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라다크의 미스테리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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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함께 읽으세요

2010년 여름, 여행객으로 북적이지만 조용한 작은 마을 레가 발칵 뒤집혔다. 홍수가 났기 때문이다. 라다크에 둥지를 틀고 카페를 운영한지 한 달 반만의 일이었다. 여행자 지역까지는 피해가 오지 않았지만 레 시내에서 10분 정도 떨어져있는 버스 정류장부터 초클람사르 마을까지는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으로 초토화되어 있었다. 이정도로 피해가 극심한대도 우리는 지난 밤의 폭우를 까맣게 몰랐다. 해발고도 3,500m 이상의 라다크는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과도 다름 없는 지역이다. 몇년에 한번씩 비가 오더라도 몇방울 내리다 마는 그런 정도였을 뿐이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비였지만 빗물은 나무 없는 민둥산의 흙을 모두 쓸고 내려왔고 건조한 사막 위에 지어진 흙집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나무도 없고 배수 시스템이 없는 곳에 내린 비라 피해는 더 막대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홍수 침수로 234명이 죽고 800명이 실종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레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태를 파악했다. 한순간에 발이 묶인 여행객들은 레를 빠져나가기 위해 각기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다. 저녁 쯤 되었을까? 짐가방을 머리에 이고 지고 손에 든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대거 움직이고 있었다.

"어디를 가는 거예요? 무슨 일이에요?"
"오늘도 비가 와서 레 시내 전체가 위험하대요. 레에서 가장 높은 곳인 산티 스투파로 가면 안전하다고 해서 가고 있어요."

별 생각없던 우리는 사람들의 초조한 얼굴과 다급한 발걸음에 우리도 모르게 피난 행렬에 합류했다. 산티스투파를 오르기 위해서는 까마득하게 높은 계단을 오르고, 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사람들의 공포에 전염되어 가까스로 오른 산티스투파의 모습은 전쟁통 그 자체였다. 침낭을 깔고 짜파티를 뜯고 있는 사람들, 자리를 잡고 기도하는 사람들, 겁에 질린 사람들, 그와중에도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뛰어 놀았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덜컥 정신을 차렸다. 만약에 오늘도 폭우가 쏟아진다면 이 곳도 그리 안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잘 곳도 마땅치 않으며 여기에 있으면 사람들의 긴장과 걱정에 전이되어 오히려 더 불안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내려와서 식당에서 담담하게 밥을 먹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게스트 하우스 주인인 양첸과 귤멧 역시 두 아들을 데리고 산티스투파에 갔고 여행자들 역시 함께 했는지 게스트하우스에는 우리 둘과 2층에 묵는 이스라엘 여행자 둘만 남아있었다. 충격적인 장면과 함께 감정 소비도 많이 했던 터라 굉장히 피곤했다. 늘 시끌벅적했던 게스트 하우스는 고요했다. 한 달 넘게 묵으면서 이런 정적은 처음이라 기분이 묘했다. 밖에 비가 부슬부슬왔다. 고된 하루를 끝낸 우리는 서서히 잠이 들었다. 우리 방은 게스트 하우스의 1층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창문이 있는 벽에 침대 두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나는 오른쪽 침대를, j는 왼쪽 침대를 썼고 창문은 두개의 침대 위에 각각 있다. 인기척에 깊은 잠에서 살풋 빠져나왔는데 얼굴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았다. 그것은 손이었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온 손은 내 얼굴을 훑고 사라졌다.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일어난 이 일이 실제인건지 가위에 눌린건지 도통 분간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 창문을 보니 잠겨있지 않았다.

"어제, 누가 창문으로 손을 넣고 내 얼굴을 만진 것 같아."
"뭐라고 진짜야???"
"사실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 진짜인 거 같기도 하고 가위에 눌린 것 같기도 하고"
"그럼 꿈인 거 아냐? 근데 진짜라면 홍수때문에 혼란한 와중에 노린건가? 미쳤네.."

레 시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티스투파를 간 날, 1층에서 유일하게 집에 머물고 있던 우리를 표적으로 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다음 날은 비로 인한 피해가 없었고 사람들은 모두 제 집을 찾아 들어가 다시 일상을 복구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낮에는 카페 문을 닫고 수해로 무너진 집이나 병원 등을 청소하고 밤에는 카페를 열어 고립된 한국인들의 사랑방으로 운영했다. 그리고 낯선 남자의 존재가 실제인지 아닌지 헷갈리다 못해 잊을 때 쯤 다시 그를 봤다. 우리 방의 창문은 얕고 밖으로 쉽게 드나들 수 있다. 문으로 밖을 나가려면 한참 돌아나가야하기에 창문으로 나가 담배를 피려고 창문 난간에 앉았을 때 집 외벽에 몸을 붙이고 숨어있던 남자를 발견 한 것이다.

"꺄악"

나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고 옆에 있던 j가 황급히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고 주위를 살펴봤지만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없는데?"
"방금까지 있었어. 우리 방을 엿보려고 한건가? 커튼치자. 커튼."
"근데, 왜 그 괴한은 너에게만 나타날까?"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정말 짠듯이 나에게만 나타났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인 양첸과 귤멧도 달려왔지만 그 사이 이미 사라진 뒤였다. 나는 분명 방금 어둠 속에서 숨어있던 남자를 봤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다. 첫 번째 사건은 현실 감각이 없어서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내 두 눈 똑똑히 봤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과 첫 번째의 비현실과 뒤엉켜 나는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폭우에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아닐까도 고민해봤다. 내가 봤지만 내가 본 것을 믿지 못하는 그 감각은 괴한의 존재보다 더 끔찍했다.

3번째, 3번째가 되서야 나는 그 괴한이 진짜임을 확인했다. 게스트하우스의 1층 손님은 모두 하나의 화장실을 나누어 썼다. 그 화장실은 양쪽으로 길쭉한 형태였는데 양변기와 샤워기 사이에 작은 창이 하나 있었다. 사람이 섰을 때 딱 얼굴만 보이는 정도 높이의 창이었다. 샤워를 하려고 화장실에 들어가 불을 켜고 채비를 하는데 그 작은 창 하나로 사람의 얼굴이 하나 떠올랐다. 표정없는 얼굴이었다. 나는 소리를 질렀고 j와 귤멧, 양첸이 달려나왔다. 괴한을 잡지는 못했지만 그가 도망가는 뒷모습을 우리는 모두 같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 일은 내가 라다크에서 겪었던 가장 소름끼치고 미스테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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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봤네요.
음악 틀고 보라고 해서, 음악 들으면서 봤는데...

갑자기 미스테리 공포 라니요. ㅋㅋ

 3 years ago 

미스테리함을 좀 더 못살린 게 아쉬워서 음악의 힘을 빌려보았습니다 ;-)

헉...소름끼쳐 너무 무서워요 왜 하필 젠젠님에게-
별일 없으셔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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