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마르세유의 불한당들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4 years ago (edited)

P1012061.jpg

왜 마르세유였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오후가 넘어 갑작스럽게 아비뇽에서 마르세유로 가는 기차를 탔다. 평범하게 굴러가는 여행 속에서 자극이 필요했다. 그 자극이 이렇게까지 매운맛일줄 알았더라면 마르세유 가는 기차를 타지 않았을거다. 기차까진 좋았다.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할 것 같은 지적인 남자를 훔쳐보며 여행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졌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즉흥적으로 마르세유행을 정한 탓에 역에서 내릴 때는 이미 땅거미가 져 푸르스름한 초저녁이었다는 거다. 마르세유에서 잘 생각도 없었으니 잠깐 놀다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항구지역인 마르세유는 여행객도 거의 없었고 삭막했다. 겁없던 우리는 별일있겠냐 싶어 용감하게 역을 나섰다. 거리를 걷다 마트에 들러 와인을 사고 나와 길와인도 했다. 으슥한 거리를 걷다 보니 고작 중학생 정도 되는 애들이 몰려와 우리를 조롱했다.

"마담, 마담, 마담"

결혼도 안한 20대 초반의 마드모아젤들에게 마담거리는 애새끼들 꿀밤을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두려운 마음을 감추고 애써 태연한 얼굴로 그들 사이를 지나갔을 뿐이다. 그들과 엮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후다닥 맥도날드로 들어갔다. 밝은 빛 아래 있으니 안심이 됐다. 겸사겸사 주린 배도 채웠다. 1분 1초도 마르세유에 있고 싶지 않아 우리는 기차역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빠르게 발을 움직이던 중 어떤 남자가 내 크로스백의 본체를 낚아 채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나는 바닥에 쓰려져 속절없이 끌려갔다. 그러다 이내 그의 힘과 내 무게를 견디지 못한 크로스백의 끈이 끊어졌고 그는 내 가방을 온전히 소유한 채 쏜살같이 사라졌다. 알고보니 맥도날드에서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던 2인조의 소행이었다. 가방에는 카메라와 시집, 역사책 한 권이 있었다. 서로에게 낭패인 일이다. 하필이면 돈 될거 없는 가방은 왜 훔치냔 말이다. 우리는 경찰서에 신고해 경찰차를 타고 주변을 살펴봤지만 2인조 도둑도 내 가방도 찾을 수 없었다. 정신이 없어 아픈줄도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가방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끈을 잡은 탓에 손가락이 깊이 패여있었다. 끔찍한 반나절이었다.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3
JST 0.100
BTC 65492.51
ETH 1899.29
USDT 1.00
SBD 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