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Screenshot_20211001-094519_Naver Blog.jpg
이미지 출처 : 네이버 글감 검색


저자 : 서진규

1948년생, 경남 동래군 출생, 제천 중학교/서울 풍문여고 졸업.

1971년 : 가발공장 여공, 골프장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미국 가정집 식모살이하러 도미.

1976년 : 미 육군 자원 입대해 미국, 한국, 독일, 일본 등지에서 근무

1990년 : 하버드대 석사과정 입학

1996년 : 소령으로 예편

2006년 :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받음

Screenshot_20211001-094529_Naver Blog.jpg
이미지 출처




  • 저자의 부모님은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항복을 선언하던 그 시각, 일본 히로시마 변두리의 한 셋방에 살고 있었고, 첫째 오빠 탄생.

  • 조국이 해방됐으나, 부모님은 지난 수년간 고생하며 일본 생활에 적응하였기에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정책해보기로 마음 먹었음.

  • 그러나 패망의 좌절감을 풀 데가 없던 일본인들의 횡포로 인해 한국인들이 공격당했고, 결국 귀국을 결심.

  • 밀항선에 올라 부산로 왔으나, 고국에서도 동포를 환영하지 않음.

  • 고생 끝에 대구, 경주를 거쳐 경남 월내로 터전을 옮김.

  • 아버지는 엿장수를 하며 근근이 생계를 꾸려오다, 6/25가 터져 전선으로 부역을 나가게 됨.

  • 전쟁이 끝난 후 전선에서 잡역부로 일하며 배운 실력으로 철도청 이발사로 들어감.

  • 철도청 말단 공무원이던 아버지는 충북 제천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노름에 빠져 부산에 있는 집을 날릴 지경에 이름.

  • 온 가족이 아버지가 있던 충북 제천으로 이동.

  • 이후에도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지만, 저자 서진규는 제천에서 중학교 졸업 후 가족의 반대 및 경제 여건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작은 집의 도움으로 서울 풍문여고로 진학하여 졸업함.

  • 이후에도 가난으로 인해 대학 진학은 못하고, 서울에서 버티기 위해 가발 공장 여공 생활, 골프장 식당 종업원으로 생활함.

  • 우여곡절 끝에 수년에 걸쳐 미국 여권과 비자를 받고 미국 가정 식모살이를 위한 미국행.

  • 미국에 도착했더니, 비자 받는데 2년이나 걸리는 바람에 식모를 들이기로 했던 가정집에서 이미 다른 식모를 구한 상태.

  • 뉴저지 가정집 스폰서인 미국 할머니는 저자에게 선택권을 준다. 자기 집에서 식모를 하든지, 한동안 사는 곳과 어떻게 지내는 지를 알려주면 나가서 다른 일을 해도 좋다는.

  • 그래서 월스트리트에 있는 유대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함.

  • 몇개월 지났을 때 맨해튼에 고급 한국 식당 '아리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함.

  • 1년 반 정도 지났을 때는 바루크 대학에 등록하여 낮에는 공부하고 밥에는 일하는 생활을 함.

  • 3년이 흐른 1974년 뉴욕을 떠나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바이킹'이라는 한국 나이트클럽과 스파게티 전문으로 하는 이탈리아 식당에서 일하며,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으로 학교를 옮김.

  • 그러다 합기도 시범 경기를 위해 온 한국 사람 중 한 남자(유부남)와 사랑에 빠져 시애틀로 거주지를 옮기고 결혼도 함.

  • 1976년에 딸 '성아' 출산, 남편의 손찌검.

  • 1976년 겨울, 남편의 손찌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미군에 자원 입대, 딸 '성아'는 한국 친정으로 보냄.

  • 앨라배마의 포트 머클랄란 훈련소에서 두 달 동안 훈련, 최우수 훈련병으로 졸업.

  • 사우스캐롤라이나포트 잭슨 보급 학교에서 최고 우등생으로 졸업.

  • 이듬해 1977년, 첫 부임지로 한국 귀국.

  • 1978년 아들 '성욱' 출산

  • 1980년 육군 소위 지원 합격하여, 미국 조지아 주의 포트 베닝으로 떠남.

  • 1982년 남편과 이혼, 딸 '성아'는 엄마가, 아들 '성욱'은 아빠가.

  • 1982년 서른 네 살. 열 살 어린 동기 간부 후보생 '톰'과 재혼, 독일로 이동. 수양딸 '귀자'와 함께 생활.

  • 1983년 동생 '서광규'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에 한국에 갔다 옴. 그 사이 수양딸 '귀자'와 '톰'의 불미스런 사건으로 남편 '톰'은 불명예 제대 후 미국으로 돌아가고 수양딸 '귀자'는 다른 곳으로 보내짐.

  • 1983년 어머니 뇌출혈로 쓰러짐, 엄마의 병환으로 군은 한국으로 발령 내줌. 당시 나이 서른 다섯.

  • 1985년 '톰'과 이혼.

  • 1986년 다시 미국으로 발령. 14년 만에 학사 졸업(다섯 군데 대학을 옮겨다님, 퀸스대, 바루크대, 캘리포니아 주립대, 워싱턴 주립대, 메릴랜드대), 부모님, 딸과 함께 미국 버지니아로 이주.

  • 1987년 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

  • 1988년 오빠가 미국으로 이민가고, 다음해 1989년 올케와 조카 세명이 이민 합류.

  • 1989년 군의 지원으로 하버드 대학 동북 아시아 지역 전문가 과정 입학. 아버지 폐암으로 사망.

  • 1990년 마흔둘, 하버드 석사 과정 입학.

  • 1992년 하버드 동양역사언어학과 박사 과정 합격 후 휴학계 제출하고 군 복귀.

  • 1993년 소령 진급, 사상 최초 여성 연락장교가 됨.

  • 1996년 마흔 여덟, 군 전역.

  • 1997년 하버드 박사과정, 딸 '성아'도 하버드 학부생 및 엄마를 따라 ROTC 생도가 됨.

  • 1999년 16년만에 4살때 떨어졌던 아들 '성욱'과 재회

  • 이즈음, KBS 일요스페셜에서 연락이 와 프로그램을 찍고 한국 지상파를 통해 알려짐.




해방 직후 1950년대, 대한민국에서의 어릴 적 삶을 기술하는 것을 보면 놀랍다.

비록 형제 친척들의 기억이 더해졌다고는 하나, 수십 년 전 기억을 어떻게 그렇게 생생하게 할 수 있을까.

책 내용은 저자의 삶에 대한 자전적 기록이다.

정말 기구한 삶이다.

그러면서도 참 여러 면에서 운이 많이 따라 주었단 생각이다.




그때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설득하기 힘든 것이 자기 자신이지만, 일단 자기 자신과 합의가 이루어지면,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내가 자기 자신을 믿고 따르라고 말할 때의 자기 자신은, 바로 '대화를 통해 합의된 자기 자신'인 것이다.




나는 무슨 일에 도전하기에 앞서 항상 세 가지 리스트를 작성한다.

첫째,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둘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셋째,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 세 가지 문제에 답할 수 있다면, 현재의 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파악하고 나를 장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희망의 성취 여부를 결정하는 최대의 관건이다.





2021.10.01.

Sort:  

This post has been upvoted by @italygame witness curation trail


If you like our work and want to support us, please consider to approve our witness




CLICK HERE 👇

Come and visit Italy Community



Hi @lucky2015,
my name is @ilnegro and I voted your post using steem-fanbase.com.

Please consider to approve our witness 👇

Come and visit Italy Community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jswit_comment_initial.w320.jpg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2
JST 0.075
BTC 64482.23
ETH 1686.47
USDT 1.00
SBD 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