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1 - 웨스 몽고메리의 옥타브 주법은 뭘까
7 거대한 메콩 강가에서ㅡ루앙프라방(라오스)
매일 오전 두 챕터씩 읽어오던 것을 한 챕터로 줄였다. 필사 양이 부담되는 게 이유였다. 몇 권의 에세이를 쭉 읽어 오는 동안 책에 담긴 내용을 더 많이 손으로 옮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고민 끝에 구매한 손목에 부담이 덜한 키보드(로지텍 K860)이 도착한 어제부터는 한 챕터를 통째로 옮겨 타이핑 중이다.
오늘은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에 대해 이야기하는 7번째 챕터 '거대한 메콩 강가에서'를 읽고 적었다.
목적지인 루앙프라방은 메콩 강가에 위치한 매우 아담한 마을이다. 마을 자체보다 외곽에 있는 공항이 더 클 것이다. 현관은 쓸데없이 크고 근사한데 방은 몇 개 안 되는 집과 비슷하다. 거실을 지나 안쪽 문을 열었더니 바로 뒷마당이 나오는 격이다.
인구는 2만 명 남짓. 그곳에 크고 작은 사원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아마 헤아릴 수야 있겠지만 정확한 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빼곡히 모여 있어 일명 ‘불도'로 불린다. 옛 란상 왕국의 수도였지만 국방상의 이유로(이 나라는 예로부터 국방을 중시해야 했다) 16세기 들어 비엔티안으로 천도했기 때문에, 지금은 마치 일본의 나라처럼 종교적인 정취가 감도는 조용한 고도가 되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참고로 ‘세계유산'에도 등록되었다. 고층 건물이나 쇼핑센터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스타벅스나 맥도날드도 없다. 주차 미터기, 교통신호조차 없다.
하루키의 라오스 여행기를 읽으며 나도 랜선으로 함께 루앙프라방 여행을 떠난다. 나무위키로 간단하게 라오스에 대해 찾아보고, 책에 그려진 모습을 상상하며 루앙프라방의 주요한 모습 중 하나인 '탁발'을 유튜브로 찾아본다. 메콩강에 관한 짧은 정보를 읽고, 사진을 찾아본다. 이런 강도 있구나 깜짝 놀란다.
이 호텔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지역 출신의 뛰어난 연주자를 모아 밤의 수영장에서 숙박객에게 라오스의, 이 지방의 민속음악을 들려준다. 춤도 곁들인다. 보나마나 관광객 대상의 안전 무해한 음악이겠거니 싶어 시큰둥했는데, 막상 들어보니 매우 흥미롭고 진지한 음악이었다(죄송합니다). 악단 맨 앞에는 실로폰 연주자가 있어서, 이 사람은 옥타브 주법(웨스 몽고메리처럼)으로 거의 최면술에 가까운 음계를 연신 쳐나간다. 이것이 주 멜로디다. 그 뒤에 라운드 가믈란 연주자가 자리잡고 카운터(대위) 멜로디를 싱글라인으로 흘려보낸다. 처음에는 주 멜로디와 대위 멜로디가 담담히 조화를 이루어 진행되지만, 가믈란 연주자가 흥이 나기 시작하면서 점점 불협화음 같은 패시지(주요 멜로디를 연결하는 프레이즈)를 끼워넣는다. 이때부터 ‘어라' 싶다. 이윽고 그 부조화는 트랜스 상태 비슷한, 어렴풋한 광기마저 발산하게 된다. 멜로디 라인이 기분 내키는 대로 난폭하고 도발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지만 잘 들어보면 그 저변은 전체적으로 확실하게 주 멜로디를 따라가고 있다. 절대 기본 음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듣다보니 ‘이거 꼭 에릭 돌피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불협화음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일종의 ‘귀신' 들린 듯한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분열적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느낌이다. 고요한 밤의 어둠 속에서 그런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토착의 저력 같은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렇게 깊이 있는 음악과의 우연찮은 만남은 라오스 여행의 한가지 수확이었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예상치 못한 데서 등장하는 음악 이야기다. 수많은 하루키의 음악 관련 글을 읽었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하루키의 통찰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우연히 만난 음악을 이렇게 생생하고 맛깔나게 비유할 수 있다니. 나도 웨스 몽고메리의 음반을 많이 들었지만 하루키가 말하는 옥타브 주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도 에릭 돌피 비유는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연기 속에 몽롱하게 퍼지는 듯한 에릭 돌피의 영적인 톤의 연주가 떠올랐다. 오늘 내 과제는 웨스 몽고메리의 연주 속 옥타브 주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루앙프라방의 사원을 느긋하게 도보로 돌아보며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즉 ‘평소(일본에 살 때) 우리는 그렇게 주의깊게 사물을 보지 않는구나'란 사실이다. 우리는 물론 매일같이 여러 가지를 보지만, 그것은 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보는 것이지, 정말로 보고 싶어서는 아닐 때가 많다.전철이나 차에서 창밖으로 잇따라 흘러가는 경치를 멍하니 눈으로 좇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언가 한 가지를 찬찬히 살펴보기에는 우리 생활이 너무나 바쁘다. 진정한 자신의 눈으로 대상을 본다(관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차츰 잊어가고 있다.
그런데 루앙프라방에서는 보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내고, 자신의 눈으로 진득하게 시간을 들여 바라봐야 한다(시간 하나는 충분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갖고 있는 상상력을 부지런히 발동해야 한다. 우리가 기존에 지니고 있던 기준이나 노하우를 적당히 끼워맞춰 기계적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양한 대상을 선입견 없이 관찰하고, 자발적으로 상상하고(때로는 망상하고), 앞뒤를 가늠해 큰 그림을 그리고, 취사선택해야 한다. 평소에 그리 익숙한 습관이 아니다보니 처음에는 조금 피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몸이 그곳 공기에 익숙해지고, 의식이 시간의 흐름에 순응해감에 따라 그런 행위가 점점 재미있어진다.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를 몇 권째 꾸준히 읽고 있는 이유는 하루키의 여행 방식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해 보이는 듯한 통찰도 오늘은 문득 내 마음을 울렸다. 나도 일종의 여행자로서 종로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행객으로서, 넉넉한 시간을 가진 사람으로서 얼마나 자세히 종로를 들여다보았나 생각해보면 그간의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물론, 종로는 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봐야 할 것들이 많은 도시긴 하지만 그런 인식도 내 안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늘 노력하지만, 부담감을 내려놓고 주위 풍경을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없을 날들이 조용히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