겨주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나는 이런 표현을 접했을 때 꼭 메모를 해 놓는다. 

어쩌면 같은 한글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표현을 해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 <그의 어깨> 
장인어른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을 손자들과 함께 오랫동안 놀이터와 공터에서
시간을 보낸 뒤 돌아오셨다. 눈치를 보아하니 장인어른은 오전 내내 두 아이의
자전거를 밀고 끌고 하신 모양이었다. 점심 무렵 잠깐 식사를 하러 들어오신
장인어른의 등허리는 땀으로 검게 변해 있었다.
(중략) 장인어른에 대한 이야기였다. 왼쪽 어깨의 인대가 늘어나
한 달 째 일손을 놓고 있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다시 현장으로 나가기 위해
당신의 병을 애써 숨기고 있다는 이야기.
(중략) 그러면서도 계속 장인어른의 등이 떠올랐다.
땀으로 검게 변해버린 등허리,
온종일 두 아이의 자전거를 양손으로 끄느라 변해버린.... 

나는 날 좋을 때에도 내가 힘들다는 핑계로 

첫째녀석에게 주로 티비만 틀어주곤 했다. 

그래서 날 좋은 주말이면 아빠는 항상 첫째녀석과 놀아주려고 

자전거를, 그리고 유모차를 끌고 토끼를 보러 공원엘 가셨었다. 

그때는 막연한 감사함만 있었다.  

어느날 첫째녀석이 심심해하는 것 같아 

맘먹고 토끼를 보려고 공원에 갔었다.  

토끼가 있는 공원은 집에서 횡단보도를 두 번이나 건너야 하고 

걸어서 30분이나 걸리는 먼 거리에 있었다. 

토끼를 보고 온 후 너무 먼 것 같아 

다음날은 동네 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동네 공원은 거리는 가까웠지만 

차가 자주 와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다녀야 했고 

무엇보다 공원 올라가는 길이 너무 가팔라서 

20킬로가 다 되어가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채 

밀고 올라가는 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내가 직접 자전거를, 그리고 유모차를 밀고 

토끼를 보러 먼길을, 공원에 가러 가파른 길을 오르고 나니..

아빠는 이 먼길을...이렇게 힘든 길을 어찌 다니셨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뭉클해져왔다. 

젊은 나도 힘든데...

지금까지 한번도 힘든 내색도 하지 않고 

아이를 집에 데려다 주고 유유히 집으로 가셨던 아빠였다..

이 글을 읽었을 때 새삼 아버지의 깊은 손주 사랑이 떠올라 잠시 눈물이 났다. 

그리고 또 한번..감사함과 함께 잘해드려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지난주에 첫째 아이만 데리고 공원을 나갔다가 내친김에 피자 집까지 갔다.
어느 책에선가 첫째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서는 간간이 동생들과
떨어져 따로 외출도 하고 시간도 보내주어야 한다는 문장을 읽었기 때문이다.
(중략) 문제는 피자 집에서 일어났다. 주문을 하고 포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이가 제 뒤에 서 있던 한 아이에게 말을 건넨 모양이었다.
뭐. 별다른 말은 아니고 “너 어느 유치원 다니니?” 하는 질문이었다.
한데 뒤에 서 있던 아이는 그 말이 꽤 기분 나빴는지 다짜고짜 아들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말았다. “말 걸지마, 자식아. 나 일곱 살이야.”
주먹을 맞은 아들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도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그 어떤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걱정마라, 아들아. 이럴 때 나서라고 아빠가 있는 거란다.
(중략) 그러나 아무런 말도 못하고 때마침 나온 피자를 들고
얌전히 그곳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아이의 옆에, 이제 막 화장실에서 나온
추리닝 차림의 우람한 한 남자가 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고 웃으면 안 되는데 박장대소를 했다. 

꽁트 같은 이야기 느낌이 물씬 났다. 

나도 첫째녀석을 데리고 나갔다가 이런 적이 있었다. 

어떤 아이가 이유없이 첫째녀석을 밀었다. 

첫째녀석이 날 쳐다보기에 난 그 아이에게 

그러면 안된다는 말 한마디만 하고 

그 아이랑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만 했다. 

아이가 상대방 아이에게 맞았을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에 

첫째녀석만 다독이고 있었는데, 

그 아이 엄마가 그런 상황을 눈치챘는지 

나에게 다가와서 자기가 미안하다고 

너무 공손하게 사과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 엄마는 개념이 좀 있는 엄마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그 아이에게 뭐라고 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 적이 있었다. 

상대방 아이가 이유없이 우리 아이를 밀치거나 

때렸을 경우 어찌하는 것이 맞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혹시 좋은 방법이 있으신 분은...팁을 주시면 좋겠다.  


  • <가족사진> 
오랜만에 찍는 가족사진이어서 다들 약간 달뜬 표정이 역력했다.
어머니와 형수님, 그리고 아내는 전날 저녁부터 거실에 주르르 누워
마스크 팩을 했고, 아버지는 가발을 쓰고 찍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
유치원에 다니는 두 손자들에게 진지하게 의견을 묻고 또 물었다.
나는 짐짓 무신경한 듯
“거, 요즘 포토샵으로 다 보정해주니까 신경쓸 거 없어요”라고 말했지만,
정작 당일 아침 제일 먼저 미용실로 뛰어가는 속
좁은 모습을 보여 모두에게 원망을 듣고 말았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족들 모습에 너무 정겨움이 느껴졌다. 

아버님께서 나에게 둘째 낳으면 

가족사진 찍으러 가자고 하셨었는데..

잊기 전에 날 잡아봐야겠다. 

우리도 가족사진을 찍는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상상이 되었다. 

가족이 모여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따뜻함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이 책은 작가의 말 대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가족 소설이다.  

이 책 속에는 가족과 관련된 

일상의 희로애락이 다 들어있다.  

내가 꾸린 가족이 생긴 이후로는 

가족 이야기가 무엇보다 제일 따뜻하고

 제일 재미있는 것 같다.  

오랜만에 유쾌하면서 따뜻하면서 

가벼운 책을 읽어 좋았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일상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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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너무 웃겨서 중간중간 피식 웃고 말았네요 ㅎㅎ 나중에 기회되면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

넵 꼭이요^^

샘이나는 비유와 고찰이 묻어나는 글이네요. 어떤 눈을 가져야, 어떤 마음을 가져야, 어떤 생각을 해야 저런 글이 나오는 것인지 부럽기도 하고 마음을 동하게 하는 마력을 지니신 분이네요.

저도 저런 표현을 보며 감탄을 자아냈네요
저렇게도 표현을 할 수있다는게 작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기호 작가의 표현은 정말.. 말씀 처럼 같은 한글을.. 어쩜저리..^^; 감탄해 보며, 역시 읽어봐야 할 책 목록에 추가해 봅니다.


이유없이 밀치거나, 괴롭힐 때, 제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가르치고 하게 한 방법입니다..
(1) 우선, 상대아이에게 "불편해!! 하지마!!" 라고 꼭 말하라고 했습니다. 행여 전 후 어떤 일이 있었다 해도 밀거나 때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가르치거든요..
(2) 반복 되면 꼭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습니다. 가장 좋은 도움의 대상은 담임 선생님이 아닐까 합니다..

이 두가지만 잘 지켜도 아이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고, 제 걱정도 많이 줄였답니다. ~^^

이책 참 괜찮았어요^^
티원님 책도 읽고 밋업도 가셔야하고 바쁘시네요 ㅎ 조언도 감사합니다^^
아이키우다보면 여러가지 일이 발생하네요
저 어렸을땐 부모님이 막키우신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봅니다ㅠ

저는 아직 아이는 없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저런 상황에 나라면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생각해봤는데 뭔가 현명한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네요ㅠㅠㅎㅎ

ㅠㅠ 생각나면 꼭 댓글을 달아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ㅎ

상식적으로는 아이들의 부모님이 주의를 주고 옳지않은 행동임을 아이에게 확실하게 알려줘야하는데.. 요즘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많아서..아이들을 키우는게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요즘 어떤 어머님들은 차리리 맞지말고 때리라고 알려줘야한다고하니.. 하지만 어떤게 맞고 틀린지조차 감이 안옵니다. ㅠㅠ (글을 한참 재밌게 읽다가 아이이야기에 멈춰버렸네요.. 아이들과 일했던지라 이런저런일들로 고민을 많이했거든요 ㅠㅠ ) 좋은방법알게되신다면 공유해주세요!! ㅎㅎ

아이키우기 조심스러울 때가 많아요..요즘은 상식이 안통하는 엄마들도 많고요ㅠ. 상대방 아이가 아무이유없이 때릴때.. 정답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좋은 해답을 구하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책 내용이 다 좋네요. 물론 홀릭님의 글도 너무 좋아서 꼼꼼하게 읽어 내려왔답니다. 저도 글을 쓰시는 작가님들은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한국어이고, 같은 단어의 조합인데 어떻게 이렇게 표현하신는 것들이 다르신지...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할까요? 염소가 뿔로 이빨을 끍어댄다는 표현도 표현이지만 경험없이 그런 상상을 한다는 자체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저도 저희 시부모님보면 죄송하면서도 감사하고 그러네요. 요즘엔 셋째가 더욱 할머니엄마인 줄 알고 할머니 등에서만 있으려고 해서요. 세살버릇 여름까지?? 무슨 의도인지도 궁금하네요. 때로는 스티밋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좋은 글들도 많이 읽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으로도 좋을 때가 있네요. 좋은 밤되세요...^^ 점점 홀릭님한테 빠져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아이디 정말 잘 지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항상 바쁜 와중에도 댓글 달아주시고 감사해요ㅠㅜ 전 눈이침침하다는 이유로 댓글도 잘 못달아드리는데ㅠ
세살버릇 여름까지 이건 의도가 없더라고요ㅋㅋ
책을 읽어보면 왜 저런 제목을 지었는지 알 수 있어요^^
아이디는 친애하는 남편이 지었는데 말씀전해줄게요ㅎ 셋째도 엄마랑 또 지내다보면 금방 엄마에게 적응할거에요~누가뭐래도 엄마가 제일이니까요^^ 워킹맘님도 즐밤보내세요~

오~~ 저 책이 상당히 재미있는 모양이군만요~~, 아이들 키우면서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과연 어떻게 교육을 하고 가르침을 주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정말 구분이 안될 때가 참 많지요.

양목님 방문 감사합니다^^
상당히 재밌고 따뜻하게 읽었습니다ㅎ
가족이 있기에 더 절실히 공감하며 읽었네요^^
양목님 말씀대로 어떻게 교육을 하고 가르쳐야하는지는 참 어려운것 같습니다ㅠ

일상에서의 소소한 일들을 잔잔하면서도 위트있게 묘사하시는 작가분이네요, 저도 성함을 메모해두고 기억해야겠습니다:)

넵 감사합니다 ^^

일상에 대한 그런 털털한 비유들이 제일 적합하네요~~ 해초를 감듯~~ 제 머리가 많이 뻑뻑하여 ^^

저희 아이는 최근 학교에서 부모상담을 받은 적이 있어요~ (창피하지만 ㅜ.ㅜ)
이유는,
같은반 친구가~~ 주먹으로 자기 얼굴을 때려봐라~~ 때려도 안놀랠 자신이 있다고 했대요~
그래서 둘째가 살짝(당연히 세게는 안했죠 ^^) 쳤는데~~
그 놈이 양호실에 갔답니다~
그래서 양호실에서 우리 둘째가 때렸다고~~
얼굴에 아무 상처도 흔적도 없는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더라구요~
상담 선생님은 얼굴을 치는 행동은 절대로 있을수 없는 일이라나요~
그래도 때리라고 한 놈도 같은 경고장을 주었더군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언제 또 터질지 몰라 항상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답니다 ^^

살짝 쳤는데 양호실행ㅠ
커갈수록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나겠죠? 그나마 지금 별일 없는걸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네요ㅎ감사합니다 애드워드님ㅎ

저희 아이도 조금만 아프면 양호실에 가버릇해서 전화 많이 받았는데~~
제 아이가 가해자가 되니 많이 속상하더라구요 ^^
감사합니다~~

사실 아이들끼리 놀다그런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요즘은 손톱자국만 내도 학교폭력이라고 부르더라고요ㅡㅡ;; 무서운 세상이에요..
아~옛날이여~ 이럴땐 저 어렸을 때가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ㅎ

가끔 저희 아이 어디 스크레치라도 나면~ 물어봐요~
친구가 그랬다고 하면 저는 그럼 바로 양호실 갔어야지 ~~ 이런 내자신 ㅜ.ㅜ
그럼 아들이 말해요~~ 그럼 친구 선생님한테 혼나~~
아이한테 또 하나 배워요 ^^

항상 @holic7 님의 글을 읽으면 잔잔한 미소를 짓게 됩니다^^
저처럼 말재주, 글재주 없는 사람은 부럽기만 합니다~

달팽이님 겸손한 말씀이십니다 ㅎ
전 아직도 인텔리(인간텔레비)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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