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악에 대하여
꽤 오래전부터 쓰려고 했던 소재의 글이 있다. '노인의 악'에 대해서인데 거의 10년 전에 구상만 해놓고 버려두고 있다 작년에서야 다시 꺼내어 끄적이고 있다. 이 소재의 영감을 준 것이 <시계태엽오렌지> 소설인데, 내용이 가물가물하여 영화를 봐봤다. 어쩜 이렇게 불쾌하고 충격적으로 영상을 잘 뽑아냈는지. 온갖 징그럽고 폭력적인 영화에도 끄떡없는 내가 이맛살을 몇 번이나 찌푸렸다.
선이란 내면에서 오는거야. 선은 선택하는 거야. 인간이 선택을 못하면 곧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거지.
코로바 우유바에서 마약 섞인 우유를 먹으며 친구들과 폭력과 강간을 도둑질을 일삼는 15살 알렉산더는 살인을 저질러 감옥에 가게 된다. 그리고 그는 폭력의 환희를 죽음의 공포로 바꾸게 하는 교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눈을 감을 수 없고게기계로 눈을 벌리고 폭력과 섹스로 가득찬 영상을 내리보며 메슥거림과 참을 수 없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모습에 교화 프로그램은 성공이란 평가를 받고 그는 사회로 복귀한다.
영화도 소설도 악에 대한 성찰보다는 정치 세력에 의해 그들의 이념에 의해 억제당한 자유의지,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주로 다룬다. 인간이 선을 선택하듯 악도 선택한다는 기본 전제가 그 안에는 깔려있다. 만약 그 악이라는 것이 내면으로 극복할 수 있는게 아니라 근원적인 뿌리깊은 악이라면, 그래서 그 악인의 자유의지가 악 외에 다른 선택이 없는거라면 이 프로그램은 유효하다 볼 수 있을까? 하기야, 인간이 가진 악을 수치화하고 갱생 가능성을 확률로 따지지 않는 이상 이를 가려낼 수는 없을 거다.
소설에서는 다시 자유선택의 의지를 가진 알렉스가 이젠 철들어야 할 때며 내가 범죄를 저지른 건 젊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영화에서는 매스컴이 정부의 범죄자 교화 프로그램은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고 추락한 알렉스를 전부 정책의 희생양이라고 밝히며 끝난다. 극악무도한 범죄를 무자비하게 저질러 놓고 어렸기 때문이라고 하는 소설의 결말은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사람을 죽여놓고도 처벌을 받지 않기에 법정에서 뻔뻔하게 실실 쪼개는 촉법소년들이 '내가 범죄를 저지른건 어려서야, 잘 몰라서야.'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선상으로 느껴질 정도.
내가 '노인의 악'에 대하여 영감을 얻은 부분은 4명의 패거리가 한 할아버지를 죽을 때 까지 공격하고, 알렌산더가 교화 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다시 만나던 장면이다.
한떼거리의 더럽고 냄새나는 노인들이 힘없는 주먹으로 뭇매를 때린다. 늙음이 젊음에게 앙갚음이라도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