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과연 사랑일까..
좋아하는 배우인 아네트 베닝과 빌 나이가 주인공입니다. 중년보다는 노년으로 가고 있다는 게 맞겠네요.
그레이스는 시를 좋아하는 좀 과격한(!!) 성격이고 남편 에드워드는 고등학교 역사선생님으로 말수가 별로 없는 조용한 사람입니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아들이 있구요. 둘의 관계는 겉으로 보기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들은 29년간 결혼생활을 했고, 각자의 삶에서 조용하게 살아갑니다. 그런 중에 에드워드가 떠나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이렇게 오랜 기간동안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는 듯한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는가..
그레이스가 조금 자신의 판단하에 모든 사람을 대한다는 게 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아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자신이 판단을 받아들이라고 강조하고 조금은 닥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심지어 남편의 빰을 갈기고, 식탁을 뒤엎고요. 다혈질이라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반면 에드워드는 너무나 조용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잘 이야기하지 않아요. 마치 동굴 속에 들어앉아서 나오지 않는 듯이 보입니다. 다혈질의 사람들에게는 그런 태도에 더 화를 내게 되죠.
두 사람의 태도가 각자의 성격을 더욱 강화하는 구실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네가 그러니 내가 이러지."하는 원망을 하게 되고요. 일반적인 수순이 아닌가 싶어요.
이 영화는 영국의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아주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그 잔잔함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과연 우리는 행복하게,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들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제 결혼생활도 다시 짚어보게 됩니다. 나는 과연 행복한가, 남편은 행복할까?
아네트 베닝이 연기한 그레이스의 모습 중에 살짝 제 모습도 보여서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남편, 사랑하기는 하나 봅니다.^^
남편을 못 잊어서 찾아간 그레이스에게 남편의 새 여친인 안젤라가 한 마디를 합니다. 제게는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였어요. 빈정거리던 그레이스를 이 말 한마디로 KO시켰거든요.
"예전에는 세 명의 불행한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한 사람만 있군요."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그 행복을 줄 수 있는 것, 그런 사람이 되고 싶군요.
한국에서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제목이 바뀌었지만 원 제목은 "Hope Gap"입니다. 지명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내용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제목이 아닌가 싶어요. 희망을 꿈꾸지만 그 사이에 있는 간격... 너무 멋진 제목이죠.
영화에 나오는 시가 좋아서 옮겨놓습니다.
섬광
-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예전에 이곳에 와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언제 어떻게 인지는 알 수 없지요.
문 뒤편에 있는 그 풀밭을 알고 있어요,
달콤하게 코를 찌르는 향기, 한숨 소리와 바닷가를 비추던 그 불빛들도.
예전에 당신은 제 사람이었어요.
얼마나 오래 전인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제비가 날아오르던 그 순간
당신은 그렇게 고개를 돌렸고
베일이 벗겨졌지요, 난 예전에 모든 것을 알고 있었어요.
예전에도 이랬었나요?
이렇듯 소용돌이치는 시간의 흐름이
우리의 삶, 우리의 사랑과 더불어
죽음의 어둠 속에서도 다시 회복되고
밤낮으로 다시 한번 기쁨을 주지는 않을까요?
Sudden Light
- Dante Gabriel Rossetti
I have been here before,
But when or how I cannot tell:
I know the grass beyond the door,
The sweet keen smell,
The sighing sound, the lights around the shore.
You have been mine before,
How long ago I may not know:
But just when at that swallow’s soar
Your neck turned so,
Some veil did fall, - I knew it all of yore.
Has this been thus before?
And shall not thus time’s eddying flight
Still with our lives our love restore
In death’s despite,
And day and night yield one delight once more?
- 세계문학 영미문학 시선집, <축복받은 처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시선>(글과글사이, 김천봉 역,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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