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12(금)역사단편95-평양패수고(26) 마무리

풀이는 <DAUM, 네이버 사전, 위키등>
본문과 주석은 <독립기념관 제공>

현재 한국사1 삼국고려.JPG
<우리가 배운 역사지도>

대동부.JPG
<중국측 역사책이 알려주는 고구려의 전성기: 우측부터 북경, 대동부, 태원>

평양패수고의 결론부분을 읽고 마무리 한다.

다만 樂浪 遷徙(낙랑 천사)에 對하여
一種 滋味(자미)를 感(감)할 일이 있으니,
樂浪이 遼西(요서)로 遷(천)할 때는
朝鮮의 勢力이 遼東에 미친 뒤며
樂浪이 上谷으로 遷(천)할 때는
朝鮮의 勢力이 遼西(요서)에 미친 뒤니,
樂浪 位置의 進退(진퇴)로
朝鮮 勢力의 消長(소장)을 卜(복)할 것이다.
<출처: 평양패수고>

遷徙(천사): 변하여 옮기는 것
滋味(자미): 좋은 맛
感(감): 느끼다
遷(천); 옮기다
消長(소장): 쇠퇴와 발전
卜(복): 헤아리다

(해석하면)

다만 낙랑이 변하고 옮겨다닌 역사에 대하여
흥미로운 부분을 느낄수 있으니,
낙랑(樂浪)이 요서(遼西)로 옮길 때는
조선의 세력이 요동에 미친 뒤며
낙랑(樂浪)이 상곡(上谷)으로 옮기던 때는
조선의 세력이 요서(遼西)에 미친 뒤니,
<낙랑> 위치의 전진과 후퇴로
조선 세력의 쇠퇴와 발전을 헤아리게 될 것이다.
<출처: 평양패수고>

朝鮮古蹟圖本(조선고적도본)에
多數히 樂浪과 帶方의 墳(분)들을 記載(기재)하였으나,
그러나 樂浪郡 第八 大同江面(대동강면)의 古墳(고적)을
漢墳(한분)이라 함은
銅鏡(동경)이나 金口(금구) 等에 박힌 「王」字를
帝王의 「王」으로 풀지 않고
漢人 王氏의 「王」으로 풀며
<출처: 평양패수고>

朝鮮古蹟圖本(조선고적도본):
1909년 일본 사학자 關野貞(세키노)가 시작하여,
1935년에 완성한 한국 고적들에 대한 사진자료집

墳(분): 무덤
銅鏡(동경): 동으로 만든 거울
金口(금구): 금으로 된 종

(해석하면)

조선고적도본(朝鮮古蹟圖本)에
다수의 낙랑과 대방의 무덤들을 記載(기재)하였으나,
낙랑군 제8 대동강인근의 옛 무덤을
<한나라사람의 무덤>이라 함은
구리거울 이나 금종 등에 박힌 「왕(王)」자를
제왕의 「왕」으로 풀지 않고
한나라사람 왕씨의 「왕」으로 해석하며
<출처: 평양패수고>

第六·第五 江東의 古陵(고릉)은
傳說(전설)에 皇帝塚(황제총)이라 하고
『輿地勝覽여지승람』에는 이를 東川王陵(동천왕릉)이라 하였거늘,
이제 漢 王陵(한 왕릉)이란 全無의 別名을 주며
黏蟬碑(점제비)는
그 初頭(초두)의 缺面(결면)에 問標(문표)를 질러
漢 光和 元年이라 하니,
<출처: 평양패수고>

塚(총): 무덤
缺面(결면):없어진 부분
問標(문표): 의문에 대한 표지
광화(光和,178~184): 후한 영제(靈帝)의 세 번째 연호
門外漢(문외한): 어떤 영역에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
輕論(경론): 경솔하게 거론함
大槪(대개): 기본줄거리, 대부분
他種(타종): 다른 종류

(해석하면)

제6·제5호 대동강 동쪽에 있는 옛릉은
전하는 말에 <황제총>이라 하고
『여지승람』에는 이를 <동천왕릉>이라 하였거늘,
이제 <한나라 왕릉>이라는 전례업는 별명을 주며
黏蟬碑(점제비)는
그 첫머리의 없어진 부분에대한 의문들에 대해 잘라 말하길
한 광화(光和) 원년(元年)이라 하니,
<출처: 평양패수고>

우리 같은 考古學(고고학)의 門外漢(문외한)이
어찌 그 是非를 輕論(경론)하리오마는,
그러나 그 圖說(도설)의 大槪(대개)를 보건대
어떤 말은 學者의 見地에서 나왔다는 이보다
政治上 他種(타종)의 作用이 적지 않은 듯하다.
<출처: 평양패수고>

(해석하면)

우리 같은 고고학의 문외한이
어찌 그 옳고 그름을 경솔하게 거론 하리오마는,
그 <조선고적도본의 해설>의 내용들을 보건대
어떤 말은 학자의 견지에서 나왔다기보다
정치적인 다른 종류의 작용이 적지 않은 듯하다.
<출처: 평양패수고>

帶方太守 漁陽 張撫夷(대방태수 어양 장무이)의 墓(묘)는
그 碑文(비문)의 「漁陽어양」 二字를 據(거)하여
中國 北京人의 出仕(출사)한 者의 墓(묘)라 하였으나
百濟 中葉(백제중엽)부터
百濟人이 中國을 模倣(모방)하여 지은 地名이 많으니,
廣陽·城陽 等(광양-성양등)이 是(시)니 漁陽도 이와 같아
百濟 內地의 地名이 아닌지 모르며,
蓋鹵王(개로왕) 때 帶方太守 司馬張茂(사마장무)란 者가 있으니,
張氏는 百濟의 世家(세가)로
帶方太守의 職(직)을 世襲(세습)하던 姓氏인지도 모르니,
遽然(거연)히 北京人이라 斷言(단언)함은 너무 急躁(급조)한 일인가 한다.
<출처: 평양패수고>

出仕(출사): 벼슬하여 관직에 나감
蓋鹵王(개로왕): 백제21대 왕(?~475). 이름은 경사(慶司)
世家(세가): 여러 대를 이어 나라의 중요(重要)한 지위(地位)에 있어
특권(特權)을 누리거나 세록(世祿)을 받는 집안.
遽然(거연): 갑자기
急躁(급조): 급하게 서두르다

(해석하면)

[대방태수 어양 장무이]의 무덤은
그 비문에 있는 「漁陽어양」 두글자에 근거하여
중국 북경사람인 관리의 무덤이라 하였으나
백제중엽부터
백제인이 중국을 모방하여 지은 지명이 많은데,
광양-성양등이 그런 것들이니
어양(漁陽)도 이와 같아
백제 내지의 지명인지도 모르겠고,<출처: 평양패수고>

개로왕때 대방태수 司馬張茂(사마장무)라는 사람이 있고,
장씨는 백제의 유력집안으로
대방태수의 직책을 세습하던 성씨인지도 모르니,
갑자기 북경사람이라 斷言(단언)함은
너무 급하게 서두르는 행동인거 같다.
<출처: 평양패수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유물을 왜곡해석하던
식민지시대 조선사편수회등의 행태를 지적하는 부분이다.
당시에 일본인들이 조선의 역사학자들과 야합하여
만들어놓은 것이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역사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를 읽으며 절감하는 것이 있다.
이재명이니 윤석렬이니 조국이니
이런 하루살이 같은 인물들이 중요한게 아니다.
그런 날파리들의 날개짓에 같이 흔들리며
더 근본적인 것을 잊고 있는
현 시기의 거주민들과 그 앞날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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