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낭만일기] 선택 선택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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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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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입구 맑은 하늘에 기분이 좋아! 한 컷


어제의 피곤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다시 만난 팀 춘자, 모카 포트를 사용해서 커피를 내리려다가 손아귀 힘이 부족해서 대실패, 아까운 원두 안녕... 모카포트는 정말 보내줘야 할듯

멀린 님이 대신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주셨다. 난생 처음 얼렁뚱땅 내리는 드립 커피인데 어떤 마법을 부리신건지 먹는 족족 다 맛있었다. 게다가 오늘의 드레스코드도 매우 바리스타 같아서 비쥬얼만 보면 일본에서 커피만 20년 연구한 커피장인 마스터 같았다. 이거이거, 약 팔 수 있겠는데?

마침 도착한 라라님은 야채김밥과 아메리카노의 꿀조합을 꼭 경험해봐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셨다. 라라님은 자신이 경험한 너무 좋은 것을 타인에게도 널리 알리려는 홍익인간 마인드를 탑재한 것이다.

분명 거하게 점심을 먹고 와서 몇 점 집어먹으려고 했던 건데. 김밥 러버라면 한 줄은 기본이죠. 커피와 김밥 조합은 처음인데 이거 너무 맛있잖아. 무심하고 고소한 기본 김밥에 마법사님이 내려주신 커피, 너무 맛있었다. 꿀조합 인정합니다.

그렇게 홀짝 홀짝 그날 마신 커피가 다 합쳐서 20잔이 넘은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돌아가는 길에 매우 울렁거렸다. 우리의 혈액 속에는 카페인이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오늘 회의 대목표는 공간 구성과 일정 잡기였다. 전기기사분도 불러야 할 것 같고, 페인트 칠할 시간도 필요했고, 대략적인 인테리어 일정과 견적도 정해야 했다. 장사는 멈출 수 없고 시간은 많지 않고. 무엇보다도 난감했던 건 원래 페인트로 덮어버리려고 했던 벽면 프린팅을 지울 수 없다는 제약이 생긴 것이었다.

역시 현실과 이상의 타협점을 적절히 조율할 시점이 왔다. 예산과 기간의 또 건물주와 관리인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의 제약을 조율하다 보면, 모든 걸 우리의 마음에 꼭 맞게 애초 계획한 모든 걸 100% 실행할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감사한 것, 고마운 것, 이 행운과 선물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를 떠올리며,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행패를 부리지 않도록 나를 다독거렸다.

그러나 저 거대한 고양이와 꽃 페인트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 것인가... 아이디어를 하나씩 던져보는데 영 다 내키지 않는다. 나는 애써 어느 정도 제약이 오히려 창의성의 원동력이 된다네! 라는 명언을 떠올려봤지만 자꾸만 막막해지는 기분이 피곤함과 크로스 되면서 잉크처럼 번져나갔다.

공간지각력이 부족한 나는 아래쪽 공간이 어떻게 변할 지 말로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계속 지하를 왔다갔다 거리며 사진을 찍고 확인을 했다. 그때마다 파란 리본을 단 고양이가 나를 앙칼지게 바라보았다.

왜 날 지우려고 해. 흥! 야옹!!!

할퀼 것만 같았다. 미안해. 그렇지만 넌 우리 컨셉과 너무 안 어울려.

하지만, 우리에겐 결정맨 라라님이 있다! 정신줄을 붙잡고 라라님의 전두지휘 아래 조금씩 조금씩 선택을 내렸다. 파티션을 어떤 형태, 어떤 색상으로 할 지, 테이블보도 천도 알아보고, 머신을 언제 받으러 가고, 철거와 전기공사는 언제할지, 페인트는 언제 칠할 지 무슨 색으로 칠할 지, 네온 사인은 어떤 글씨체로 쓸 지, 다트를 뺄지, 테이블 배치를 어떻게 할 지 등등. 머리가 아플 때까지 선택하고 또 선택하고 또 선택했다.

너무 어렵다. 이건 너무 어려워요. 하고도 선택했다.
선택 선택 선택!

젠젠님은 우리의 친구 당근마켓을 매의 눈으로 탐색하며 쓸만한 물건을 찾아나섰다. 예쁜 건 비싸고, 싼 건 안 예쁘다는 만고의 진리. 그러다가 예쁘고 저렴한 물건을 발견하면 너무 뿌듯하다!!

라라님은 오늘 아주 많은 색을 칠해 기쁘다고 쓰셨지만, 아직 내 머릿속에 21세기 여름의 공간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분명 지금 그리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겠지? 지하 공간이 우리의 손을 닿아 또 사람들과 이야기가 가득 차서 아늑해지고 새 생명을 얻으면 좋겠다. 공간도 사용되길 기다리고 있겠지?



지금 사는 집을 처음 본 날을 잊을 수 없다. 갈매기 몰딩과 정체 불명의 곳곳의 화려한 벽지를 보고 경악했다.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지 심히 막막했다. 그러나 사랑과 정성으로 (그리고 L군의 노동력으로) 깔끔하고 내 취향에 맞춘 예쁜 집으로 재탄생한 지금 이 공간처럼 분명 마법이 조금씩 일어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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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사놓고 쓰지 않은 페인트 도구들이 생각나서 L군에게 이거 다 가져가도 되냐고 했더니 다 가져가도 좋다고 했다. 페인트 칠하는 방법과 유의해야 할 점, 필요한 도구에 관해 조언해줬다. 내가 마음에 걸리는 고양이 그림을 보고 세상 취향 없는 L군 역시 그건 가리는 게 좋을 거라고 단호박 의견을 표현했다. 역시 이건 공통 만인의 취향이야 ... 일정이 맞으면 도와주면 안되냐고 징징거리니 한 번 일정을 보자고 했다.

이 기쁜 소식을 젠젠님과 라라님께 전하니 두 분이 선물을 받은 것처럼 좋아하셔서 갑자기 힘이 막 솟았다. 그래, 막막하더라도 조금씩 도움을 받아서 하나씩 하면 되는 거야. 또 라라님처럼 오늘의 아쉬움보다는 우리가 칠한 색에 기뻐하자 :D


p.s. 힝 팀 춘자 여러분 많이 애낍니다. 너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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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ears ago 

야채김밥과 아메리카노라.. 진짜 맞죠?????

너도 당해봐라 이거 아니죠?/ ㅋㅋㅋ

진심진심 맛있어요! 전혀 당해봐라 아니고요 :D

김밥집에서는 아메리카노를 팔지 않고, 커피집에서는 김밥을 팔지 않으니 오이님 같은 반응은 당연합니다. 일단 한번 드셔보시고 후기 좀... 인정 받고 싶은 마음...

ㄴ군 춘자의 명예이사시네요ㅎ

명예이사ㅋㅋㅋㅋㅋ 하필 요새 너무 바빠 도움을 구하기 어려운 게 매우 아쉬워요 ㅠㅠ 참 손이 야물딱지거든요

춘자의 센스가 늘 돋보옇는데 구성뭔이 럭셔리하군요ㅎㅎ

어머나! 럭셔리라니 💎 하하핫 럭셔리 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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