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セピアレコード
오늘은 이 앨범을 들으면서 청계천을 달렸다. 비도 오고 배도 고팠지만 오늘은 꼭 나가야 한다고, 나가서 그동안 달리던 3km가 아닌 5km를 달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은 졸린 정신으로 반은 비장한 마음으로 몸을 꼼꼼히 풀었다. 그동안 애플 워치의 스포티파이 앱에는 이 앨범이 받아지고 있었다.
3km를 달릴 때는 보통 1.5km를 걸어가 1.5km를 뛰어온다. 그러니 5km를 달리는 게 아니라 2.5km를 달리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은 2.5km를 걸어가 2.5km를 뛰어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걷는 중에 빗방울이 거세졌던 기억이 난다. 비가 오는데도 평소보다 달리는 사람이 많아 놀란 기억도 드문드문 난다. 몽롱한 채로 2.5km 반환점에 도착했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몸을 돌려 걸어온 길을 뛰기 시작했다.
늘 뛰던 익숙한 길이 나오는 시점 즈음, 이제 남은 거리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된 후로는 노래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묘한 기분이었다. 비현실적인 목소리가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500m 정도 남았을 무렵, 그 목소리의 기운(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이 내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 따뜻함의 힘으로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먼 거리를 걷고 뛰었는데도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이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뛸 거리만큼을 걸어가야 하는 사람이라고. 시작부터 뛰어가 뛰어 돌아오면 되지 않겠냐고 누구는 말하겠지만, 내게 달리기는 오로지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비효율적이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5km를 달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종로 타워가 보이는 큰 교차로에 도착했을 때 이 앨범의 보너스 트랙이 나오고 있었다. 그 보너스 트랙을 들으며 마지막 목표인 마라톤 완주를 상상해보았다.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않고, 다음에 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한 방향으로만 나아갈 그날. 나는 그날을 기대하며 아주 느리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