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자유와 구속, 그리고 미래] 서문. 화폐 가로되, '자유 있으라'

in #coinkorea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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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은 지난 3월 22일, 2017년 한국의 사회지표를 발표했습니다. 걱정과 우울감이 높아만 가는 10대와 20대, 65%를 밑도는 휴가 사용 경험, 줄어드는 기부율 등 전년도보다 살짝 나아진 지표도 있긴 합니다만 전체적으로 모든 지표가 여전히 좋지만은 않습니다. 그 중 특히 눈여겨 볼만한 수치는 계층이동 상승에 대한 기대 여부입니다.

자식 세대의 계층이동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한 비율은 30.6%로, 2년 전에 비해 0.4% 줄어든 수치입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전체적으로 차가워지고 있고, 경직되어 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트럼프로 대표되는 미국의 내셔널리즘, 'America First'를 필두로 다양한 곳에서 지난 20여년간 불어온 세계화의 바람이 다시 반대로 불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의 기저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여유의 부족'으로 인한 것이라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당장 돈이 너무 모자라서 하루 내내 밥을 굶고도 내일 낼 월세와 공과금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주머니가 텅 비어 있는데, 길거리에서 도움을 구하는 사람에게 선뜻 손을 내밀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짜여진 질서 속에서 편리한 생활을 향유하고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기기 위해서는 경제적 여유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 왔고, 인간이 예속되어 있으며, 인간이 살아가고, 수많은 인간이 정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 제도는 바로 화폐 경제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입니다. 우리는 화폐 경제라는 제도에 예속되어 '합리적 선택'이라는 경제적 자유를 찾고, 그리고 그 선택을 기반으로 소비를 하며, 다시 시스템 속의 톱니바퀴 하나가 되어 살아갑니다. 이러한 제도나 시스템 자체가 옳고 그르다를 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이 광적으로 '돈'에 집중된 이유는 한번쯤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흔적만 남은 아크로폴리스입니다. 여기서 유럽 문화가 시작했죠.

사람이 화폐라는 달콤한 족쇄이자 차가운 날개를 만들어 낸 시기로 시계를 되돌려 봅시다. 유럽 문화의 어머니이자 모든 철학의 어버이라 불린 아테네로요.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교과서에서 철학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아테네의 철학자들을 배웁니다. 그 당시에는 더했습니다. 철학, 정치, 문학, 예술 분야에서 아테네는 눈부신 문명의 발달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복잡한 해안선과 산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티키Αττική 일대는 농경지를 확보하기도, 농업용수로 쓸 민물을 얻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얼마 안 되는 농경지는 일부 지주에게 집중되는 경향까지 보였죠. 게다가 산을 깎아서 농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정책까지 진행되면서 대부분의 '보통' 아테네 사람들은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리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잉여 생산물을 모아두지 못했죠.

아파서 일을 못하거나, 급한 돈이 필요하면 바로 빚을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아테네에는 '헥테모로이Hektemoroi'라 불리는 빚을 진 하층민 계급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들은 귀족이나 부자의 땅을 빌려 거두어들인 작물의 1/6을 이자로 납부했습니다. (일부 문헌에선 5/6을 이자로 지급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문득 지금 한국이나 일본에서 소위 말하는 대부업자들의 이자율이 20~24%로 그 당시의 1/6보다 좀 더 혹독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뭐 일단은 넘어가죠.

원래 자유민이었던 사람들은, 이자를 점점 충당하기 힘들어지자 돈을 빌려준 사람의 노예, 헥테모로이가 되었습니다. 이자를 변제하면 살아갈 최소한의 돈이 없는데, 원금을 갚을 수 있을까요? '공평한 출발점'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아뇨.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안타깝게도 돈의 속성은, 자유의지의 속성은 그러했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에게는 부가 가치를 창출할 생산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돈은 가속 페달이 되어 더 많은 돈을 벌게 해 주었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자, 세금등의 다양한 명분이 되어 그나마 있는 조금의 돈마저도 빼앗아갔습니다. 엔트로피에 역행하는 이런 돈의 비가역적 흐름이야말로 금융 자본주의의 본질이며, 많은 사람들이 돈을 위해 목숨걸게 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돈의 습성은 과거에도 그리했했고, 현재에도 이러하며, 미래에도 그리할 것이라고 다들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지금 대부분 우리의 모습이 이 모습입니다.

그리스의 7현인 중 하나인 솔론은 이 현상을 보고 대단위의 개혁을 실행합니다. 부채를 탕감하고, 화폐 개혁을 통해 해상 무역이라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었으며, 재산의 규모에 따라 참정권을 부여하고, 노예를 해방했습니다.

솔론 그 개인은 무언가 대단한 역사적 사명을 띤 현인이나 메시아의 대행자 같은 존재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대로 아테네가 곪아가면, 사회의 미래가 사라진다는 것을 인지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종전대로였다면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욱 큰 부자가 됩니다. 사회의 허리인 자유시민 계층은 점점 붕괴해 가고 있었습니다.

자유시민의 감소는 군대의 감소라는 단기적인 악재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신뢰를 사라지게 만들고 나아가 성장에 대한 희망을 없애는 효과를 낳습니다. 솔론은 아테네라는 사회가 이대로 흘러가면 이제 남은 유일한 길은 노예들의 혁명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솔론은 채무 계약서를 모두 폐기하고, 저당잡힌 토지는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으며, 빚 때문에 팔려나간 노예는 몸값을 대신 지불하여 귀향을 도왔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부자들은 재산상 손해를 약간 입었지만 그에 걸맞는 정치적 권력을 얻었으며, 새로운 산업 기반과 함께 부를 축적한 자유시민들은 아테네라는 사회를 안정시키고, 번영의 길로 올려놓았습니다. 그 결과 아테네는 아테네 함대를 만들고, 막강한 해군력으로 페르시아라는 제국을 위기에 몰아넣기까지 합니다. 일개 도시국가가, 그것도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소요되는 해군력 싸움에서 페르시아라는 대 제국을 이긴 것입니다.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 뒤에는, 아테네의 강한 경제력이 있었습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볼까요? 많은 사람들은 사회 구조가 잘못되었으며, 그 구조를 고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각에서는 재벌을 모두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반대쪽에서는 능력없는 중소기업은 모두 망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건 구조가 아닙니다. 정말로 사회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품고 있는 미래에 대한 희망입니다. 그 희망은 공정한 기회와, 그 기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화폐'라는 보상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주어지는가라는 결과의 평등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가에 달려있습니다.

화폐는 우리에게 방종할 자유도, 억압할 자유도, 그리고 그것을 잘 나누어 새로운 '평등'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자유 역시 제공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화폐의 역사와 화폐가 가져다 온 패권(헤게모니), 그리고 화폐를 통해 자유를 얻은 사람들과 화폐라는 시스템에 구속된 사람들을 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블록체인으로 대표되는 극도의 투명성을 보유한 미래의 화폐라는 사례를 통해, 미래의 화폐가 가야 할 길과 미래의 새로운 자산이 될 '정보'와 진정한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는 수많은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 인류의 곁에 항상 함께 있었던 것은 화폐경제이며, 길게 이어진 화폐경제라는 이데올로기를 한 걸음 더 발전시키는 것을 통해 인류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새로운 자본주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글타래를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라 사실 걱정은 됩니다. 이번 어뷰즈 관련 사건을 통해 솔론의 개혁을 놓고 곰곰히 생각하다보니, 결국 스팀잇의 민주주의는 다시 달력을 돌리고 돌려 과거로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짧고도 긴 시간 동안 함께 화폐의 역사와 패권의 역사, 그리고 정치의 역사를 함께 보면서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새로운 변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해 다시금 더 깊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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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라보다 끼어들 구석이 많아져서 기분이 좋네요.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는 전제 하에요.


자식 세대의 계층이동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한 비율은 30.6%로, 2년 전에 비해 0.4% 줄어든 수치입니다.

경제적 이유도 있겠지만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도 났고 공부만 해서 성공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게 안된다는 사실을 다들 스스로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좌절감에 익숙한 사회라고 해야할까요.


하지만 정작 중요한건 구조가 아닙니다. 정말로 사회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품고 있는 미래에 대한 희망입니다. 그 희망은 공정한 기회와, 그 기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화폐'라는 보상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주어지는가라는 결과의 평등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양심없는 욕심쟁이들이 이 사회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부를 창출하는 사원들에게 분배되는 돈의 양보다 리스크를 감수했다는 이유로 경영진이 가져가는 돈의 양이 더 많으니까요. 하지만 직원들도 똑똑해진 탓에 받는 만큼 일하는 케이스가 많아졌습니다.

이것이 심해지면 회사는 동력을 잃고 망하겠지만 직원들은 또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 되니 결국 경영진의 손해가 나게 되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경영진은 장기적인 플랜따위 중요하지 않아보입니다.

쓰다보니 어딘가와 비슷하군요. 엣헴.

어딘가와 많이 비슷하죠 ㅎㅎㅎㅎ홓

게오르그 짐멜은 화폐가 사람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 준다고 하더군요. 물신의 대상이지만 또한 가치실현의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글 기대됩니다.

살아오면서 나의 삶에 영향을 주는 모든 사안과 현상을 흘겨보고 지나쳐 왔습니다. 이제는 @noctisk 님의 덕을 얻어 조금 들여다 보는 시력을 높여가려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늘 언제나 감사한 마음 그득합니다.
언제나 지지와 응원 드립니다

욕심을 버리는 것은 많은 문제에 답이 될 수 있죠. 허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아갈 길로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그렇죠. 솔론 역시도 정치적 목소리 크기를 키워주는 것으로 비교적 적은 반발로 기득권의 자본을 재분배했으니까요. 저는 이 케이스가 아직까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좁은 공간에서 모든 것을 돈으로만 치환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도 은근히 정치적 인정을 바라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니까요.

"돈"을 가진 자가 최대한 뽑아먹고 .. 메뚜기처럼 옮기면 그만이지만 .. 서민들은 그게 아닌데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

물론 "법적" 으로는 위법이나 불법이 아니라고 해도 씁슬합니다 ^^ ;;

화폐가 가져온 자유와 구속의 사례를 통해 우리의 미래를 바라보는 연재물일까요 ? 기대됩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미국에서도 최근에 Debt Jubilee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 같더군요.

새로운 시리즈에 또 숟가락 잠시 얹기만 합니다.
좋은 글 고맙고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역사를 살펴보면 계층간의 격차가 극에달했을 때에는, 시민봉기든 전쟁이든 무언가 사건이 발생했고, 격차를 해소하는 절차가 진행되었는데요.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식의 해소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입니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는 혹시 어떻게 이런 격차가 해소되는 흐름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고견을 듣고싶습니다 ㅎㅎ

피지배층의 가장 비폭력적이고 효과적인 반항은 출산을 하지 않는 것 아닐까요. 지금의 저출산이 목표가 아닌 결과로 보이기 쉽지만, 자신들이 의식하든 못하든 심리적 이면에는 강한 항거 의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지배층의 저출산이 계층구조를 완화할수있는건가요?? 제 머리속에서 피지배층이 현재 저항할 수있는 수단은 집결하고 정치적 움직임을 하는거 밖에는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네요.. 현재 돈많고 사회 상류층이여야 정치할수 있는 상황에서는 이마저도 거의불가능해보이지만요ㅠㅠ

무장 투쟁이나 정치 활동은 무력이나 권력으로 탄압할 수 있지만 비출산은 마땅한 대응 방법이 없어 효과적이긴 합니다. 스팀잇 활동 인구가 줄면 고래가 굶어 죽는 것처럼...;

사실 비출산은 투쟁 수단이라기보다는 현상이라 이 상황까지 가면 그 사회가 이미 망해간다는 징조이기도 하죠.

댓글을 달고 생각해보니.. 다음글에서 계속 말씀해주실 내용인것 같네요 ㅎㅎ 기대됩니다 ^^

이제부터 그 방법을 하나 하나 같이 찾아보려 합니다 :)

출근해서 매일 아침 noctisk님의 글을읽는데, 만나서 대화를 할 정도의 지식을 갖추진 못했지만, 강의를 한다면 들어보고 싶네요.
몇달전부터 올려주신 모든글을 열심히 읽고 있는데, 만나뵙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ㅋㅋ

더 꽁꽁 숨어야겠군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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