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중경삼림(1994)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5 years ago

중경삼림은 사랑 이야기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실연 당한 두 경찰의 이야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실연 당한 두 남자, 금성무와 양조위가 이제 막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다.

1부와 2부처럼, 전반부엔 금성무와 임청아, 후반부엔 양조위와 왕페이의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나오는데, 대개 사람들은 2부만 열심히 기억하고 있다. 1부가 재미없어서라기보다 2부가 워낙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1부에선 실연 당한 금성무가 혼자 주접을 떠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써서 임청하를 만나는 시간은 너무 짧고 평범하다. 그러나 2부에서도 똑같이 실연을 당한 남자이지만 양조위와 왕페이는 자주 만난다. 자주 스친다. 자주 엇갈린다. 그리고 자주 한 공간에 있다.

중경삼림은 그래서, ‘사랑과 시간에 대한 두 개의 고찰’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1부의 금성무는 유난히 유통기한이 5월 1일인 통조림에 집착하는데, 그날은 자신의 생일이라는 것과 그가 그날 이별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사랑에도 유통 기한이 있다.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대단히 바보 같은 소리를 했지만 사랑은 원래 변하는 것이다. 시작은 불 같았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차갑게 식는 게 인간의 사랑이다. 어디 사랑 뿐이랴. 관계가 그렇다. 쉽게 오고 쉽게 간다. ‘영원한 사랑’이란 말은 현실에는 없으니 만들어낸 말이다. 판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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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의 금성무는 그 쓰디쓴 현실을 이론적으로 너무 잘 간파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문제는 본인이 그 쓰디쓴 현실의 당사자라는 것이다. 이별의 아픔을 조깅으로 삭이는 그는 사실 충분히 아파할 시간을 못 버티는 인물이다. 그래서 이별을 스스로 공식화한 5월 1일 바에서 술을 마시다 가장 먼저 들어오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겠다는, 별 시답지 않은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들어온 여자가 마약 밀매상 임청하였고, 그는 자신의 결심을 밀어붙이기 위해 수작을 건다. 자연스럽지 못하다. 자연스럽지 못하니 뭐가 될 리 없다. 사랑이 끝나는 게 자기 의지와 상관 없는 것처럼 사랑이 시작되는 것도 의지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바보 같은 녀석은 이별도 5월 1일로 스스로 정하고, 새로운 사랑도 그날 시작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그가 가진 사랑에 대한 통찰 중 유일하게 옳은 건 사랑이라는 감정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 하나밖에 없다. 그거 하나 빼고는 슬퍼하는 방법도, 이별하는 방법도, 새로 사랑을 시작하는 방법도, 모든 게 틀렸다. 따라서 1부는 실연에 대처하는 남자의 방법으로서 전형적인 오답 노트다.

2부는 그래서 존재한다. 오답 노트를 봤으니 이제 정답을 보자고 감독 왕가위가 양조위와 왕페이의 이야기를 뒤에다 배치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서로 다른 배우가 연기했지만 이 영화의 남주인공은 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2부의 이야기가 먼저 있고, 1부가 나중에 있게 된 건지도. 그러니까 남주인공은 순찰경 시절 여승무원에게 실연을 당했다가 왕페이를 만나 설레는 사랑을 하게 되었고, 형사가 된 뒤 그녀에게 실연 당한다. 그리고 마약밀매상 임청하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런 순서라면 이 남자의 사랑 연대기는 정말 최악이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를 연대기적으로 풀 필요는 없다. 이 영화처럼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마지막에 배치하면 영화 전체가 아름다워지듯, 이야기는 시간을 재배치하는 예술이기도 하니까.

2부의 이야기는 이야기랄 것도 없이 장면 하나로 다 설명이 된다. 너무 유명한 장면이다.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흐르는 가운데 가게 한켠에 서서 블랙 커피를 마시는 양조위와, 그런 양조위를 턱을 괸 채 물끄러미 바라보는 왕페이가 정지화면처럼 서 있고, 거리의 사람들은 저속 촬영 기법에 의해 스스사삭 지나가는 장면이다. 이 대목에서 가게와 가게 바깥의 세상의 시간은 따로 흐른다. 정확하게 말해, 시간의 논리와 상관 없이 두 사람의 시간은 멈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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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 앞의 상황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양조위를 버리고 간 여승무원은 가게에 편지를 맡기며 그에게 전해달라 부탁했고, 왕페이는 그녀의 편지를 가게 직원들이 다 돌려 읽은 뒤에야 애써 전달하려고 했다. 하지만 양조위는 그 전달의 순간, 커피를 다 마신 뒤에 읽겠다고 무심히 말하고 구석으로 가 서 있었던 것이다.

왕페이는 양조위를 이미 말없이 사랑하고 있던 여자다. 그런 여자의 마음을 읽었을까? 그럴 리 없지. 그러나 양조위는 너무나 절묘하게 지금 막 사랑을 시작하려는 여인 앞에서 옛 연인의 편지를 무시해 버리는 행동을 했으니 이 복잡한 감정적 교차의 순간을 정지 화면처럼 연출하는 건 신의 한수였던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모든 순간에 시간은 의미를 상실한다.

다시 말해, 2부는 양조위가 아니라 왕페이의 이야기다. 그녀의 사랑 이야기다. 반대로, 1부는 금성무의 실연 이야기였던 것이고. 다시, 내가 이 글을 시작한 첫 문장을 복기하도록 하자. 영화의 두 남자는 실연을 당했고, 다시 사랑에 빠진다. 이런 설명은 틀렸다. 이렇게 주어를 남자로 하면 영화 ‘중경삼림’은 대단히 뻔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하여 이렇게 바꿔 말하자.

어떤 남자가 실연을 당했다.
어떤 여자가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사랑은 순환한다.
아파한 것 이상으로 감싸안는 사랑의 에너지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우주는 그렇게 삭막한 시공간이 아니다.
충분한 사랑을 준비해 놓고 당신이 그걸 찾아낼 순간을 기다린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다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우리가 ‘다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먼저 한 사랑은 언제나 틀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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