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뢰군 연혁)37, 제4장 정전회담 이후, 제12기 전투
<괴뢰군 연혁>은 전투를 단계별로 나누기보다는 기간별로 나누었다. 제12기는 1951. 4.1-4.30 한달간의 기간에 벌어진 전투를 의미한다.
공산군의 당시 활동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힜다.
서부에서는 중공군의 남하 집결과 아울러 예성강 이서지구에서 주공부대의 재정돈 배치를 완료
동부에서는 북한군 3군단으로 지연작전을 계속하면서 인제북방에서 정비 중인 북한군 제5군단에 제7군단으로부터 제32사단을 배속하여 공격준비를 갖춤
그 동쪽에는 제69여단으로 충당시킴
이와함께 공군과 기계화부대도 증강하여 전선의 각비행장을 정비
4월 23일 23시를 기해 서울 정면을 주공으로 가평 정면 현리 정면의 세곳에 대해 중점적인 공격을 감행
공산군은 공격개시후 전반적인 공세를 취하지 않고 4월 30일에 각각 일부 병력으로 공격을 했으며 각 주력은 38선의 진지에서 남하하지 않았음
제5차 제1단계에 참가한 적부대 규모는 다음과 같음
제1군단 총 18,380명
제8사단 3,900명
제19사단 8,980명
제47사단 5,500명
제3군단 총 19,930명
제1사단 3,750명
제15사단 4,700명
제45사단 9,300명
제69사단 2,080명
제5군단 총 22,800명
제6사단 6,500명
제12사단 6,500명
제32사단 9,800명
총계 9개사단 1개여단 총 61,010명
후방예비병령
제2군단(5개사단) 18,150명
제4군단(3개사단 1개여단) 27,750명
제6군단(3개사단 1개여단) 26,200명
제7군단(3개사단) 24,500명
제8군단(2개사단 1개여단) 23,500명
항공(3개사단 1개학교) 4,350명
해군(2개기지 1개학교) 2,050명
포병(4개연대 2개학교) 4,850명
기타(4개사단 1개여단) 40,160명
계(23개사단 4개여단 5개학교) 총 17만 560명
북한군은 낙동강전선에서의 패배와 한만국경선으로의 퇴주과정에도 불구하고 총 23만명 정도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편성율은 불비했지만 그정도 병력수준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것은 주민동원이 상당한 규모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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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어마어마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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