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28(금)역사단편81-평양패수고(13) 백제와 낙랑1

단어풀이는 <DAUM, 네이버 사전>
본문은 <독립기념관 제공>을 사용한다.
본문해석에 참고한 여러 자료는 나열하지 않는다.

오늘부터는 백제와 낙랑이 관련된 기사들을 살펴본다.

丙. 百濟 中葉(중엽)의 關係한 樂浪

平壤, 樂浪의 區別이 前述(전술)한 바와 같으나,
이에 百濟史를 讀(독)함에
「古爾王十三年에 (고이왕 13년)
幽州刺史毌丘儉 與樂浪太守劉茂(유주자사관구검 여낙랑태수유무)
朔(帶의 誤)方太守王(弓의 誤)遵<삭(대의 오)방태수왕(궁)의 오>
伐高句麗(벌고구려)
王乘虛襲樂浪邊民(왕승허급낙랑변민)
茂聞之怒王恐見侵討還其民口:무문지노왕공견침토환기민구」라 하고,
<출처:평양패수고>

乘虛(승허): 틈을 이용하다
討(토): 공격하다
茂(무): 낙랑태수인 劉茂(유무)를 말한다.

(해석하면)

(병). 백제 중엽에 관련된 낙랑

평양과 낙랑의 구별이 이미 서술한 바와 같으나,
이에 백제역사를 읽을때
「 고이왕 13년(246년),
유주자사 관구검이
낙랑태수 유무, 대방태수 궁준과 함께 고구려를 쳤다.
왕은 그 빈틈을 타서 낙랑의 변경지방 주민들을 습격하여 잡아왔다.
유무(=낙랑태수)가 그 소식을 듣고 화를 내자
왕은 그들로부터 침공을 당할까봐 염려하여
사람들을 돌려보냈다」라 하고

낙랑이 고구려를 공격할때
고이왕이 낙랑을 공격했다는 내용이다.

단대가 말하는 앞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자.

이때 고구려의 왕이 동천왕이었다.
관구검의 침략으로 '환도'성이 함락하고 도망을 쳤다가
반격을했고
장수를 잃은 위나라 군대가 낙랑에서 또는 낙랑으로
도망쳤다는 내용이 있었다.

<삼국사기 권17 동천왕조>
16년(242)에 왕이 장수를 보내
요동 서안평(西安平)을 습격하여 격파하였다…
20년(246) 왕이 군사를 세 길로 나누어 빠르게 이들을 공격하니,
위군이 어지러워져서 싸우지 못하고
드디어 낙랑(樂浪)에서 퇴각하였다.

관련포스팅은
https://steemit.com/hive-143843/@neojew/2024-6-25-78-10-2

계속 읽어보자.

汾西王 七年(분서왕 7년)에
「春二月 潛師襲取樂浪西縣(춘2월 잠사습취낙랑서현)
冬十月 王爲樂浪太守所遣刺客賊害死
(동10월 왕위낙랑태수소견자객적해사」라 하니,
여기에 四次나 보인 「樂浪」의 名詞를
歷來(역래)의 史家들이 의심없이
今平壤(금평양)을 가리킨 것으로 알아왔으나,
그러나 이때는 樂浪國(낙랑국)이 亡(망)한 지 已久(이구)하니
南 「펴라」에
어찌 「樂浪」이란 假字(가자)로 그 稱號(칭호)를 썼을까?
<출처: 평양패수고>

遣(견): 보내다
已久(이구): 이미 오래됨

(해석하면)

분서왕 7년(304년),
“봄 2월에 은밀하게군사를 출동시켜
낙랑의 서쪽현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겨울 10월,
왕은 낙랑태수가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되었다.」라 하니
여기에 네차례나 보이는 ‘낙랑’의 이름들을
역대의 사가들은 의심하지 않고,
현재의 평양을 말하는 것이라고 알아왔으나,
이때는 <낙랑국>이 망한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남쪽의 펴라(=현재의 평양)’에
어찌 낙랑이라는 ‘빌린글자’로 그 칭호를 썼겠는가.

교과서요동.JPG
<교과서의 고구려-백제>

해당 기사를 보면 의문이 생긴다.
평양에 있던 '낙랑(국)'은
"20년(37) 왕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참조:삼국사기권14, 고구려본기2, 대무신왕>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멸망후 200년이 지난 시대의 이야기인
이 기록속의 '낙랑'은
어디서 나타났을까?
또, 어디에 있었기에
백제가 낙랑의 서쪽 지방을 공격할 수 있었을까?

이것은 해결해야할 과제가 된다.

대개 『三國史記』 가운데
本記와 列傳(열전)의 가장 殘缺(잔결)한 者는 百濟史라.
居柒夫傳(거칠부전)의
「百濟人先功破平壤(백제인선공파평양)」의 語에 因하여
그 年兆를 따지면 聖王 二十九年에
百濟가 一次 高句麗의 首都(수도)를 陷落(함락)한 大事가 있거늘,
本記에 이를 漏落(누락)하며
文武本紀(문무본기)·『唐書』·『日本書記』 等을 對照(대조)하면
扶餘 福信(부여 복신)의 隆才(륭재)와 戰略(전략)과 忠節(충절)은
古今에 倫比(륜비)가 없는 百濟 末日의 巨人이거늘,
列傳(열전)에 이같은 巨人을 遺棄(유기)하였으며,
<출처: 평양패수고>

殘缺(잔결): 빼먹어서 모자람
陷落(함락): 공격하여 점령함
年兆(연조):시작된 해
隆才(륭재): 큰 재주
倫比(륜비): 필적하다.동등하다
遺棄(유기): 내다버림, 방치함

(해석하면)
대개
『삼국사기』 가운데
본기와 열전중 가장 빠트리고 모자란 곳은 백제역사라.
거칠부전의,
「백제가 먼저 평양을 공격해서 깨트렸다」의 기록에 의하여
그 시작한 해를 따지면 성왕 29년에
백제가 1차로 고구려의 수도를 함락한 큰 사건이 있거늘,
본기에 이를 누락하며
문무본기·『당서』·『일본서기』 등을 대조하면
扶餘 福信(부여 복신)의 큰 재주와 전략과 충절은
지금까지에 필적할바가 없는 백제 마지막의 거인이거늘,
列傳(열전)에 이같은 뛰어난 위인을 내다버렸다.

단재는 일본서기도 참고자료로 사용한다.
우리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대조를 하기위해 사용할뿐이다.

이병도이래 현재 국내의 주류역사학자들은 일본서기를
'성경'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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