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비행기안에서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4 years ago

창문도 열 수없는 꽉막힌 공간에서 열시간동안 마스크를 쓰고 있는 건 고역이다. 심지어 내 좌석은 중앙 세좌석 중에서도 중앙이다. 창문이 보이지도 않는다. 내 몸은 옴싹달싹 할 수 없이 한자리에 속박되어 있고 내 시야는 막혀있고 입도 틀어막혀 있다. 납치극의 인질이라도 된듯하다. 비록 내가 스스로 원해서 기꺼이 뛰어든 자진 납치극이겠지만. 긴 비행 중에 영화를 두개 봤는데 하나는 공교롭게도 인질이고 하나는 노작가의 크루즈 여행을 다룬 영화다. 인질을 보며 그들의 처지를 공감하고 크루즈 여행을 보며 이동이 견디고 버텨야할 고난이 아닌 기꺼이 즐기는 그 여행이 새삼 그리웠다. 유럽을 가고 인도를 가고 태국을 가고 많은 비행기를 타봤지만 이번 미국행은 그 어떤 비행과도 느낌이 사뭇 다르다. 코로나가 끝나지 않아 엄격한 기준과 산더미 같은 증명서류로 골머리 썩었던 것과는 별개로 설레면서 속이 메식거릴만큼의 불안함 같은 것이 도사려있다. 익히 보고 겪고 잘 알지만 실상 실체에 다가가본 적 없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그런 느낌. 낯선 친숙함이 메식거림의 정체인것 같다. 비유하자면 매번 자기 사진을 보여주고 자기 이야기를 재잘거리며 얼굴도 보지못한 채 평생을 이메일을 주고 받은, 누군가를 만나는 기분이랄까. 맘에 확 드는 비유는 아니다. 그 존재의 자기 증명을 굳이 눈여겨 보고 마음에 둔건 아니고 그저 벗어날 수 없는 영향력으로 내게 스며들어 있는 거니까. 여행을 준비하며 보부아르의 미국여행기를 발견하고는 사려고 했으나 절판이었다. 중고서점에서는 몇배나 되는 가격으로 팔고있어 사고싶지않았다. 그래서 관악도서관에서 빌려 침대 맡에 던져두고 있다가 여행에 동행을 시켰다. 뉴욕행 비행기에서의 그녀의 감정이 나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여행을 하는 와중에도 보부아르는 실존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을 한다. 내가 가져본적 없는 관점이다. 그래서 더 밑줄을 긋게된다. 보부아르의 표현에 의하면 그녀는 미국에 매일 사로잡혔고, 또 매일 실망했다. 나는 무엇에 사로잡히고 무엇에 실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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