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100] 우리의 파친코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4 years ago (edited)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우리는 추방당할 수 있으니까. 우리에게는 조국이 없어. 인생이란 저 아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니까, 그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지. 내 아들은 살아남아야 해.

인생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기대하는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생각했다.

역사의 거친 파도는 한 인간을, 한 가족을 망쳐버렸지만 슬픈 일이 지나가면 또 다른 좋은 날이 올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에 기대어 꿋꿋이 가족의 연대기는 쓰여진다. 작년에 m의 선물로 받은 <파친코>두꺼운 책 두권을 며칠만에 뚝딱 읽었다. 드라마는 보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라는 배경 아래, 선자의 불행은 차곡차곡 쌓이고 번번히 어찌할 도리가 없게 휩쓸린다. 허나 시대의 비극에 좌절하지 않고 버티고 삶을 살아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일제시대 때 일본에 잠시 있었다는 내 할머니의 이야기가 못내 궁금해졌다. 할머니 살아 생전 한번 여쭙지 않던 얘기다.

일제강점기, 어린 소녀였던 할머니는 어머니와 오빠와 부산에서 일본으로 배를 타고 건너간다. 먹고 살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일본에서 과자 기술을 배우는 것이었다. 센베와 박상 등을 만드는 기술을 익히고 그곳에서 할머니는 노가다를 하고 있던 할아버지를 만난다. '딱히 내 타입이 아니었다며' 할머니는 할아버지 좋아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만 눈이 맞았건 누가 엮어줬건 둘은 일본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 과자 기술을 배우고 다시 일본에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풍랑에 배가 심하게 일렁여 죽음을 코 앞까지 마주했던 넷은 무사히 부산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결혼은, 아버지가 기억하는 외삼촌의 재혼처럼 집에서 작게 올리고 모두가 음식을 나누어 먹는 수준이었을 거다. 선자의 결혼식도 그랬듯이. 할아버지는 외삼촌에게 박상을 만드는 기술을 엄격하게 배웠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박상을, 할머니의 오빠인 외삼촌은 센베 공장을 운영했다. 공장이라고 말은 하지만 좀 큰 가정집에서 엿을 끓이고 쌀알을 튀기고 만드는 게 전부였다. 공장은 운영하며 큰고모를 낳았을 때가 해방 전후 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해방 후 6.25가 일어 나기 전 그 사이 어드메에서 태어났다. 거주보다 과자 공장으로의 역할이 컸던 집은 그날 하루 만든 과자를 치우기 전까지는 잠을 자지도 못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아버지 고등학교께에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혼자 과자를 만들며 여섯 남매를 억척같이 키웠다.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다. 할머니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재일교포가 되었을지도 파친코의 일대기와 닮은 어떤 이야기를 더 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쩔 도리 없는 역사의 비극 안에서 제각기 흩뿌려진 개인의 역사가, 내 부모의 부모의 역사가, 이제는 파헤칠 수도 없이 묻혀진 역사가 못견디게 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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