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오늘의 역사 4월 29일

in zzan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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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상하이일일신문에서 일제가 일왕 히로히토의 생일인 천장절인 1932년 4월 29일에 홍커우공원에서 전승축하기념식을 열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임시정부에서는 김구의 제안에 따라 폭탄투척거사를 결정했다.

그날 오전 홍커우공원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고 일경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하지만 윤봉길은 그들의 경비망을 뚫고 단상 가까이에서 기다렸다. 오전 11시 40분경, 식순에 따라 무라이 총영사의 축사에 이어 일본국가 기미가요가 끝나는 순간 수통형 폭탄의 덮개를 벗겨내고 안전핀을 뽑은 다음 단상 위에 집어던졌다.

폭탄은 굉음과 함께 불꽃이 일어나면서 노무라와 시게미츠의 면전에서 폭발했다. 그로 인해 시라카와 대장과 카와바다가 치명상을 입었고 노무라 중장은 한쪽 눈을 잃었다. 우에다 중장과 시게미츠 공사, 무라이 총영사, 토모노 거류민단 서기장 등은 중상을 입었다. 윤봉길은 거사 직후 헌병대로 연행되어 모진 고문까지 받았다. 그해 5월 25일, 일본군법회의에서는 윤봉길에게 사형을 언도했고 총살형에 처해졌다. 당시 그의 나이 25세였다.

일제는 그를 육군묘지 아래 일반인이 왕래하는 통로에 암장해 버렸다. 그때부터 13년 동안 오가는 행인들의 발에 짓밟혔던 윤봉길의 유해는 해방 1년 뒤인 1946년 3월 6일 발굴되어 조국의 품에 돌아왔고, 그해 6월 30일 국민장으로 장례가 치러진 다음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1962년에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1967년 김일, 레슬링 세계 헤비급 챔피언 등극
김일은 호남 씨름판을 휩쓸던 장사였다. 1929년 3월 전남 고흥 거금도 생으로 역도산과 일본 프로레슬링에 흥미를 갖게 돼 27살이던 1956년 무작정 밀항, 일본으로 갔다.

시모노세키에서 단속경관에 걸려 수개월 여 보호소에서 갇혀 지내다 귀국한 김일은 역도산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혼신의 노력 끝에 역도산 휘하에서 프로레슬링을 시작할 수 있었고 1959년 일본 프로레슬링 무대에 데뷔했다.

김일은 역도산의 코치를 받고 자신만의 특기인 박치기를 연마했다.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으면 스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역도산의 지론이었다. 김일은 이 박치기를 무기로 1963년 WWA헤비급 챔피언이 되었고 이후 1980년 은퇴할 때까지 스무 차례나 방어전을 치뤘다. 박치기는 김일을 스타로 키운 그만의 특기였다. 하지만 박치기의 데미지가 쌓여 훗날 건강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1965년 8월초 김일이 주측이 된 대회가 열렸다. 구름관중이라고 할 정도로 장충체육관은 인산인해였다. 동네 부자집 앞마당에 설치된 흑백TV앞에도 동네 사람들이 다 몰렸다. 한국 프로레슬링협회와 일본 프로레슬링 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극동 헤비급 선수권 쟁탈전’이었다.

한국 대표는 김일을 비롯 장영철, 천규덕 등 10여명이었다. 일본에서는 역도산의 제자 4명등 에이스급이 출전했다. 8월7일 열린 준결승전은 모두 한일전이었다. 김일은 길촌(吉村)을 2대1로 눌렀으나 천규덕은 일본의 요시노 사도에게 패배하였다.

결승전에서 김일은 초반 약세를 보이는척 하다가 막판 박치기를 작렬시키며 일본 선수를 물리치고 제1회 극동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대회는 완전 성공이었다. TV는 물론 신문에서도 이 경기를 대서특필했다.

호랑이에 삿갓과 곰방대가 그려진 가운을 입고 링에 등장하는 ‘한국대표’ 김일은 35년간 한국민을 괴롭혔던 일본의 거구들을 일거에 제압, 삶에 시달렸던 국민들에게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일본선수의 반칙으로 이마를 다친 김일은 선혈이 낭자한 가운데서도 막판 몰아치기로 승리를 따내 국민들을 더욱 열광시켰다. 김일이 분노에 찬 박치기를 가하면 상대는 비틀거리다 쓰러지고 관중들은 환호성을 터뜨리며 해피 앤딩으로 끝나는 것이다.

1978년 고리원자력발전 1호기 상업운전 시작
고리원자력발전소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효암리,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일대에 위차한 원자력발전소로 총 4기로 이뤄져 있다. 이중 최초의 상업 원전인 고리 1호기는 1971년 3월 19일 첫 기공식을 가진 이후 87개월간의 건설 공사를 거쳐 1978년 7월 20일 준공됐다. 전력난을 이유로 준공으로부터 약 3개월 전인 1978년 4월 29일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건설 공사는 미국의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가 전반적인 설계와 시공을 주도했다. 웨스팅 하우스가 원자로계통 설비의 공급과 초기 원전연료 공급을 맡았으며 영국의 GEC가 터빈·발전기 계통 설비의 공급과 토건공사 감독을 맡았다. 국내 업체 중에서는 현대 건설이 원자로 계통을, 동아건설이 터빈·발전기 계통 공사를 하도급 형태로 참여했다. 건설 공사에는 미국 정부의 차관 등으로 조달한 총 1560억 7300만 원이 투입되어 당시로선 사상 최대 규모의 단위 사업으로 꼽혔다.

가압경수로형(PWR)인 고리원자력 1호기의 설비용량은 587,000kw로 1978년 준공 당시 국내 총 발전 설비 용량의 659만kW의 9%를 담당했다. 한수원은 고리 1호기는 1979년 2차 오일쇼크 극복에 견인차 노릇을 하는 등 1970년대 '한강의 기적'과 에너지 자립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고리 1호기의 설계 수명은 30년이다.

1981년 언론중재위원회 발족
언론 중재 위원회는 언론의 주장으로 피해를 입은 자들의 반론 보도, 정정 보도, 추후 보도 및 손해배상청구에 관한 사건을 접수하여 조정 및 중재하고, 언론 보도로 인한 침해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1년에 설립되었으나 1987년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로 언론 보도로 인한 분쟁 조정 및 중재, 언론 피해와 관련된 법률 상담 서비스, 언론사에 대한 시정 권고, 불공정 선거 기사 심의 및 사과문·정정 보도문·경고문 게재 또는 권고 및 주의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언론 매체가 늘어나고,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가 증가하면서 언론 중재 위원회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법률적 역할의 제약으로 실질적 개선 효과가 크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2015년 중국 상하이 윤봉길기념관 재단장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 더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29일 중국 상하이시 훙커우구 루쉰 공원 매헌기념관 광장에서 한국과 중국 정부 대표단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윤봉길 의사 의거 83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윤 의사가 조국 독립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한 뒤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가 낭독됐다. 루쉰 공원은 윤 의사가 1932년 일왕 생일과 전쟁 승리를 축하하던 일본군 장성들에게 폭탄을 던진 장소다. 이곳에선 매년 의거일(4월 29일)에 맞춰 기념식이 열린다. 올해는 매헌기념관이 6개월의 보수를 거쳐 새로 문을 열었다. 매헌은 윤 의사의 아호(雅號)다.

1994년 중국 정부가 65㎡(약 20평) 남짓한 부지를 제공해 설립된 매헌기념관은 그간 전시물이 낡고 자료가 부족해 윤 의사의 정신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보훈처는 훙커우구 측과 협력해 작년 말부터 1억5000만원을 들여 개·보수에 나섰다. 공원 입구부터 ‘윤봉길 기념관’이란 한국어 안내판을 걸고, 윤 의사의 업적과 일대기를 다룬 영상물과 옥외 전시물을 제작했다. 중국 정부 역시 기념관 주변 부지를 2500평까지 늘려주었다. 양국 정부가 직접 나서 기념식을 가진 것은 처음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루쉰 공원은 중국의 문호인 루쉰의 묘역이 있는 곳이어서 중국인들에겐 매우 중요한 장소”라며 “중국 정부는 윤 의사의 정확한 폭탄 투하 위치에 대한 연구를 허용할 만큼 우호적으로 변했다”고 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윤 의사의 친손녀인 윤주경 독립기념관장은 “상하이 의거는 단순히 일본으로부터의 독립뿐 아니라, 비도덕적 제국주의에 항거한 점에서 세계적 평화 연대 운동의 출발로 삼을 수 있다”고 했다.

2019년 문화재구역 입장료 32년만에 폐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구례 천은사 문화재입장료가 32년만에 폐지됐다.
애초 1960년대 후반 당시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리산국립공원을 지정하며 천은사 소유 토지를 포함시켰고, 1987년 전두환 정권은 관광특수를 위해 지리산 관광도로(861번 지방도)를 개통했다. 이후 정부는 이곳에 매표소를 설치해 국립공원입장료와 문화재구역입장료를 함께 징수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2007년 국립공원입장료를 폐지하면서 사찰의 문화재구역 입장료는 ‘뜨거운 감자’가 됐다. 천은사 측은 지방도의 상당수가 사찰 경내와 소유 토지를 통과하고, 산내암자와 선원 등을 잇는 문화재구역이어서 계속 입장료를 받아왔다. 이에 일부 시민단체들은 천은사 문화재입장료에 대해 법정 소송을 제기하는 등 갈등을 빚었다.

장기간의 논란 끝에 천은사와 지역 본사인 화엄사, 전라남도, 군례군 등 관계기관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속적으로 만나며 해결 방법을 모색해왔다. 결국 천은사와 관계기관들은 2019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입장료를 폐지키로 하고 산문을 국민들에게 개방키로 협의한 것이다

이날 협약에 따라 구례 천은사는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 폐지하며 관계 기관들은 천은사 운영 기반 조성사업 지원 등 ‘지리산 권역 관광 활성화’에 노력키로 했다.

2020년 이천 물류센터신축현장 불 사망38명
경기 이천시의 물류센터 신축 공사장에서 큰 폭발과 함께 불이 나면서 29일 오후 11시 현재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초기 현장 조사에서 가연성 물질인 우레탄폼 작업 중 발생한 유증기(油蒸氣·기름이 섞인 공기)가 용접 작업으로 급속히 연소하면서 폭발적으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돼 안전불감증이 초래한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32분경 경기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신축 공사장 지하 2층에서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물류센터 공사 현장에는 지하 2층부터 지상 4층까지 전기와 도장, 설비, 타설 등 분야별로 시공사와 하청업체 등 9개 업체 직원 78명이 작업 중이었다. 이 중 38명이 숨졌고, 부상자 10명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소방당국은 밤새 시신 수습 작업을 벌였으나 짙은 연기 때문에 수색에 어려움을 겪었다.

관계기관의 현장조사 보고에 따르면 최초 발화지점은 지하 2층 화물용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을 하던 곳이다.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해 용접 작업을 하다 불씨가 우레탄폼으로 옮겨붙으면서 유증기가 폭발해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 불길은 유독가스를 내뿜으며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물류센터 전체로 퍼졌고, 새까만 연기가 일대 하늘을 뒤덮었다.

화재 직전 현장을 나온 A 씨는 “지하 구조가 미로처럼 복잡해 동료들이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사상자의 옷이 전부 탄 것을 볼 때 유증기가 폭발하면서 폭발적으로 불이 나 탈출시간을 상실해 인명 피해가 컸다”고 밝혔다.

2020년 고 김복동 할머니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의 국제엠네스티 언론상 특별상 수상
일본군 위안부 출신 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할머니가 국제앰네스티 특별상을 받았다.
정의기억연대 주최로 29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37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김 할머니에게 언론상 특별상을 수여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김 할머니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와 생존자의 정의 회복을 위해 맞서 싸운 공로를 인정해 ‘제22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신민정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장은 “김복동 인권활동가는 자신이 겪은 아픔, 참혹함이 반복되지 않도록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활동의 끈을 놓지 않았다”며 “김 인권활동가의 행보는 전 세계에 깊은 울림과 용기를 줬고 우리에게도 영감을 줬다고 전하고 싶다”고 말하며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에게 특별상 상패를 전달했다.

이날 수요시위를 주관한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는 성명에서 “일본군의 만행에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던 피해자에게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요구했다. 연합회는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일본 정부가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그날을 희망한다”며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 앞에 당당히 맞서는 피해자들과 함께하겠다”고 강조했다.


의거 직후 일본 헌병에게 끌려가는 윤봉길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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