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전과자로 사느니 죽고 싶은데 죽을죄가 아니란다

in #drug5 years ago (edited)

20130907161007066.jpg
유우성은 나와 가장 친한 친구중 한명이다. 2013년 우성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찍은 사진.

#2018년 5월3일 (목) 마약일기

아침 7시쯤 눈을 떴다. 가슴속에 돌맹이가 집이라도 지은건가. 답답하고 괴롭다. 대체 이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일단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자.

‘우성아. 나 많이 힘든 일이 생겼어.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데 네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날 좀 만나주겠니. 나 너한테 꽤 충격적인 얘기 할거야. 그래도 넌 내 친구라고 믿고 있어서 너한테는 솔직하게 이야기 털어놓고 싶어. 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우성이는 서울시공무원간첩증거조작 사건을 취재한 뒤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저 기자로서 할 역할을 한 것뿐이었는데, 우성이는 자신의 무죄를 밝혀주느라 고생했다며 나에게 무척 감사해했다. 나는 진실에 맞서 끝까지 용기를 내어 준 우성이에게 또한 감사했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감사해 하며 친구로 지내왔다.

우성이는 내 문자를 보자마자 바로 달려왔다. 은평구에 살고 있는 녀석이 강남구 수서동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 아침 9시. 우성이가 우리 집앞 문을 두들겼다. 녀석은 급히 달려오는 길에도 우리 부모님께 드리라며 과일 한 박스를 챙겨왔다. 집 근처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재현아.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

결국, 모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우성이가 조용히 듣더니 말문을 열었다.

“재현아. 죽을 죄 지은 건 아닌거 같은데?”

그 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죽을 죄. 난 내가 죽어도 될 만큼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빠르게, 고통은 덜하게 죽을 방법이 없을지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생계를 부양해야 하는 내가 죽어서는 안되지만 도저히 부끄러워서 살아갈 수 없을 거란 생각이었다. 그런데 죽을 죄가 아니라니.

“아직 마약인지 아닌지 모르는 거잖아.”
“응. 몰라.”
“너 때문에 마약을 하게 된 사람이 있어?”
“아니.”
“너 마약을 사고 팔았어?”
“아니.”
“약한 뒤에 교통사고 내거나 피해를 입힌 거 있어?”
“아니.”
“그럼 피해자가 없잖아.”
“없지.”
“그럼 죽을 죄는 아니야. 잘못한 건 맞지만 죽을 죄는 아니야. 그러니 밥먹으러 가자. 살아야지.”

우성이는 내게 국밥을 사주었다. 이틀만에 먹는 음식이었다. 밥이 목구멍으로 안넘어갈 것 같았는데 막상 먹어보니 들어갔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픈 걸 몰랐는데 몸은 배고픔을 참고 있었던걸까. 밥도 먹고 물도 마셨다. 난 아직 살아있고, 아마 살아야 할 운명인가보다. 죽을 죄가 아니라니. 정말 살아도 되는 걸까.

“재현아. 북한에서도 마약은 범죄야. 그런데 거기서는 마약을 해도 남한에서처럼 이렇게 비난하지는 않아. 어떻게 보면 남한이 좀 너무하는 거야. 아픈데 약을 쓸 수 없는 사람들도 많고, 마약을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 제각각이야. 무조건 이렇게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야.”

우성이를 만나기를 잘 했다. 살아갈 의욕은 없지만 그렇다고 애써 죽지는 않아도 된다니. 일단 극단적인 상상은 머릿 속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다. 우성이는 민변 변호사들이 나를 도와줄 것이라며 같이 찾아가보자고 했다. 나는 사양했다. 내 사건을 차마 친하게 지내던 민변 변호사들에게 부탁하지는 못하겠다. 민변 변호사들이 무슨 사건 변호를 맡는지는 기자들이 늘 관심을 갖는다. 그런 것도 부담이다. 어떻게든 이번 일로 내가 처벌을 받더라도 파장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미 경찰이 내 입건 사실을 찌라시로 유통시켜버린 것만 크게 확산 안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걱정이다.

오후에는 이은의 변호사 사무실로 가서 상담을 해야했다. 차를 몰고 가던 도중에 회사 동료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료는 ‘성폭력 사건을 취재하려 하는데 돌파구를 못찾겠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내게 물었다. 지금 내 상황이 누군가에게 자문을 해줄 형편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일 없던 것처럼 태연하게 있어야 주변에서 의심을 하지 않는다. 가급적 친절하게 조언을 해주고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이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펑펑 울다가 나왔다. 이 변호사에게 내가 왜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는지 설명하던 도중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한겨레> 안에서 11년간 겪어왔던 말못할 속앓이들을 외부의 사람에게 처음으로 털어놓은 순간이었다. 변호사 사무실에 놓여진 티슈는 굉장히 빨리 없어진다고 한다. 왜그런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월드비전’ 관계자로부터 문자가 왔다. 제3세계 어린이들의 구호활동을 위한 모금기사를 쓰기 위해 다음달 출장이 예정돼 있었다. 여권번호와 사진을 달라는 문자였다. 어차피 이 출장은 못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아무일 없던 것처럼 태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여권번호와 사진을 보냈다. 제 정신이 아닌데, 제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일단 회사와 변호사, 경찰, 우성이에게만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하자. 그 외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내 사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

나, 살아도 되는 걸까. 살 자격이 있는 걸까. 우성이는 나보고 살라고 말하는데, 정말 살아도 되는 걸까.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Sort:  

경찰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가 언론과 공무원 첩보라고 들었네요. 써먹기 유용하다고. 특히 경찰은 정보와 홍보가 가장빠르게 승진하는 부서로 알려졌죠. 정보 경찰의 업무중 취득한 정보의 열람 및 제공에 관해서도 세심하게 다루어졌으면 좋겠네요.

기자님의 당시 심경이 생생하게 쓰여져서 저에게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네요. 지금은 그때의 트라우마라고 해야할까요?? 아무튼 당시의 충격으로부터 많이 담담해지셨는지는 궁금하네요. 현재는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계신지요.

추가적으로 유우성씨가 간첩조작사건으로 엄청나게 고생한 것으로 아는데 지금은 잘 지내고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본인을 변호해주던 (민변?)변호사와 결혼을 했다는 기사를 본것 같은데 요즘은 어찌 지내는지도 궁금하네요.

현재의 심경을 담은 글(회복일기)도. 아무래도 연재를 같이 해야 하나 고민중입니다. 1년전의 허재현과 지금의 허재현은 같으면서도 또한 다르거든요.
유우성은 잘 지내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 국적이 박탈된게 회복이 안되어 고단하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적절한 경로로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마약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한번 깊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Congratulations @repoactivist! You have completed the following achievement on the Steem blockchain and have been rewarded with new badge(s) :

You got a First Reply

You can view your badges on your Steem Board and compare to others on the Steem Ranking
If you no longer want to receive notifications, reply to this comment with the word STOP

Do not miss the last post from @steemitboard:

New japanese speaking community Steem Meetup badge
Vote for @Steemitboard as a witness to get one more award and increased upvotes!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15
JST 0.029
BTC 65292.16
ETH 2651.21
USDT 1.00
SBD 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