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인도 뭄바이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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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고아에서 여권을 잃어버린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임시여권을 발급 받아야 했다. 어차피 사흘 뒤가 출국이었고 돈도 50달러, 100달러 정도 밖에 없었지만 여권을 잃어버렸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실로 컸다. 이름표 없이, 주소 없이 모르는 거리에 버려진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바로 뭄바이로 가는 야간 버스를 탔다. 이층 침대가 있는 버스는 유독 더 좁고 냄새나고 찝찝했다. 아침에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바로 택시를 잡았다. 한국 영사관에서 빨리 일을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적당한 가격에 쇼부를 치고는 영사관 근처 사진관에 도착했는데 아저씨가 말을 바꾼다.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렀다. 가까스로 잡고있던 정신줄을 그 때 놨다.

"난, 여권이랑 돈이랑 다 잃어버렸다고! 시발, 난 돈이 없다고!!!!!!! 그 돈 못내!!!!!!!!!!! 흐어어어엉"

울고불고 신경질을 부리고 나니 아저씨가 다른 제안을 한다. 그럼 네가 오늘 여권을 만들기 위해 가야할 곳들을 모두 데려다주겠다고. 내 패악질이 먹힌 건지 가격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무엇보다 오늘 이런 정신 상태로는 사기를 치려고 달겨드는 맹수들과 감정 소모를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진을 찍고 도착한 영사관은 다행히도 점심 시간 30분 전이었다.

"임시 여권 발급하러 왔어요."
"지금, 점심 먹으러 나갈건데 점심시간 끝나고 오세요."
"그러면 외국인 등록사무소에서 시간이 아슬아슬한데요. 저 내일 비행기 타야해요."
"괜찮을 거예요. 인도에서 안되는 게 뭐가 있나요."

무책임한 말을 하고 영사관 직원은 떠났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점심을 먹으며 시간을 떼웠다. 영사관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외국인 등록사무소에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미 접수시간이 끝나 있었다. 나는 있는 애원 없는 애원을 다 하면서 제발 접수해달라고 간곡하게 빌었는데 먹힐리가. 무뚝뚝한 표정의 직원은 '노노'만을 외쳤다. 나는 한국 영사관 직원의 말에 분노를 느끼는 동시에 나는 내가 영어를 이렇게 잘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울면서 '와 인간이 간절하면 영어도 방언하듯 줄줄 나오는 구나.'생각을 했다. 내가 하도 서럽게 울자 외국인 등록사무소에 온 흑인 오빠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히도 비행기는 마일리지로 산 거라 추가로 돈을 지불하지 않고 일정을 미룰 수 있었고 분노와 간곡의 눈물을 몇 차례 흘린 뒤 안정을 찾은 나는 그 저녁에 뭄바이 시내를 여유로이 돌아다니며 이런 순간을 필름으로 남길 수 있었다. 택시 아저씨는 알 수 없게 맥주까지 사와서 이동하는 동안 마시라고 하더니 종국에는 같이 저녁을 먹자는 둥 수작을 부렸다... 내 이럴줄 알았다,,,순수한 호의는 있을 수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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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영어를 이렇게 잘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나 영어 잘했네?!! 이렇게 사람이 급하면 어디선가 초인적인 능력이 생긴다니까요. 잘 해결되서 다행인데 읽으면서 꽤나 흥분했어요. 젠젠님 글은 하나같이 너무 재밌어😎

 3 years ago 

저 진짜 진심으로 놀랐어요! 늘 머릿속으로 영어 시뮬레이션하고 문장 길게도 말 안하는 편인데 진짜 와다다다다 나오길래.. 여행 중 여권 2번 잃어버렸고 둘 다 인도였는데 진짜 세상에서 제일 진빠지는 일이에요 ㅠㅜㅠㅜ

막판에 또 다른 반전이 있나요? ㅠㅠ

 3 years ago 

더이상의 반전은 없습니다. 뭔 개소리야...하고 택시 아저씨를 무시하고 동네를 탐험했죠. 아 그러고보니 이 날 캡슐호텔에서 묵은 게 굉장히 또 괴이했는데.....잊고 있다 생각났어요....

 3 years ago 

"시발, 아이 돈 해브 머니!!!!!!!!!!!" 라고 하셨나요?

오... 이거 젠젠님이 뭐라 답 할 지 궁금해서 북마크 해놓고 갑니다.

 3 years ago 

앜ㅋㅋㅋ 사실 명확하지는 않지만 여튼 셋 중 하나입니다...

 3 years ago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씨발이거나, 퍽킹이거나 왓더퍽, 이런 욕 중 하나는 했을텐데...기억이 또렷하지는 않습니다....

 3 years ago 

아니 너무 웃겨요 ㅋㅋ
영사관 놈 열받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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