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평범성과 비판적 사유의 필요성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루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이히만의 매우 '평범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것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나오게된 계기다.
우리네 주변에 있는 무수한 평범한 이들, 이들이 엄청난 악에 가담하게 되는 것은 바로 '비판적 사유의 부재'에서 나온다. 그래서 악이란 어떤 악마적 품성을 지닌 존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 비판적 사유의 부재를 통해 창출되고 지속된다.
교육의 국유화와 언론의 국유화가 무서운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물음표는 사라지고 비판적 사유는 결여된다. 정해진 인식만을 주입받게 되는데 새로운 인식체계와 메커니즘은 어찌 도래할 수 있을까? 주입받고 있는 인식 외에 다른 프레임을 알지 못하는데 그것이 잘못 되었는지 어찌 알 수 있을까?
저 강대상 앞에 있는 목사가 진정 하나님의 말을 전하고 있는가? 아니면 성직자라는 자리에서 일어나선 안 될 일을 했던 자신의 과거를 정당화하고 합리화를 하고 있는가? 확실히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아멘'만 외치는 사람들 처럼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모든 종류의 사유를 국가나 사회가 고유의 소유권으로 갖게 해선 안된다.
'교육과 언론의 국유화란 결국 사유의 국유화'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