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의 여름] 5. 20살엔 홀로 비행기를 탔다.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months ago

스물두 번의 여름

5. 20살엔 홀로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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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힘으로써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도에 대해서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이것은 내부의도다. 의도의 작용을 외부세계로 확대시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힘들다. 그것이 외부의도다.

외부의도는 원하는 바가 실현되는 인생트랙을 선택하려는 모든 시도에 관여한다.

외부의도란 마치 방사광처럼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외부 의도를 미리 준비하려고 애쓰는 것은 헛수고다. 모든 마법의식은 자신의 외부의도를 불러오기 위한 것이다.
-리얼리티 트랜서핑 2, 바딤 젤란드 37p, 41p, 42p





그 당시 의식적인 열망은 오로지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싶다는 바람뿐이었다. 가장 그럴듯한 핑계는 어학연수였다. 미래의 효율을 따지자면 유학 쪽이 유리했겠지만, 복잡한 서류나 높은 영어 점수 등등 까다로운 준비 절차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행기를 타본 일도 주변 어른들이 해외로 출장을 간다거나 여행을 간다고 들은 적도 없던 어린 시절, 기억 속 나는 세계 여행이나 다른 나라를 여행 가겠다는 꿈을 한 번도 꿔본 적이 없었다. 당시까지도 자신이 여행을 간다거나 해외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상상한 적 없었다.



첫 번째 외부 의도의 작용은 대학 시절 유학, 어학연수, 워킹 홀리데이가 매우 만연한 분위기가 흘렀다는 것이다.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부모님도 아무렇지 않게 당연히 한 번쯤 거쳐 가는 의례로 여겨 흔쾌히 내 결정을 지지해 주었다.

당시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처럼 느껴져서 그게 신기하단 사실을 몰랐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 이후 대학생이 되었으면 높은 확률로 이루어질 리 없었다.



두 번째 작용은 마침 그 시절 외사촌 언니가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중이었다는 점이다. 언니에게 호감은 있었지만, 우리는 나이 차이가 제법 났고 그다지 친밀하게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다. 엄마와 이모를 통해서 드문드문 소식을 간접적으로 주고받을 뿐이었고 어학연수에 가겠다고 결심할 때조차 나는 언니가 유학 중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별다른 고민 없이 언니가 다니던 학교로 어학연수를 떠나기로 했다. 부모님 입장에 보자면 믿을 만한 지인이 있다는 사실이 딸을 외국으로 보내도 괜찮을 거라는 심리적 안정의 발판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그 시기 이후로 나의 친척이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쨌든 그 신기한 작용 덕에 어학연수를 계획한 지 채 2달이 되지 않아 모든 수속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고, 미국에 가는 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마치 온 세상이 내가 어학연수에 가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등을 떠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쯤 되자 오히려 내 쪽에서 마음의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다고 갈 수 없다고 방어기제가 작동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두려워서 마구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중대한 변화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그 누구도 제동을 걸지 않자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은 것만 같다.



세 번째 외부 의도의 마법은 이모의 다정한 위로였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울먹이자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이모는 처음이고 두려워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걱정스러운 일은 생기지 않을 거고 좋은 일이 더 많이 생길 거라고 나를 위로하고 회유했다. 그 말에 울음을 그쳤고, 이모에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당시엔 그게 또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하다. 이모는 원래 친절하고 다정한 말투의 소유자이지만, 한 번도 내 인생에 조언을 해준 적이 없었고 나 역시 이모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마나 아빠, 사촌 언니도 아닌 이모라니! 그 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나는 다시 이모와 그런 유의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그 당시 이모의 말은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미래의 내가 건넨 다정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바로 진정하고 미국에 가는 건 기정사실이란 걸 받아들이게 되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러면서도 알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게 어학연수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뭘 원하는지는 거기에 가야만 알 수 있을 거라는 걸. 그 모든 걸 의식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다. 그저 내게 좋은 일이 될 거라는 것만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을 뿐이다.


역시 영어 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거나 표면적으로 타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결과물을 얻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내 세계를 다시 한번 부수고 시야를 확장해 기회를 만들었다. 나 역시 해외로 여행을 갈 수 있고, 원한다면 해외에서 살 수 있는 선택지가 있으며, 영어를 어설프게 구사해도 먹고살고 여행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조금 외로울 때도 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어떤 면에서 한국보다 쉬웠다. 어쩌면 한국보다는 외국에서의 삶이 내게 더 잘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든지 원한다면 어디든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을 거고 그 정도 용기와 적응력이 나에게 있다는 확신. 한국에서 형성한 답답한 선과 규칙을 벗어던지면 느껴지는 꽤 홀가분한 기분. 그건 처음 맛본 자유의 감각이었다.



마지막 외부 의도 작용은 브라질 여행이었다. 당시 환율은 금융위기로 인해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나름대로 최대한 돈을 아껴 쓰려고 노력했다. 뉴욕조차 여행하지 않은 처지에 갑자기 브라질 여행이라니! 너무 파격적이잖아. 사촌 언니의 권유와 설득이 아니었으면 절대로 브라질에 갔을 리 없다. 브라질에 관심도 없었고 거기 뭐가 있는지도 몰랐다.

언니는 나보단 나이가 있어서 언제 다시 이렇게 먼 곳까지 올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여기 온 김에 브라질에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같이 가자고 요청했다. 그 말은 내게도 일리가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내가 언제 브라질에 가겠나? 내가 조금 망설이자, 언니는 우리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을 도와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모님 입장에서도 언니와 추억도 쌓고 미국에 나와 있는 게 내게도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 보라고 내 등을 떠밀어 주셨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사촌 언니를 따라 브라질에 갔었다. 브라질 여행은 패키지여행이었는데 워낙 땅이 넓고 관광객이 많지 않아 우리끼리 비행기를 타고 도시를 이동했고, 지역마다 가이드를 만나 여행하는 소규모 데이투어의 느낌이 강했다. 당시 포르투갈어도 스페인어도 하나도 몰랐지만 시장을 걷고 길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다. 패키지여행에 관한 나의 편견이 깨졌고, 여행하며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이 좋았다. 브라질에서 홀로 결심했다. 나중에 남미에 다시 와야지. 배낭을 메고 육지로 자유 여행을 해야지. 그땐 스페인어를 좀 배워둘 거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느낌이 좋았고, 나와 잘 어울렸고, 여기 있으면 행복했다. 그래서 언젠가 꼭 다시 여행을 오겠다고 혼자 조용한 다짐을 했다.



다시 멕시코 땅을 밟는 건 약 6년 후의 일이다. 물론 그 다짐은 우선순위가 높지 않아서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뒤로 잊히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 잊고 산 지 오래었다. 그러나 한 번 발아한 씨앗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열망의 꽃을 피워낸다.

그 미국행은 나를 여러 곳으로 떠나게 했다. 네팔, 베트남, 멕시코. 그땐 그저 내가 어학연수에 가기를 선택한 거라고 여겼는데 외부 의도를 알게 된 후 잘 생각해 보니 그만큼 돛에 순풍이 분 듯 스무스하고 자연스럽게 온 우주의 도움을 받아 뜻이 이루어진 사례가 또 있었나 싶을 만큼 강렬한 사건이었다.

그 외부의도는 그 후로 6년이 지난 겨울, 여름처럼 태양의 빛이 강렬한 쿠바에서 운명적으로 알레와 만나게 한다.



운명의 길을 따르는 선택을 내리면 외부의도라는 순풍이 분다. 몸을, 삶을 맡기면 도착해야 할 그 자리에 바람은 나를 데려다주곤 했다. 다만 그 길이 어딘가로 향해 있는지 그 길이 내게 무얼 뜻하는지는 그 길을 모두 걸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특권이다. 처음 그 길에 들어섰을 때 어림짐작으로 유추하던 이유와 목적들은 뒤돌아보면 하나도 맞지 않을 때가 많아 웃음이 나왔다. 알 수 없을 것이란 걸 알게 된 후에도 인간적인 내 생각들은 언제나 예측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늘 운명을 믿었다면 가는 길이 조금 더 수월했을 것이나 믿을 수 없던 적이 많다. 의도를 알지 못한 채 믿음만으로 고통을 지나가는 건 너무 답답하고 막막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순풍은 나를 운명 쪽으로 이끌었다. 바람이 불 땐 웃을 일이 많았고 기쁨을 느꼈으니, 의미와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했다. 믿는 날에도 믿지 않는 날에도 계속 운명의 길을 걷던 셈이었다.


2023.11.27 by 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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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멀리 갔을 때 더 멀리 가봐야 하는 거 같아요. 저도 참 후회하는 선택이 몇 개 있네요.ㅎㅎ

 3 months ago 

그쵸 이왕이면 간 김에 더 멀리!
지금이라면 다르게 선택했을 그런 순간들이 있으시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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