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이러려고 생일 파티를 한 건 아닌데..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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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공초에서 돌아온 다음 날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 당일에는 초모 어머니집인 촉람사르에서, 생일 다음날에는 빠루 게스트하우스에서 이틀의 생일 파티가 예정되어 있었다. 전날 생사의 고비를 넘으며 생일이고 뭐고 생일 파티고 뭐고 다 때려치자 소리쳤지만 스텔라도 피터님도 생각보다 상태가 호전되었기에 파티는 강행되었다. 이미 상할대로 상한 얼굴이지만 생일날 초췌해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내 전속 코디네이터 춘자의 지시에 따라 옷도 입고 화장도 했다. 분명 집을 나설 때는 꽤 화사해보였다.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약간의 작업을 하다가 싱게를 만나 촉람사르에 가는 길에 장을 봤다. 오늘의 쉐프 춘자는 사야할 목록과 요리할 순서를 머릿 속으로 정리하느라 정신없었고, 오늘의 바텐더인 나는 술과 음료를 잔뜩 사며 어떤 칵테일을 만들지 궁리했다. 촉람사르 집에 도착하자 마자 우리는 가장 먼저 요리를 시작했다. 오늘의 요리는 김밥, 비빔밥, 된장국, 미역국, 오이 무침이다. 밥도 두개, 국도 두개, 평범하지 않은 조합이다. 어제 차 안에서 혼절해있던 스텔라는 어느새 주방 보조가 되어 새끼 손톱보다 작은 마늘과 씨름을 했다. 나는 오이를 채 썰고, 초모는 당근을 채 썰었다. 라다크에서 먹을 식재료를 한국에서 사오는 건 내 몫이었는데 춘자의 비난에도 내가 포기하지 않은 두개가 있었으니 미역국과 도토리묵이었다. 미역국은 그렇다치고 장바구니에서 빼라는 만류에도 도토리묵을 굳이 사가지고 온건 채식주의자인 초모나 빨단이 좋아할 것 같다는 이유였다. 식재료 손질을 한 뒤 나는 본격 묵 만들기에 돌입했다. 봉지에 설명은 너무도 간단해서 사실 의아할 정도였다. 다른 요리를 방해하면서 까지 수없이 저어가며 만들고 굳히기 위해 큰 그릇에 넣어둔 묵은,,,사실 성공인지 실패인지도 모르겠다. 그 마지막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넷에 초모네 가족, 초모, 싱게, 린첸, 초모네 어머니, 아버지, 사촌, 집안 일을 봐주는 풀바가 집에 있었고 라다크에서 티베탄 의학을 배우고 있는 한국인 킴과 그의 교수인 티베트인 암치, 우리의 음악 선생 델렉, 최근에 친해진 빨래가 합류했다. 나는 보드카 토닉부터 시작해 쉴새없이 칵테일을 만들었고 춘자가 허리가 부러져라 만든 김밥과 킴이 만들어온 감자전을 안주삼아 모두 술을 들이켰다. 생일 파티는 좀 기묘했다. 살면서 친구네 집에서 생일 파티를 해본 적도 없으며 친구의 부모님까지 그 자리에 있었던 적은 없었다. 심지어 초모네 아버지는 몇년 전 사고로 거동을 할 수 없으셨기에 우리가 술을 퍼마시고 춤을 추는 와중에 방 한구석에 누워계셨다. 게다가 총 15명의 사람 중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거나 한두잔 정도만 마시는 사람도 많았고 절반은 춤을 추고 절반은 구경하는 사람이었다. 어색했던 분위기는 술과 춤으로 화기애애해졌고 명장면이 많이 배출되었다. 싱게와 스텔라의 열정 살사는 우리를 스페인으로 이동시켰고 피터님과 초모네 어머니의 브루스는 우리를 낙원 상가 2층, 성인 콜라텍으로 이동시켰다. 초모의 격렬한 춤사위와 트월킹, 봉춤을 추는 킴... 델렉과 함께 부르는 델와. 유쾌했고 코가 삐뚤어지게 퍼마셨다. 술에 취한 이들은 아무도 밥을 찾지 않았고 하나 둘 집으로 도망치거나 다른 방으로 기어들어가 잠을 청했고 방에 깨어있는 이는 나와 춘자, 스텔라, 피터님 뿐이었다. 춘자는 밤 1시 반에 미역국과 된장국과 계란 10개, 오이 무침을 들고와 우리에게 먹였다. 춘자가 끓여준 미역국에 큰 감동을 받은 나는 그지 같은 꼴로 세상 가장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미역국을 들이켰다. 정말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싱겁게 그지 없는 미역국이었으나 나는 맛있다고 말하고 춘자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피터님과 싱겁다고 투덜거렸다. 우리는 정말이지 집에 가고싶었지만 믿고 있던 초모는 사라졌고 싱게는 일어나지 않고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고, 택시는 부를 수 없었기에 촉람사르에서 잘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전날 먹지 못한 비빔밥을 먹고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전날의 숙취와 피곤함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지만 게스트하우스 식구들과 약속된 파티를 취소할 수 없었다. 아침 내내 자고 오후까지 자고나서 혼자 장을 보러 나갔다. "누구를 위한 생일 파티인가...이러려고 생일 파티를 한 건 아닌데..."두 손 가득 무거운 짐을 지고 들어오는 내내 후회하며 생각했다. 게스트하우스 쉐프의 도움을 받아 전날보다 수월하게 요리하긴 했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틀 내내 주방보조로 고군분투하는 스텔라도 안쓰러웠다. 춘자 로드에 아임인을 외쳤지 춘자 푸드에 아임인을 외친 건 아닐터인데....여튼 빠루 게스트하우스 가족과 그의 친구들, 사촌, 우리 옆방을 쓰지만 헬로우 외에 대화를 나눈 적 없는 브래드까지 합류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맛있었던 스쿠르부찬 창도 나눠 마셨다. 분명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생일의 끝자락에 우리는 페허였다. 라다크에서 생일 파티는 10년 정도는 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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