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事日記 시칠리아 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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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을까 내 지갑 안에 농협상품권 5000원권이 들어오게 된 시점은.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누구에게 받았는지 기억에 없다. 사용처가 분명하지 않아 시간은 흘렀고 지갑을 정리하다가 이번 달엔 꼭 써버리겠다고 결심을 했다. 가장 만만했던 데가 농협 하나로마트. 집에서 지하철 2정거장의 거리에 있었다. 그래서 급히 저녁산책코스를 바꿨다.

처음 걷는 길이었다. 큰 시장과 비어있는 상가로 즐비한 길을 걸어 농협 하나로마트에 들어갔다. 야채코너를 지나 과일코너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순간 내 눈에 확 들어온 국내산 레드오렌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껍질이 얇아 표면에 은근하게 드러난 피같은 빛깔, 10년 전 로마에서 먹었던 시칠리아 오렌지와 같은 색이 감돌았다. 나는 5000원 농협 상품권이 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렌지 봉지를 들고 다시 먼 길을 걸어 집에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한 뒤 껍질을 까고 접시에 담았다. “그맛이네.” 우리는 동시에 소리쳤다. 입 안에 오렌지 한 알을 넣었을 때 판테온을 처음 보고 흥분했던 날 저녁, 비 내리는 로마의 민박집에서 맛보았던 베리향과 오렌지향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기뻤다. 그 떄로부터 지금까지 전혀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과 이 순간은 이어져 그냥 존재하고 있었다. 시간은 없어졌고 우리는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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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 success go! go! go!

로마의 향기였어요? 흠... 눈에 띄면 비싸도 도전!

비싼 건 맛있어요:-)

이탈리아 향기를 다시 느껴보고 싶네요^^
이놈의 코로나가 끝나야 가볼텐데...

다음 이탈리아 여행 생각만해도 신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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