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친구 이야기

in zzan2 years ago

그림 이야기 친구 이야기/cjsdns

얼마 전 아내의 지인이 내가 사는 곳에서 30분쯤 거리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 갔다.
장애우를 돕기 위한 전시회라 하기에 아내에게 그림 한 점을 골라 보라고 했다.

그때 낙점된 그림이 이 그림이다.
임재은 작가의 중도란? 이란 주제의 그림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는 삼각형을 이루는 까만 줄 2개만 없다면 정말 대단한 그림인데 싶은데 작가는 좀 더 설명하고 싶었나 보다. 시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작품에는 많은 설명을 담기보다는 빼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비로소 작품이 작가를 떠나 새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나름 의미가 있는 그림으로 보여 선정했다기에 빨간 리본을 달았다.
그림값은 바로 지불하고 작품은 한 달 뒤 전시회가 끝난 뒤 받기로 했다.
직접 배달해주시겠다기에 그리 하기로 했다.
그, 그림이 위 그림이고 며칠 전 배달이 되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향을 싸면 쌌던 종이에서 향냄새가 생선을 싸면 그 종이에서 비린내가 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늘 이야기는 그와 비슷하나 전 혀 다른 이야기이다.

그림을 포장해온 종이를 벗기니 붓으로 쓴 글씨가 나온다.
누군가 연습을 한 글씨인데 제법 괜찮아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좋아는 보이는데 뭔 이야기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하여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냈다.
내게는 역사편찬 객원 교수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던 친구가 있기에 이런 난관이 있을 때는 서슴없이 봉사해라 하며 보낸다.


그랬더니 정자로 써서 자세한 설명과 함께 보내왔다.
고마운 친구다.
내 인생에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게 고마운 일이다.
애터미 이야기를 했을 때 딴청 하는 거 빼놓고는 나무랄게 별로 없는 귀한 벗이다.

그런 그가 저번 거 붓으로 써 봤다며 보내왔다.

이 친구는 알아주는 명필인데 직업은 수년 전부터 애 보는 일을 한다.
정작 이 친구의 영향을 받은 다른 친구는 직업이 서예인으로 평생을 살고 지금은 자타가 인정하는 내로라하는 위치에 있다.
한글 서예 작가로서의 긍지도 대단하고 그만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하튼 정말 글쟁이를 직업으로 삼을 거 같았던 친구는 스포츠 사업으로 큰돈을 벌고 지금은 애 보는 사업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이 친구는 70년대 중후반부터 80년대 어느 시점까지 강남 대치동에서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잘 나가는 서예 학원으로 명성을 쌓았고 이 친구의 영향으로 주변 여러 친구가 글씨 공부를 해서 서예 학원을 곳곳에 차려 전성기를 누렸다.

그런 과정 중에도 유일하게 대학원까지 다니며 전문 분야 공부를 꾸준하게 한 친구인데 어쩌다 사업에 빠지다 보니 지금은 알아주는 사람이나 알아주는 실력 있는 야인으로 머물러 있으며 인생 뭐 있어 이 세상에 오는 신생아들 잠시라도 잘 보살피고 좋은 기운 깃들도록 좋은 이름 지어주는 게 인생의 의미 있음이고 낙이지 하며 그리 살고 있다.

여하튼 나만 공부나 글쓰기 하고 멀다 생각하고 그쪽 하고는 거리를 두고 리어카 끌며 과일 야채 행상을 했는데 세상일이란 알 수 없듯이 여차저차 하다 보니 지금은 내가 시를 쓴답시고 글 쓰는 게 직업이 되었고 부끄러워 어디 가서 시인입니다. 글쟁이입니다. 말도 못 하고 지냈는데 그것도 군에서 배운 특유의 열등감 퇴치 작전을 쓰다 보니 이제는 뻔뻔해져서 얼굴 내놓고 시인입니다 하고 다닌다.

뭐, 솔직히 말해 이기춘 스승님 탄생 백주년 기념 시비 덕분에 인생의 반환점이 되었고 마냥 초라하기만 했던 내게 자신감과 지도 편달은 가평 문인협회를 만들고 여태껏 봉사해주시는 현재의 회장님이 큰 영향을 끼쳤고 지금은 창작 교실을 맡아 운영해주시는 이영춘 선생님 그림자 속에는 못 들어도 그림자가 되어 보고자 옆에서 맴돌고 있다.

그런데 아니러니 하게도 스팀을 만나고 별 볼 일 없는 글쟁이에서 별 볼일 있는 별을 낳고 있는 글쟁이가 되어가고 있다. 글이야 별이 못 되어도 작가들 뒤바라지라도 잘해서 별을 많이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지나치리만큼 내게는 있다.
그 일이 스팀에서도 스팀 짱에서도 이루어 보고 싶은 것이며 이루어 낼 것이라 다짐하고 사는 별 볼 일 있는 작가가 되었다.

그런 내게 어제는 친구가 너 이름 한자가 어떻게 되니 한다.
하여 가르쳐 주었더니 아래와 같은 것을 보내왔다.

마음에 들면 보내 주겠다는데 솔직히 관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글이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이런 건 택배나 우편으로 보내는 게 아니란 생각이다.
정말 소중한 것이기에 직접 들고 와서 전해주는 것이란 생각이다.
아님 내가 가던지...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애들 봐주는 직업이니 지금은 얼씬도 못하게 한다.
그럼 결정이 난 것이다.
매번 온다 온다 하면서 안 오는 사람이 보호자 대동해서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 답장이 없냐는 물음에 사실적인 답변을 했다.

어제 오후 늦게 아내랑 이 작가하고 조종천에서 피라미랑 나 잡아 봐라 놀이를 한바탕 하고 들어와 매운탕 끓여주기에 먹고는 그냥 나가떨어졌다.

그랬더니 아침에 보니 사달이 난 것이다.
휴대폰이 고장이라며 한 달 정도 소통이 안되던 인도네시아에 후사이니 도 연락을 해왔는데 답장을 못했고 친구에게서도 마음에 안 들어 답장이 없냐는데 특유의 자신감이 어디 갔기에 이러나 싶다.

살다 보니 이런 선물도 받는다,
고맙고 삶의 의욕이 생기는 선물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간사함이 없냐 하는 물음에는 나는 단연코 그렇다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나의 젊음에서는 뭔 말씀이셔 당연히 난 내 생각에 간사함은 없어했다.

그런데 나이가 이쯤 되고 보니 자신이 없다.
남을 진정 돕는다 해도 그 속에는 작으나마 나의 욕심이 없다고 말 못 하는 인간이 되어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여하튼 그렇게 1 내지 2 크리크 내 양심의 기준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하여 친구가 저 작품을 가지고 온다면 내 책상 앞에다 걸어 놓고 늘 마음 정화에 노력하리다.
이 글을 쓰기 전에 후사이니에게 간단하게 안부를 전했더니 연실 카톡을 보내온다.
이제 이 글은 여기서 줄이고 카톡 확인을 해야겠다.

2022/06/19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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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님~~~
삶이 참 괜찮은 맛이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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