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 낡은 서랍속의 바다

in #essay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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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장엔 메모를 해둔 것들로 가득하다. 길게는 열어보지 않은지 5년이 넘어가는 오래된 메모도 있고, 수시로 열어보는 pinned(박제된) 메모도 있다. 다정했던 친구와 주고 받았던 내용의 편지를 그대로 옮긴 메모, 각종 사이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저장해둔 메모, 글 쓸 아이디어들을 적어둔 메모, 길을 걷다 발견한 담벼락 구석의 예쁜 꽃에 반해 찾은 이름을 적어둔 메모, 반성하는 것들을 일련으로 정리해둔 메모 등… 내가 걸어오고, 생각하고, 기록한 모든 것들이 담겨있다.


 최근 pinned 된 메모는 (메모는 생성된 날짜로 분류되기에 특정한 메모를 찾으려면 번거롭다. 그래서 pinned 을 해두면 늘 가장 상단에 박제되어 찾기 쉬움) 책방 대표님과의 대화를 기억을 더듬어 정리해 놓은 것, 출간 제의를 받은 메일 정리, 글쓸 목록 update (라고 적힌 옆 날짜는 2/14로 되어있다. 맙소사..), 아티스트 프로젝트 Projet Artistique 그리고 Cheat sheet 정도가 된다. 이 상단의 메모는 늘 추가되고 삭제되지만,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이정도를 유지하는 편이다. 메모장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진 않아도, 나만이 분류할 수 있게 정리해둔다.


 한편 제목 title 만 있고 내용은 적지 않은, No additional text 로 저장되어 있는 메모가 있다. 늘 곁눈질로 잠깐의 시선을 주곤 하지만, 딱히 그 이상 관심을 두지도 채우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나의 우선순위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를 제외하면, 늘 ‘기록’ 그 자체였으니 제목이라도 급히 적어두는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다. 분명 나중에 다시 찾았으나 제목과 결련된 내용을 생각해내지 못해 그대로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제목만 간직하고 있는 메모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내용이 존재하지 않아도 제목만으로 나의 경각심을 일깨워줄 때가 있기 때문인데.


 친하게 지내는 몇 작가들과의 채팅방에서 코로나가 지나가면 오프라인에서 모여 한잔하죠, 라는 말에 나는 여름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모두가 원하는 것은 되찾고 싶은 일상이나, 그 일상이 얼마나 지구에게 파괴적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던 두달 남짓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hive 하드포크, n번방, 총선, 이동제한 confinement .. 그 외에도 수 많은 사건이 떠올랐으나 이 또한 마무리 되지 않은 채 마음속엔 씁쓸함 만이 남았다. 여름이 오면, 과연 그 일들이 실현될수 있을까.


 하나의 작은 이념이 모든 것을 바꾼다. 그것에서부터 파생되는 모든 일련의 것들은 되돌릴 수도 수정할 수도 없다. 오직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그렇기에 기록의 힘을 믿고 오늘도 메모장을 켜고, 기록한다. 셀 수 없는 메모장 속 기록되어진 사람들과 사건들, 그들이 안녕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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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일상을 회복하리라 기대합니다.
이번 일이 사람들 사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도 궁금하네요.

희망을 놓지 않아야겠죠? dozam 님의 일상도 회복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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