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가고 쓸쓸히 남는 거

사랑은 가고 쓸쓸히 남는 거
이응률

나의
우체통
나에게로 온 것인가 싶었는데
그전에 살던 이에게로 온 겁니다

국민건강보험 3개
노인복지관 2개
시청 징수과 2개
도시가스 2개
한국전력공사 2개
경찰서장 1개

가져가라는 거 없고
찾아가라는 거 없고
제때 내라는 거뿐

뼈 부서지더라도 살려고 했을 거고
늙어가면서도 잘 살려고 했을 거고
가스 불 켜면서 먹고 힘내서 살려고
삶은 끓었을 거다
반짝, 전등 켜면서 잘 살려고
사랑을 끄지 않았으리라
죄지으면서도 잘살아보려고
남은 사랑 꼭 쥐었으리라

나의
우체통
그에게로 온 것인가 싶었는데
나에게로 오고 있는 겁니다
63년 전 잉태될 때부터
아니 63억년 전으로부터
나에게로 오고 있었던 겁니다
쓸쓸한 틈새나 구석들이 따뜻하게
세상을 껴안고 눈 맞추고 입 맞추며
사랑하라고

2021.12.10.
@Jami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