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신, 중국 여름 극장가를 강타하다!

(<아부시약신> 포스터)
지난 월요일, 취재원인 홍콩의 한 프로듀서로부터 오랜만에 문자가 왔어요. <아부시약신>(영문 제목은 Dying to Survive)이라는 영화가 엄청나게 흥행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국 영화 보호 기간(매년 여름 1~2개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포함한 외화 상영 제한하는 시기)인 지난 7월6일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이틀 만에 8천만 달러를 돌파하고, 5일 만에 무려 4천만명이 봤다고 합니다. 개봉 2일차 성적만 놓고 봤을 때 역대 중국 박스오피스 6위에 해당됩니다(1위 <착요기2>, 2위 <당인가탐안2>, 3위 <후래적아문>, 4위 <로스트 인 홍콩> 5위 <미인어>). 제작비가 1천5백만 달러로 이미 5배 이상의 수익을 올린 셈이죠. 이 페이스대로면 중국 역대 박스오피스 1위인 <홍해행동>(오퍼레이션 레드씨)를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인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홍해행동>), 스타 감독이 연출하거나(<미인어>), 규모가 큰 블록버스터(<착요기>) 위주였던 여느 중국 흥행작과 달리 이 영화는 실화로 소재로 한 블랙코미디 장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2003년, 당시 34살이었던 루 씨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들 사이에서 '약의 신'이라 불리는 인물입니다. 루씨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뒤 2년 동안 글리벡이라는 약을 사는데 56.4만 위안을 썼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9400만원 정도로 매우 비싸죠. 한국도 비슷한 현실이기도 하고. 루 씨는 약값을 절감하고, 약과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환자들과 암 환자 그룹을 만들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인도 Natco사에서 개발한 약 Veenat을 접했는데 원래 복용하던 약과 효능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약값은 60만원 돈이니 글리벡과 비교했을 때 말도 안 되게 싸죠. 루씨는 이 약을 그룹에 있는 다른 환자들에게 추천했고, 입소문이 나면서 다른 암 환자들도 루씨를 찾기 시작합니다. 루씨는 그들의 부탁을 받아 인도 Natco사로부터 약 구매대행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더 좋고, 대중적인 가격의 약을 찾게 됩니다. 중국 쪽 은행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인도 약 회사가 중국 계좌로부터 돈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루 씨는 인도 회사와 거래가 가능한 신용카드를 타인 명의로 만들었습니다. 경찰은 루씨를 신용카드 관리 방해죄 혐의로 체포하고 사건을 검찰로 송치시켰어요.
루씨가 구치소에 갇히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루씨로부터 도움을 받은 암 환자 1천명이 루씨의 형사 처분을 면해달라는 탄원서를 써서 제출했고, 결국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은 중국에서 사법 정의를 실현한 사례로 언급될만큼 중국 사회에서 유명했던 사건이었어요. 그의 행동은 가난하고, 힘 없는 백혈병 환자들에게 큰 용기와 힘을 줬고, 그 덕분에 중국에서 약 관련 법이 바뀌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영화로 재구성한 <아부시약신>은 (백혈)병 치료가 어렵고 비싼 현실을 풍자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영화를 본 중국 관객들이 남긴 반응 중에서 "한국에 <도가니>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아부시약신>이 있다. 중국 영화도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고, 우리도 머지 않은 미래에 사회를 조금이나마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아 위안이 된다"는 댓글이 눈에 띄네요.

루씨를 연기한 배우가 '중국의 송강호'라 불리는 서쟁입니다. 중국에서 감독이자 배우로 활동하고 있어요. 정말 연기도 잘하고, 좋은 영화를 만들고 있는 사람인데, 향후 5년 간 스케줄이 꽉 찰만큼 작업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쟁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트에서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쨌거나 저도 이 영화가 어떤지 중국에 가서 보고 싶을만큼 궁금합니다. 전 그만 마감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