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나의 복수는 무위다.
복수는 유위有爲다. 행동으로 보여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품고 있는 것이다. 드러나진 것은 복수고, 드러나지 못한 채 가두어진 것은 '心'이다. 마음. 여자가 길고양이이게 그의 마음을 가져다 달라고 했을 때, 그 마음은 戀이었을까? 心이었을까? 번역기는 남자에게 '심장'이라고 말해주었다.
유위有爲는 반작용을 일으킨다. 복수는 밀려갔다 밀려오는 파도처럼 계속 주고받는다. 그것은 사랑이기도 하다. 상호작용, 그것으로 우리는 사랑을 주고받는다. 물론 바위를 부서뜨리는 파도의 힘은 사랑을 가장한 폭력도 주고받는다. 그리고 영리해진 사람은 그것을 이용해 파도를 탄다.
파도를 타는 사랑을 멈추고 파도에 잠기는 사랑을 선택할 순 없을까? 깊은 바다에 자신을 던져버리는 사랑을 할 순 없을까? 여자는 그것을 사랑으로 믿고 남자는 그것을 붕괴로 여겼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유위有爲의 자연 속에서, 가만히 그것을 받고 경험하는 무위無爲는 이미 무無가 아니다. 가르침들은 엄한 카르마를 쌓지 말라며 아무것도 하지 말라지만, 시속 11만km로 회전하는 지구 위에 서서 가만히 있는다고 가만히 있어지는 것이 아니다. 탄생, 그것 자체로 이미 거대한 카르마를 우주에, 지구에, 쏟아내는 일이다. 그러니 모든 행위를 거부하고 가부좌를 튼 채로 면벽수행을 한들, 너가 하지 않은 생산과 소비로 말미암아 이미 이 공동체, 이 나라, 이 가족에게 業을 잔뜩 쌓는 것이니, 수행자는 그 무위無爲의 업業을 무엇으로 감당할꼬.
밀려온 것을 거부한다고 거부되어질까? 이미 흠뻑 젖어버린 몸은 무엇으로 말리고 무엇으로 습기를 제거한단 말인가? '붕괴', 마음이 무너지고 깨어진 자신을 아니라고 외면한들 삶이 멀쩡하겠는가? 절벽에 서서, 언제 밀려 떨어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자리에 자신을 놓아두고선 '붕괴'는 무슨, 사랑을 해야지. 그리고 여자는 벼랑 끝에 선 남자를 꽉 안아주었다.
파도 속 해파리처럼 밀려오면 밀려오는 대로, 밀려가면 밀려가는 대로 흔들리고 헤엄치다 보면, 잠이 오는 것이다. 한숨도 자지 못한 멍한 정신으로 무슨 범인을 잡겠는가. 품위는 경찰의 미덕이 아니라 사랑하는 현대인의 자세이고 격식이다. 그리고 사랑은 현실에서도, 꿈속에서도 밀려오는 파도처럼 멈춰지지 않는 것. 여자는 남자의 마음에 남기 위해 '미결사건'으로 자신을 남기기로 했다.
그것은 나쁘다. 그렇게 나쁘다. 주기적으로 정리되는 전화번호 목록에 반드시 남는 이들은 '차단'해야 할 이들이다. 그들은 위험해서 전화를 피해야 하고, 그러므로 그들의 전화번호는 끝까지 남는다. 그러나 사랑했던 이들, 소중했던 이들은 점차 삭제되어간다. 소멸되어 간다. 그러니 남는 일은 나쁜 일이다. 그렇게 나쁜 이들이 끝까지 남는다. '미결관계'로. (파도타기에 필요한 관계들도 역시)
나의 과거와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이들은 더더욱 생생해지므로, 너의 과거와 기억에 생생하게 남기 위해 우리는 더욱 나빠진다. 고통에 중독된 우리의 무의식은 서로의 기억과 마음에 남기 위해, 서로의 몸을 할퀴고 상처를 낸다. 흔적을 남긴다. 그것은 사랑인가 복수인가.
그럼에도 나의 복수는 무위無爲다. 우주가 갈라졌으니, 나의 무위無爲는 너의 우주에 카르마를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나쁜 사랑은 유위有爲다. 너의 병존하는 우주에 흔적을 남기고, 마음을 점령하고는,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이번 생은 여기까지'
너는 잊지 못한다.
P.S.
박찬욱의 저 '고급짐'은 질투가 나지만,
탕웨이는 역시 '만추'.
남편의 승勝.
[위즈덤 레이스 + Movie100] 045. 헤어질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