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100엔의 사랑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years ago

이치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은 채 게임만 하고 빈둥빈둥 노는 너를 보며 나를 떠올렸어. 내 밭에는 무기력의 씨앗이 곳곳에 뿌려져 있어서 나태라는 비료를 거름삼는 순간 무성한 무기력 정글이 완성되곤 해. 하늘을 뚫을 듯 솟은 무기력 정글에서는 무기력을 어찌 정리할 바를 몰라 그렇게 내버려두곤 하지. 그러다간 다시 각성하고, 하지만 또 게으름은 찾아들고. 너는 동생과 머리 끄댕이 잡고 싸우다 엉겹결에 독립을 하게 되었지. 어쩌면 인간이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큰 추동력은 쫓김을 당하거나, 궁지에 몰렸을 때가 아닌가 싶어. 방구석에 앉아 등이나 벅벅 긁을 것 같은 네가 단골인 100엔 샵에서 파트타임잡을 시작하는 했을 때는 마치 어린아이를 물가에 내놓은듯 조마조마 했지. 네가 엉뚱한 말을 하지는 않을까, 세상에 적응하지 못할까. 나도 모르게 너를 지켜줘야 하거나 안쓰러운 존재라고 생각했나봐. 절대 그렇지 않은데.

솔직히 네가 만난 그 남자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 근데 이것도 오지랍인거겠지? 그 남자에게 고마운 건 네게 복싱이라는 세계를 알려준 것. 나는 늘 사람들이 모두 코웃음 치거나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꿈'을 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었어. 어렸을 때부터 '꿈'이 있는 내게 꿈이 있다는 것 자체를 부러워 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는데 그들은 단지 꿈의 존재에 대해 부러움을 말했을 뿐, 꿈을 꾸는 사람이 감당할 현실이나 자괴감 같은 걸 전혀 고려하지도 배려하지도 않았거든. 그래서 불가능한 꿈, 말도 안되는 꿈을 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 더 극단적이나마 꿈을 꾸는 사람이 감당할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나봐. 그래서 리코더리스트를 꿈꾸는 여자와 앨리스 스프링스를 꿈꾸는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리코더와 앨리스를 대학교 때 썼었어.

미친듯이 싸우다가도 토닥토닥 하는 게 좋았다고 복싱을 시작한 너는 사람들의 회의적인 반응에도 입단 테스트도 하고 시합에 까지 나가지. 네가 이렇게 강해지고 세상에 맞서기 위해서는 끔찍하게 무기력한 시절도 아마, 필요했을 거야. 그래, 우리의 삶은 100엔 샵의 물건 같을지도 몰라. 저렴하고, 고장도 잘나지만 의외로 가치있고 유용한. 100엔샵의 어떤 물건이 되는지는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너의 성장일기는 참 쓰라리면서도 감동적이어서 마지막에는 울컥 울어버렸네. 앞으로 너도 나도 어떤 삶을 살든 우리, 불가능한 것을 꿈꾸자. 계속. 아파도, 살자. 계속

ost를 듣고 싶다면
https://steemit.com/hive-102798/@zenzen25/music-100-y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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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울리면 어쩌죠 젠젠님 ㅠ너무 좋다 이치코 저도 만나러 갈래요.

 3 years ago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급마무리....이치코 꼭 만나세요. 제가 볼 때 네이버 시리즈 영화에서 무료였는데 다시 유료가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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