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개비 다섯 개

성냥개비 다섯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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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 생활> 중 밥 먹다가 별 것도 아닌 문제로 투닥거리는 장면에서 문득 동아리 동기들 생각이 났다. 나이 오십 먹어서도 집요하게 서로를 씹고 그걸로 웃고 때로는 토라지고 심하면 안볼 것 같이 굴다가도 다시 만나서 헤헤거리는...... 그래서 선배들한테 "88들은 왜 지금도 싸우니?" 핀잔이나 듣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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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반 때쯤이었나 90학번 한 명이 부친상을 당했다. 당시는 초상집에서 밤샘하는 문화가 남아 있어서 밤새 고스톱을 쳤다. 당시에도 민망한 금액인 점 10원짜리 고스톱이었다. 10원짜리를 바꿔 왔느냐 그건 아니고 나중에 계산하기로 하고 성냥개비로 일단 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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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리에 피박에 광박을 씌워도 오백원이 안나오는 쫌생이판이었지만 밤새 성냥개비는 무수하게 돌았고 수북하게 쌓였다가 탈탈 털리고 성냥개비 또 꺼내오고 상당한 열전이 벌어졌다. 먼동이 터 오고 주섬주섬 밤샘을 끝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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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시간 때우기로 친 거였으니 성냥개비 숫자에 민감할 필요는 없었고 대개 그렇게 생각하는 듯 했다. 동기 중 동아리 회장을 역임한 멀대가 갑자기 이렇게 소리지르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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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성냥개비 다섯 개 왜 안 줘. 아까 두번 광값 안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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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웃었다 다섯 개 빚진(?) 놈도 처음에는 웃었다. 그러나 멀대는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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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 빨리 내놔 임마. " 그러자 분위기는 일변하기 시작했다.
"줬잖아 아까."
"안줬어. 이 자슥이 사기를 치고 그래."
"사기? 뭔 사기를 쳐 임마. 내가 너 고박 씌웠을 때 줬다니까는"
"그래 나도 얘가 주는 거 봤어."
"나는 못받았다니까."
"야 야 집어치워 쪼잔하게 그래봐야 오십원이다 오십원'
"땅 파 봐 시키야 오십원 나오나."
"아 그 새끼 진짜 진지하네?"
"계산을 바로 해야지 씁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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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십원' 아니 성냥개비 다섯 개 광값 문제로 우리는 한동안 왈가왈부 이러쿵저러쿵 아웅다웅을 했고 주변의 선후배들은 이것들이 잠이 모자라 이러나 원래 이런 놈들인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 성냥개비 사건 외에도 참 희한한 걸로 많이도 싸웠다. 나이 오십이 된 지금 단톡방에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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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이 불렀고 <응답하라 1988>에서 김필이 다시 부른 노<청춘>은 정말 마력이 넘치는 노래다. 어쩌다 그 멜로디가 들리면 머리가 송두리째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그 시절의 풍경 위를 맴도는 느낌이 된다. 그런데 멀대 녀석이 당시 오십원을 챙겼는지 못챙겼는지는 기억이 잘 안난다. 단톡방에서 물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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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상전벽해됐을 삼양동인가 수유리인가의 고갯길에 있던 낡은 집. 그 집 골목에서 돗자리 깔고 찬이슬 맞으며 밤새 고스톱을 치던 젊음들은 이미 자식들 군대 대학 보낸 중년들이 돼 있고 그 중 세상에 없게 된 이도 있으나 단톡방에서 시덥잖은 일로 투닥투닥할 때 성냥개비 다섯 개가 종종 떠오를 것 같다. 이게 다 산울림 때문이다. 김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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