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하는 육아일기 #77] 이 안에 범인이 있다!

in Avle 여성 육아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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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새벽,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5시 30분. 아직 이른 시간이라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한 채 다시 잠이 들었다. 한 시간 뒤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와 보니 과자 껍데기가 흩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었지만 완전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뒷처리가 부족하다. 입가에 잔뜩 묻은 부스러기가 아이들이 범인임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자 껍데기 수도 2개씩 딱 맞아 떨어진다. 둘이 사이좋게 나눠 먹고는 입을 맞춘게 분명하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두 아이 모두 찬장문을 열기는 아직 무리다. 아이들이 직접 꺼내 먹기는 다소 힘들어 보인다. 의자를 밝고 올라선다해도 키가 닿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내님이 꺼내 준 것일까? 아니다. 아이들 과자 외에는 잘 주지 않는 아내님이 새벽부터 내 과자를 꺼내 줬을리는 없다. 그럼, 혹시... 내가? 잠결에 꺼내 준건가? 아니다. 내가 몽유병 환자도 아니고 그랬을리 없다.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진다. 물증은 명백하나 심증이 부족한 다소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 아이들은 유유히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결국 아내님에게 조언을 구했다. 도대체 아이들이 무슨 수로 과자를 꺼냈을까? 아내님은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첫째가 둘째를 무등 태우고 의자에 올라선다면? 그럴싸한 가설이지만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첫째가 부쩍 힘이 세졌다고는 하나 의자 위에서 둘째를 무등 태우기에는 근력도 균형감각도 부족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무리 둘이서 머리를 맞대도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결국 우리 둘은 추리를 포기했다. 그러나 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어떻게 과자를 꺼내 먹었는지 말이다.

결국 아침을 먹을 때 첫째에게 슬며시 물어 보았다. 몰래 과자 꺼내 먹은 걸로 혼내지 않을테니 어떻게 꺼내 먹었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우물쭈물 거리던 첫째는 요플레 하나에 겨우 진실을 토해냈다.

새벽에 잠에서 깬 둘째가 까까 타령을 했다. 첫째는 둘째를 위해(????) 찬장에 있는 과자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의자 위에 올라서도 손이 닿지 않았다. 포기를 모르는 둘째가 싱크대를 가르켰고 첫째는 싱크대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단 한 뼘. 한 뼘이 모자랐다. 다시 궁리를 하던 아이들은 둘째의 키 높이 쿠션의자를 떠올렸다. 키가 작은 둘째를 위해 식탁의자에 설치해 놓은 쿠션의자가 범죄의 핵심 키였다! 싱크대 + 쿠션의자 콤보로 찬장에 있는 과자를 꺼내 사이좋게 나눠 먹은 아이들. 그들의 잔머리에 경의를 표하며 다시는 과자를 찬장에 놓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들에게 싱크대에 올라가서 떨어지면 위험할 수 있으니 다음에는 과자를 꺼내달라고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요플레를 맛있게 먹으며 씩씩하게 대답하는 아이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찬장으로 향했고 알 수 없는 미소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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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의 까까 타령에 형이 용기(?)를 냈군요~ 고녀석들 귀엽네요^^

몰래 먹는 과자가 정말 맛있죠.
그래도 다치면 안되니 높은 곳엔 두지 말기

형제는 용감했다.
그리고 형제는 부지런하다. ㅋㅋ

♥의좋은 형제네요♥

손에 땀을 쥐게하는 한편의 추리소설 잘 읽었습니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까까의 자유를 줘라!! 줘라!!

일찍 일어나는 새가 맛있는 간식을 먹네요~ 아빠도 아이들도 부지런들 하십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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