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일기_#01] 안녕, 프랑스! 안녕, 한국!

in KOREAN Society3 years ago

내 첫 비행은 카타르 항공이었다. 돈이 많았더라면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해 프랑스 파리행 직행을 끊었을 텐데, 불행히도 21살의 나는 돈이 없었다. 그래서 번거롭더라도 도하에서 한 번 환승을 한 후에야 프랑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흔들거리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한 일은 화물로 실었던 가방을 되찾으러 뛰는 것이었다. 홀로 오는 여행이라 여행사를 통해 픽업 기사를 잡아놨는데, 해외유심을 미리 사지 못한 탓에 픽업기사를 놓치면 연락한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불행한 것을 밝히자면, 나는 영어를 못하는 편이다. 한국의 고등교육을 마쳤으나 나는 공교육에는 흥미가 없는 편었고, 손으로 만드는 것이나 글을 쓰는 걸 더 좋아했다. 좋아하는 과목을 뽑으라면 한국사와 국어, 윤리였고, 싫어하는 과목을 뽑으라면 영어와 수학이었다. 나는 내가 평생 한국 안에서 살 것이라고 자만하며 살았다. 그래서 픽업기사와 연락이 되더라도 이 사람에게 ‘모종의 사정이 있어 늦었으니 날 데리러 돌아와!’라고 말할 도리가 없었다. (말한다 해도 그 사람이 하는 또박또박한 수능 영어가 아닌 원어민 영어를 알아들을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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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에 실었던 비싼 소중한 가방(내 몸의 반절이 가려진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대강 영어를 읽으며 가방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어느나라든 공항은 왜 그리도 큰지, 가방은 왜 이리 늦게 나오는지 불만이 많았으나, 처음 와보는 곳이라 그런지 불만보다도 설렘이 조금 더 컸다. 특히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나 난생처음으로 보는 많은 외국인들이 신기했다. 정말 내가 한국에서 벗어났구나! 하는 해방감 때문일지도 몰랐다. (사람을 보고 신기하다고 하는 것도 실례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내가 외국인일텐데 참 웃기는 일이다.)

나는 15분 동안 다리를 덜덜 떨며 내 몸의 반만한 가방을 찾아 매고 픽업기사를 찾아갔다. 픽업 기사는 푸근한 인상의 할아버지였는데, 내 덜떨어지는 영어를 꽤 잘 받아준 첫 번째 사람이다. 나는 큰 픽업 차량 안에서 처음으로 한국이 아닌 다른 세상을 봤다. 한국과 다른 건물들, 다른 사람들, 다른 길거리….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워서 견딜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한국에서의 나’를 모르는 사람들 뿐이었다.

그당시의 나는 열등감과 미래를 향한 불안감, 두려움들로 똘똘 뭉쳐져 있는 사람이었다. 글이 좋아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입시 학원에서 내 글은 쓰레기였다. 나는 항상 ‘대학에서 원하는 글’을 써내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끝의 끝에서까지 대학시험을 위한 글에 나를 우겨넣지 못했다. 나는 대입을 포기했고, 그 결과로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사이버대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글 공부를 하겠다고 돈은 돈 대로 써놓고 대학에 붙지 못했고, 친구들이 부모 돈으로 대학교에 입학해 MT와 술자리를 즐길 동안 나는 일을 해야했다. 고등학교 졸업식 이후로는 친구들의 연락도 무시로 일관했다. 친구들이 모였을 때 나오는 대학 이야기가 내겐 사형 선고 같았다. 때문에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안부 문자에도 죄송한 마음에 답을 보내지 못했고, 동네를 돌아다닐 때면 아는 사람을 만날까 모자를 꾹 눌러쓰고 다녔다. 나는 내 인생의 낙오자였고, 대한민국에서 원하는 청년상이 아니었다. 누군가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무서웠다. ‘사이버 대학교에다니고 있어요.’ 그 말 한마디에 죽고싶었다.

그런데 이곳은 달랐다.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한국에 있는 ‘서울 대학교’를 모른다. ‘고려 대학교’도, ‘연세대학교’도 몰랐다. 그들이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봉준호와 김치, 케이팝 정도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숨이 트였다. (사실 산티아고를 가겠다며 홀로 비행기에 올랐을 때도 한국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순례나 종교 같은 숭고한 의미는 없었다.)

아직까지는 산티아고를 위해 마련한 오백이 아까웠지만 어쩐지 행복했다. 오픈카톡 ‘12~2월 까미노 여행방’에서 만난 언니와 우여곡절 끝에 그림에서만 보던 에펠탑을 본것도, 베르사유 궁전 계단을 밟아본것도, 퇴근길 파리의 지옥철에 함께 실려 베트남 쌀국수를 먹은 것도 다 좋았다. 별것 아닌것에도 웃음이 났고, 길거리 나무 모양이 신기해 한참 들여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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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나 보던 외국 꽃집. 겨울바람이 선명했는데도 예쁘게 피어있었다.

한국에서는 항상 아침 8시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충무로로 가 밤 11시에 나오던 일상이었다. 계절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몰랐다. 눈을 떠보니 꽃이 져 있었고, 사람들이 목도리를 하기에 패딩을 꺼내 입었더니 겨울이었다. 감정은 항상 무뎌진 칼처럼 무엇 하나 예리하게 짚어낼 수 없었다. 그나마 감정을 알아차릴때는 우울하거나 화가 나거나 죽고싶었다. 그래서 그냥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그렇게 살다보니 21살의 1월을 지나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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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텅 비어버린 통장을 생각하면 눈물나게 아까웠지만 2월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됐다. 산티아고를 향한 첫 걸음은 아니었으나, 출발선 바로 앞에 서 있던 1월 21일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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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날 정도여요. 그 마음 이해가 가네요.

교수님!!! 고마워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께요.

미인이시고, 도전정신에 찬사를 보내드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별로 좋지 않은 글인데 예쁘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글입니다. 앞으로 많은 활약 기대 됩니다.^^

그런 시절을 겪으셨군요.다음 편이 기대돼요. ㅎㅎ
리스팀 합니다.

그냥 제 마음 속을 글로 옮길께요.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구요.

글 재밌게봤습니다. 산티아고는 언제 가신건가요?
저도 카타르항공 타고 한국온게 생각나네요

산티아고 도착은 2월 29일쯤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ㅎㅎ카타르 항공 기내식이 맛있었던게 떠오르네요!!

마음이 뭉클하네요. 행복한 여행 하셨을 것 같아요 :)

감사합니다! 살면서 가장 행복한 여행길이었어요👍🏻

글이 실감나고 재미있어요. 대박의 예감이 듭니다.

재밌게 읽어주신 것 같아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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