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빈 봉지 툭툭 차며 놀다

in zzan3 years ago

화면 캡처 2021-12-11 231037.png

검은 봉지 한 번 차고
하얀 봉지 한 번 차고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그 사내 살아 있습니다
가끔씩 전철 지나는 소리에
창문 한 번 쳐다보고
창문에 비친 낯선 사내
들여놓고 같이 차며 놀자 꼬드깁니다

다시
툭, 검은 봉지 차고
툭, 하얀 봉지 차고
적막한 밤에, 그 누구도 올 일 없는
캄캄한 밤에, 흑백 가리지 않고 골고루 찹니다
옆방에 소음피해 주지도 않고요

바스락, 밟혀서 구겨지기도 하고
바람 들어차 빵빵해지기도 하고
세게 차면 세게 차는 대로
잘못 차면 잘못 차는 대로
바스락바스락대는 그 사내

의자에 걸린 하얀 봉지 꺼내주고
냉장고에 부딪힌 검은 봉지 구해주고
툭툭, 점점 차는 기술도 늘어납니다
아 사랑도 기술이 필요하나 봅니다
밟혀도 바스락, 찢겨도 바스락, 버려져도 바스락
차이고도 대들지 않는 바스락 사랑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놀아주는 바스락 사랑
바스락 순간을 귀하게 여기라고 봉지가 말합니다
오늘부터 한결같은 봉지로, 속을 비운 사람으로
바스락거리겠습니다
같이 놀아준 두 봉지에게 입맞추며
잠시 숨 고르고 다시 놀자고 약속하는
그 사내 데리고 놉니다

2021.12.12.
@Jamis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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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비닐 봉지와 친구를 할까요?
우선 빈봉지를 하찮은 물건이 아닌
존중의 마음으로
내 상대로 인정해 주시는 마음이
평범하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에 생명을 불어넣고
동반자로 격상시켜 주시는 분께
매사 행운으로 귀결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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