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의 역사 5월 15일

in zzan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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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7(조선 태조6)년 세종임금 탄생(음력 4.10)
세종은 1397년(태조 6)에 태종과 원경왕후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도(祹), 자는 원정(元正)이다. 위로는 14년간 세자의 자리에 있다가 폐위된 양녕대군과 세종의 세자 책봉 후 불가에 귀의한 효령대군이 있으며, 아래로 성령대군이 있다. 세종은 1418년(태종 18) 6월에 양녕대군을 대신해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두 달 뒤 태종의 선위로 왕위에 올랐다.

세종은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해서 부왕인 태종이 건강을 염려해 책 읽기를 금할 정도였다. 임금은 천성이 학문을 좋아해 세자로 있을 때 항상 글을 읽되 반드시 백 번씩을 채우고, 《좌전(左傳)》과 《초사(楚辭)》 같은 것은 또 백 번을 더 읽었다. 일찍이 몸이 불편할 때도 역시 글 읽기를 그만두지 않았으니, 병이 점차 심해지자 태종은 내시를 시켜 갑자기 책을 모두 거두어 가지고 오게 했다. 그리하여 다만 《구소수간(歐蘇手簡)》 한 권이 병풍 사이에 남아 있었는데, 임금은 천백 번을 읽었다.

남달리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세종은 자신의 넓고 깊은 학식을 국가 경영에 직접 도입해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세종의 시대에 조선은 부국강병을 이루어 안팎으로 안정된 정국 속에서 한글 창제, 예치주의의 실천, 천문학 및 농업의 발달 등 가장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세종은 군주의 자질을 타고 났지만, 그가 군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태종의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만약 태종이 양녕을 폐위시키지 않았다면 셋째였던 세종에게는 왕위에 오를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태종은 세종이 세자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남으로써 세종이 빠르게 군주로서의 위엄을 갖출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가르쳤다. 왕세자 교육을 따로 받지 않은 세종에게는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훈수가 속성 군주 수업이었던 셈이다.

특히 태종은 '모든 악명(惡名)은 내가 지고 간다'라는 일념으로 세종에게 부담이 될 만한 요소는 본인이 직접 나서서 제거했다. 세종의 장인인 심온 등을 제거한 것이 대표적이다. 태종의 이러한 과감한 행동 덕분에 세종은 안정된 왕권을 누리면서 성군(聖君)이라는 칭송을 들으며 정국을 이끌 수 있었다.

세종은 세자에 책봉되기 전인 1408년(태종 8)에 심온의 딸(소헌왕후)과 혼인했다. 세종의 정비 소헌왕후는 아버지 심온이 태종에 대한 불충의 죄로 죽임을 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일각에서는 죄인의 딸이 왕비의 자리에 있을 수 없다며 폐비를 주장했지만 태종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세종도 부왕의 뜻대로 장인인 심온을 복권시키지 않았지만, 정비인 소헌왕후만은 몹시 아꼈다.

세종과 소헌왕후는 8남 2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첫째 아들이 문종, 둘째 아들이 세조(수양대군)다. 세종은 이 밖에 5명의 후궁을 더 두어, 이들과의 사이에서 10남 2녀를 낳았다. 이처럼 많은 자녀를 둔 것은 부왕인 태종의 뜻이기도 했다.

1967년 경북 월성 앞바다에서 신라 문무왕 해중왕릉 확인
경북 경주시 월성군 양북면 봉길리 약2백m 앞바다에 있는 대왕바위에서 바닷물 속에 지어진 문무대왕릉이 발견됐다.

둘레 약 2백m의 대왕바위에 정확한 동서와 남북으로 십자수로를 깎아내고 그 중앙에 패진 4평 가령의 해중못에 해중릉이 조영되어 있다. 유골은 그 못안 석함속에 안치된 것으로 보이며, 그 위에 길이 3.59m, 두께 0.9m의 큰거북 모양의 화강암 개석이 덮여졌다.

이런 릉의 조영방식은 사문을 배치하고 그 중에 사리를 안치한 기원전 2세기의 산치탑을 위시해 5, 6세기 중국육조시대의 목탑 그리고 신라의 봉황사탑, 백제의 미륵석탑 등의 양식과 비슷하다. 문무대왕은 "내가 죽으면 서국(인도) 식으로 화장을 하여 동해에 장사를 하라. 그러면 용이 되어 왜구의 침입을 막으리라."는 뜻의 유언을 했었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한겨레 신문의 역사는 1975년 동아일보·조선일보 해직기자들로 구성된 자유언론수호 투쟁위원회의 회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1987년 9월 1일, 투쟁위원회는 종로구 안국동에서 창간발의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본격적으로 창간 작업에 나섰다. 준비위원회는 신문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민들을 대상으로 주식을 공모했고, 10월 30일에는 명동에서 창간발기인 대회를 열어 각계를 대표하는 56인으로 창간위원회를 구성했다. 공동 대표로 전(前) 동아일보 편집국장 송건호와 변호사 이돈명이 추대되었다.

모금 운동이 진행되는 과정 중 위원회는 9차례에 걸쳐 <한겨레 신문 소식지>를 발간했고, 이 소식지는 모금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는 데 기여를 했다. 1988년 2월, 창간 기금 모금 운동의 결과로서 50억 원이 조달되었다. 이후 5월 15일, 36면으로 구성된 <한겨레 신문>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종합 일간지로서는 전면 가로쓰기와 한글 전용을 실시한 최초의 신문이었다. 또한 한국 언론사상 개별 언론사 최초로 신문윤리강령을 제정했으며, 편집위원장도 기자들의 직선제로 선출하는 등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제도를 갖추었다.

창간호에서 '한겨레신문 윤리강령'과 그 실천요강을 발표했는데, 신문 제작과 관련된 금품수수나 개인을 위해 신문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1988년 8월 한국언론계 최초로 편집위원장 직선제를 실시해 제2대 편집위원장 장윤환을 뽑았으며 사내 민주화 실현을 지향했다. 〈한겨레신문〉은 나라의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과 민족의 통일을 목표로 국민에 바탕을 둔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정립’을 설립목적으로 하고 ‘대중적 정론지’임을 자처하고 있다.

2005년부터는 국내 신문 사상 최초로 탈네모꼴 글꼴인 ‘한겨레결체’를 새롭게 만들어 지면에 활용하고 있다. 탈네모꼴 글꼴은 한글의 조형미를 극대화하고, 가독성을 높인 새로운 글꼴로 독자와 시민들에게 한겨레결체를 무료로 배포했다. 2006년 1월 1일부터 제호를 <한겨레 신문>에서 <한겨레>로 변경했다. 2009년에는 프랑스의 국제 전문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업무 제휴를 맺고 한국판 발행 사업을 시작했으며, 웹 방송 ‘hani TV’를 개국하여 종합 미디어 언론 기관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2014년 2월에는 미국의 자유주의 계열 인터넷 신문 <허핑턴 포스트>와 제휴하여 합작법인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를 설립하고 한국어 서비스를 개시했다. 더불어 모바일 시대에 최적화된 콘텐츠 혁신을 위해 혁신 3.0 비전을 세우고 브랜드 이미지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2009년 북한 개성공단계약 무효선언
정부 “북한의 일방조치 받아들일 수 없다”
북한이 15일 개성공단에 적용했던 관련 법규와 계약의 무효를 선언하고 자신들이 새로 제시할 법규와 계약을 남한 측이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공단에서 나가도 좋다고 밝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를 통해 남한에 이 같은 내용의 통지문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통지문에서 개성공업지구 내에서 남한 기업에 특혜적으로 적용했던 토지임대료와 사용료, 노임, 세금 등과 관련한 법규와 계약의 무효를 선포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정세와 현실의 변화에 맞게 관련 법규와 계약을 개정하는 절차에 착수할 것이라면서, 남한 측이 이상의 사항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개성공업지구에서 나가도 무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6.15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6.15의 혜택을 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이치"라면서 "남측은 개성공업지구 계약 개정을 위한 실무접촉을 무산시키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북한의 개성공단 관련 법규 및 기존 계약 무효 선언에 대해 논평을 내고 “북한의 일방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통일문제 전문가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북으로서는 남북관계 전면중단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예정된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면서 남북관계의 전면중단 가능성을 전망했다. 정부는 이에 앞서 15일 오전에 임금 등 개성공단 기존합의 재협상 문제와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문제 등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당국간 개성 실무회담’을 내주에 개최할 것을 북한 측에 제의한 바 있다.

2013년 검찰 '4대강의혹' 본격수사
검찰, 공정위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 확보
검찰이 이명박 정부의 최대 국책 사업인 4대강 사업 과정에서 벌어진 건설사들의 입찰 담합 비리 의혹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검찰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압수수색해 입찰 담합 비리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서울중앙지검이 지난 6월 말 공정거래위원회를 압수수색해 건설사들의 4대강 입찰담합비리 관련 조사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건설사 담합에 대한 공정위 조치가 적절했는지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라며 압수물 분석을 마무리하는 대로 다음 달부터 관련자들을 소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공정위는 4대강 사업 1차 입찰과정에서 담합을 벌인 대림산업과 현대건설, GS건설, SK건설, 삼성물산 등 8개 업체에 과징금 1100억여 원을 부과했지만 검찰에 고발하지는 않았다. 검찰은 공정위가 건설사들을 고발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외부 압력이 있었는지 조사할 방침이다.

4대강 복원 범국민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은 공정위가 건설사들에게 지나치게 낮은 과징금을 부과했고 담합을 확인하고도 고발하지 않아 직무를 유기했다며 공정위를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건설사들이 공정위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데다 국책사업에 적극 참여한 점을 고려해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며 외압설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1712(숙종38)년 청나라와의 경계 표시한 백두산정계비 세움
1915년 경춘도로 준공
1918년 3대와 6대 국회의원 지낸 국회오물투척사건(1966년)의 주인공 김두한 태어남
1923년 평양 전차 시운전
1948년 항공부대 창설
1956년 제3대 정부통령선거, 대통령 이승만(자유당) 부통령 장면(민주당) 당선
1958년 한강인도교 보수 개통
1963년 도쿄올림픽 남북한단일팀 협상 열림(홍콩)
1996년 오늘 10개여성단체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추진특별위원회 구성
2007년 대하소설‘혼불’ 배경 종갓집 불


검찰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의 공사 건설 비리와 관련, 건설업체 수십 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압수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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